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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꼭 하나를 버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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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꼭 하나를 버려야 하나?" [기자의 눈] '자원개척 외교' 고사하고 '자원지키기 외교'도 못하는 정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2일 외교부 청사에서 하영선 서울대 교수와 신년대담을 가졌다. 대담 중에 한국 정부가 중국은 외면하고 미국에 치중한 외교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김 장관은 "미국과의 관계를 잘 가져가면서 중국과도 조화롭게 가는 게 과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할 국익을 따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국익을 중시하겠다는 건 외교부 장관으로서 교과서적이지만 정확한 답변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 동참 압력을 받고 있는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 정부가 추구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미국과의 관계 강화' 그 자체를 국익인 양 추구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태도를 보면 '한미관계 강화'의 본질을 알 수 있게 한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10일부터 12일까지 중국과 일본을 직접 찾아가 이란 원유 금수 동참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은 패스했다. 대신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을 16일 한국으로 보낸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지만 조정관 정도만 보내면 해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5일 방한 당시 "한국의 에너지 안보 수요에 간섭하고 싶지 않다"던 아인혼 조정관이 같은 말을 반복하려고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노골적인 압박이 들어올 수순이다. 한국은 '금수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하겠다는 복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태도를 보면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크다.

▲ 이란산 원유 금주조치 동참을 압박하기 위해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10일 중국을 찾아 리커창(李克强) 중국 부총리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원외교는 고사하고 '집토끼'마저 잃을 상황

그렇다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간 들여오던 이란산 중질유를 미국이 대신 제공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한 발 늦었다.

이란 원유의 최대 고객인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6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세계미래에너지 정상회의차 중동을 방문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주요 원유 수입국도 들를 계획이다. 중국 외교부의 류웨이민(劉爲民) 대변인은 12일 원 총리가 중동 순방에서 정치·경제·과학 분야에 더해 에너지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겉으로는 금수 조치 동참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대체 원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란 원유의 2위 고객인 일본은 더 앞서나갔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은 이미 카타르와 UAE에서 추가 원유 제공 약속을 받아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금수 조치의 예외 적용을 바라고 있지만, 대체 수입원 확보 시도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 원유의 4위 고객인 한국도 김황식 국무총리가 12일 중동 순방길에 올랐다. 하지만 김 총리의 순방 리스트에는 오만과 UAE만 들어있을 뿐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50% 이상을 공급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카타르는 들어 있지 않다. 한발 앞선 다른 외국 정상에 밀려 일정을 잡지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작년을 기준으로 이란산 원유는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10%를 차지했다. 상당한 양이다. 이게 막힐 가능성이 있는 마당에 미국의 '금수 예외' 인정에만 기대를 걸고 있는 정부의 모습은 '에너지 안보'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이처럼 유가시장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사안 앞에서 한가한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홍보했던 '자원외교'의 허상을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미 카메룬 정부의 서류뭉치만 믿고 한국의 주가를 들썩거리게 했던 다이아몬드 광산은 허구로 드러났다. 미얀마 광구 개발은 명시적인 성과 없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실세 개입 의혹만 키운 상황이다.

원유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3월 UAE에서 10억 배럴 이상의 유전에 대한 우선적인 지분참여권을 보장받았다던 정부의 발표도 허풍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젠 자원의 추가 확보가 아닌, 들어오던 자원이 끊기게 생긴 판에 정부가 보이는 굼뜬 대응에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엔 우리에게 뭔가 해주겠지'라는 순진한 믿음 말이다.

국익을 묻는다

이쯤에서 김성환 장관이 말했던 '국익'의 정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이미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이후부터 대이란 제재를 가해온 미국이다. 이번 금수 조치는 이라크에서 철군하면서 약화된 중동에 대한 지렛대를 복구하려는 시도다. 제재가 성공해 이란이 한발 물러난다고 해도(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것은 미국과 서방의 이익이지 한국의 국익은 아니다.

반면에 한국이 이란과의 관계에서 얻는 '국익'을 보자. 원유를 중동의 다른 산유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값에 들여오는 등 지난 40년간 한국에 이란은 주된 교역국이자 우호국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이란에서 약 120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최근 이란에서는 문화적 한류 열풍도 거세다. 자원외교가 아닌, 재화와 문화의 수출입이 이란과의 '신뢰'를 구축했는데 정부가 이를 걷어차게 생긴 상황이다.

강대국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 압력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 장관의 말을 응용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잘 가져가면서 이란과도 조화롭게 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외교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국익'만을 신경쓰는 정부가 대외정책을 양자택일의 궁지로 몰아 가고 있다. 대체 원유 공급원을 시급히 찾는 노력과 함께 '국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정부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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