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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갈등, 당신의 지갑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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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갈등, 당신의 지갑을 노린다 유가 상승 불가피…호르무즈 봉쇄 땐 77일밖에 못버텨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 조치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맞서면서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로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기름값까지 오르면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게 된다. 중동산 석유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서로 석유를 '인질'로 여기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연말 서명한 국방수권법에는 이란 원유 수입을 위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제재안이 남겨 있다. 이란이 봉쇄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량의 20%가 통과하는 요충지다.

대체 수입원 구해도 유가 상승은 불가피

이에 한국이 직면한 위험은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 미국의 금수 조치 동참 압력을 못 이기고 이란산 원유를 다른 공급원으로 대체하는데 드는 부담이다. 다른 하나는 이란이 실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들어가 미국과 충돌을 빚을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지난해(1~11월) 이란으로부터 하루에 약 19만 배럴, 총 8259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전체 수입물량의 약 9.6%다. 이란산 원유의 장점은 가격이다. 중질유(重質油)로 분류되는 이란산 원유는 다른 중동 산유국에서 수출하는 원유보다 싸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수입된 이란산 원유 단가는 배럴당 102.89달러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보다 1.82~5.71달러 쌌다. 한국이 수입한 전체 중질유 평균 단가인 104.73달러에 비교해도 1.84달러 낮다.

미국의 금수 조치는 각국의 에너지 안보 상황을 고려해 오바마 대통령의 권한으로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한국 정부가 이 조항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이란산 원유를 2010년 수준인 전체 수입량의 8.3% 선까지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 산유국들이 이란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 일본, 한국 등에 대체 물량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만약 이란산 원유의 절반을 다른 중동산 원유로 대체한다고 가정하고 차이나는 가격을 지난해 기준으로 단순 대입해도 7516만~2만3579만 달러(약 864억1000만 원~2711억1134만 원)가 더 들어간다.

이는 이란산 원유 수출 중단으로 유가가 더 오를 것을 가정하지 않은 계산이다. 이란발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지난주 이란산 중질유 가격은 국제시장에서 110달러를 넘어섰고 전체 유가도 상승했다. 원유 수입단가가 올라가면 국내 기름값에는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미 지난 한달 동안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상 오르면서 12일 기준 서울지역에서 휘발유 값이 평균 리터당 2025원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 87%, 해협 봉쇄하면 '재앙'

이란이 경고했던 호르무즈 봉쇄를 실제로 행동에 옮길 경우에는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호르무즈 해협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 생산되는 하루 1700만 배럴의 원유가 수송된다. 지난 2008년 이란이 유사한 위협을 가했을 때 유가는 한때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일 이란이 단 며칠만 호르무즈 해협을 부분적으로 봉쇄해도 유가가 현재보다 배럴당 50달러 이상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체 원유 수입량의 87%를 중동산 원유에 의지하는 한국으로서는 해협이 봉쇄되면 다른 국가들보다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에서 서쪽의 홍해로 원유를 옮길 수 있는 수송관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이 이 수송관을 통해 원유를 공급받는다고 해도 기존 수입물량의 40% 수준까지밖에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홍해를 통해 원유를 운송하면 운송비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되면 유가 상승을 넘어 사실상 원유를 확보하지 못해 경제활동이 마비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약 1억8000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해 부족분을 메울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하루 석유 소비량을 감안하면 최대 77일 밖에 버티지 못한다. 미국과 이란의 대치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최후의 카드마저 사라지는 셈이다. 이후에는 시장이 아닌 정부의 통제 하에 석유가 '배급'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2일 보고서에서 봉쇄가 실현됐을 때 미국이 6개월 이내에 상황을 수습하고 원유 수송을 재개한다면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3.3%, 물가 상승률은 5.5%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봉쇄 사태가 1년 이상의 장기화할 경우엔 성장률은 2.8%로 떨어지고, 물가 상승률은 7.1%까지 올라 '스태그플레이션'(물가와 경기 침체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현상)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금수 조치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7월 1일까지 석유를 둘러싼 불길한 전망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계속 어둡게 할 수 있다. 특히 3월 29일 치러지는 이란 총선을 앞두고 이란 지도부가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미국에 강경한 태도로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앞으로 남은 약 2달이 세계 유가시장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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