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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은 어느 '개'를 위하여 '18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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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은 어느 '개'를 위하여 '18금'인가? [우석훈 칼럼] 한미FTA와 '대화가 안되는 이상한 정부'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 중의 하나로 우리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했다. 그 이후에 한국 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위기를 겪고 있다. 제작 단가가 계속 깎여나가고 있고, 그 와중에 영화 스탭들은 정말 죽을 맛이다. 한미 FTA 협상을 위해서 바친 대가로 많은 젊은 영화인들이 지금 생계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한미 FTA와 최고은씨의 죽음이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와중에 생겨난 변화 한 가지는 한국 영화에 성인용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같은 감독과 같은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같은 배우진에 의해서 만들어진 두 개의 영화를 비교해보자. <황산벌>과 그 후속편인 <평양성>.

<황산벌>에는 걸죽한 욕들이 나왔고, 육두문자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면서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는 마지막 장면을 그려냈다. 반면 <평양성>의 거시기는 표준어에 가까운 '고운 말'을 사용했고, 성인용이라고 할 수 있던 영화는 이제 아동극 수준으로 밋밋해졌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스크린쿼터제가 줄고 난 후, 대형 블록버스터를 개봉할 수 있는 시기는 1년에 3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리고 추석. 이 기간 동안에 자녀들과 같이 볼 수 있는 '가족극'이 되기 위해서는 욕도 줄이고, 부모가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없애서 순하고 고운 아동극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고마해라, 마이 묵읐다, 아이가", 이런 명대사들을 남겼던 영화 <친구>도 지금 나왔다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1년에 세 번 있는 방학과 명절 시즌에는 대형 영화의 베테랑급 감독들이 목숨을 걸고 가족 관객을 놓고 승부를 벌인다. 연초 <조선명탐정>과 <평양성>이 맞대결을 했고, 결과적으로 <조선명탐정>의 완승이었다. 천만관객이 든 영화 <왕의 감독>의 이준익은 코너에 몰려 상업영화에서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에는 베테랑 감독이 아닌 신인 혹은 중견감독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피해서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안 된다. 게다가 헐리우드 영화들의 상영일정도 봐야 한다. 그러니 20대~30대 감독들의 경우는 영화를 만들어놓고도 개봉할 시기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게 스크린쿼터제 축소 이후의 변화이다.
▲ ⓒKT&G, 스튜디오다다쇼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하여간 뭐든 심사해서 등급을 매기겠다는 수많은 위원회의 검열들이 추가된다. '청소년 관람불가'는 영화에는 사형 선고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전용관'이 한국에는 없으니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리는것은 한국에서 상영불가라는 판정이다.

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영화, 방송, 음악,인터넷 등에 자기 맘대로 19금, 청소년 관람불가을 남발하는 것이 MB 시대의 '명박의 개'들의 판정이다. 어떠한 일관된 기준이나 법적 근거도 없이, 자기들 맘대로 판정을 내린다.

중학생들의 슬프고도 애틋한 사연을 그린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이 영화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바로 그 '개들'에 관한 얘기이다. 그리고 그 개들에게 당하고 살았던 돼지들이 어떻게 일그러진 인생을 살게 되고, 그들의 왕이 감히 되고자 했던 돼지의 운명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정말로 봐야 할 주인들은 바로 중학생들이다. 이 얘기는 실화이고, 또 여전히 한국의 중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는 리얼 스토리이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청소년 관람불가 애니이다. 여기에는 '청소년 관람불가'를 남발하게 만드는 에로 장면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중학생들이 보아서는 안될 그런 잔혹 장면이 있는가? 자, 최소한 미국에서는 누구나 보는 <호머 심슨> 보다는 훨씬 유순하다. 그리고 심위에서 지적할만한 잔혹장면들은 단순 잔혹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기막힌 현실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언컨대, 에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성적 묘사는 물론이고, 중학생들이 보아서는 안될 잔혹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불온하고, 성인용이 맞다. 대놓고 이명박과 그의 일당들을 '개'라고 불렀고, 그들에게 핍박받고 통치받는 우리들을 '돼지'라고 불렀으니, 정치적으로는 본격 성인물이 맞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여당을 은유하고 풍자한다고 해서, '청소년 관람불가'를 주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애니메이션 감상을 막는 규정이 한국에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들은 대놓고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무소불위의 검열 권력을 휘두르는 것 아닌가?

<돼지의 왕>이라는 작품은, 현실과 스크린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 즉 작품 내에 있는 개와 현실의 개가, 사실은 기묘한 극장의 안팎의 경계를 허물면서 완성된다. 중학생들이 볼 수 없는 중학생 이야기, 애니메이션 안에 있으나 그 밖의 현실에 있으나, 우리 같은 돼지들은 여전히 개의 폭압적 통치 아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기묘한 '뫼비우스의 띠'를 완성시키며, 부산영화제의 3개 부문 수상작은 완벽한 현실극이 되었다.

우리의 대통령과 총리가 보면 불편해할 장면들과 대사들은 영화에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게 이걸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릴 이윤는 아니다. 정치 풍자가 공중파에서도 막혔고, 자본으로부터 제작비를 받아와야 하는 상업영화에서도 막혔다.

<돼지의 왕>이 예술적으로 기막힌 것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와도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아직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현 정권과 함께 우리가 같이 꾸고 있는 악몽이 KBS <뉴스 9>을 꺼도 도무지 끝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이 글을 청와대의 고관대작이나 문광부 공무원들 보라고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인들에게, 중학생 얘기를 중학생들이 볼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욕설이 난무하고 어른들의 얘기를 다루었던 본격적인 성인용 영화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정권을 교체해야 하고, 한미 FTA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환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연상호 감독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고 남몰래 흘렸던 눈물을 다시 흘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 이상한 정부를 거부해야 한다. 최소한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다큐의 영역에서, 현 정권은 더 이상 대화가 안 되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내가 이해한, 정부에서 이 영화를 청소년 관람불가로 판정을 매긴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영화 내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사람들이 보는 걸 너무 싫어했던 것, 그 억울한 죽음을 사람들이 다시 환기하는 것, 그게 이 정권에서 이 영화를 청소년들이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진짜 이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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