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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전기 덜 썼으면 할아버지 안 돌아가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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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전기 덜 썼으면 할아버지 안 돌아가셨을 텐데" [현장]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 1000여 명 "고리 5·6호기, 송전탑 반대"
"서울에서 전기를 조금이라도 덜 쓰면 여기에 송전탑을 안 지어도 되거든요. 안 쓰는 플러그를 빼고 백화점에서도 전기를 아끼면 다 같이 좋게 살 수 있어요."

경남 밀양에서 나고 자란 초등학교 5학년 박경석(12) 군은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부지인 밀양시 부북면 화악산에서 "서울에서 전기를 조금만 덜 쓰면 다 같이 좋게 살 수 있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한전 아저씨들이 송전탑을 세우려고 나무를 베어 놓은 자리"에 심을 묘목을 끌어안은 채였다.

박 군은 지난 17일 가족과 함께 '탈핵 희망버스' 행사에 참가했다. 박 군에게 화악산은 어릴 때부터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의 장소였다. 박 군은 "화악산에 오면 기분도 좋아지고 편안해지는데, 이런 곳에 송전탑이 생긴다니 안타깝다"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은 처음엔 관심을 안 가졌는데 이제는 관심을 가져주니 좋다"고 말했다.

▲ 한전이 벌목한 송전탑 부지에 다시 나무를 심는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김윤나영)

"여러분이 심은 나무, 밤낮으로 지키겠습니다"

'765kv 송전탑 반대 고(故) 이치우 열사 분신 대책위원회'는 이날부터 1박2일간 밀양 곳곳에서 탈핵 희망버스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강원, 경기, 경북, 부산, 서울, 전북,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 300여 명과 마을주민 600여 명이 참가했다.

전날 삼문동 야외공연장에서 '이치우 열사 추모 문화제'를 마친 뒤 마을회관 등에서 묵은 참가자 200여 명은 18일 오전 9시경 한전이 129번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한전 측에서 나무를 베어낸 화악산에 올랐다. 이들은 밑동이 잘려나간 나무 사이사이에 영산홍 묘목 200여 그루를 심고 '희망리본'을 달았다.

마을 주민들은 참가자들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다. 주민 한옥순(65) 씨는 "한전 사람들이 다시 나무를 뽑으러 오겠지만, 여러분이 심은 나무를 절대 못 베게 할 것"이라며 "우리가 매일 와서 밤낮으로 나무를 지킬 테니 내년에 얼마나 자랐는지 보러 오라"고 당부했다.

"정말 눈물이 나오도록 감사합니다. 그동안 한전이랑 혼자 외롭게 싸웠거든예. 여러분이 심어놓은 나무 밤낮으로 천막에서 지새면서 (베는 것을) 막겠습니더."

▲ 129번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화악산에서 마을 주민들은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내 땅 내가 들어갔다고 소송?"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땅을 강제 수용당한 주민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전과 지식경제부를 향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부분 70~80대인 농민들은 "한전이 일방적으로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했다"며 "4억 원짜리 땅에 보상가 6000만 원이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마을 주민 130여 명은 업무방해죄로 한전 측에 소송을 당하면서 하나둘 '전과자'가 됐다. 한 씨는 "우리 아저씨(남편)도 '출입금지'라고 줄 친 곳에 들어가서 두 번 고발당했다"며 "내 땅을 내가 지키러 가는데 왜 돌아온 건 손해배상소송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조용하던 싸움'은 지난 1월 16일 밀양 농민 이치우(74) 씨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목숨을 끊고 나서야 좀더 적극적으로 알려졌다. 박 군은 이치우 씨가 숨지기 전까지 "같은 밀양 시내에 사는 사람들조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74세 노인의 분신 자결, 그곳에 가보니…)

"할머니들이 그렇게 힘들게 싸웠다는 것도 밀양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몰랐거든요. 할머니들이 매일 새벽 6시마다 (송전탑 벌목을 막으려고) 산에 기어올라 나무를 끌어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날 저녁에 놀러 갔다 와서 자려고 하니까 누가 죽었다고 마을에서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무서워서 관심이 갔어요. 갑자기 돌아가셨다니까…."

부산에서 7살짜리 아들과 함께 온 권경옥(45) 씨 또한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며 "한전이 시가에 비해 너무 터무니없이 낮게 보상하고 협의 없이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 씨는 또 "한전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금액을 법원에 맡기기만 하면 공사할 권리를 얻는다"며 "땅 주인은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고리 5,6호기 백지화하면 송전탑 없어도 돼"

ⓒ프레시안(김윤나영)
'탈핵 희망버스'를 기획한 '765kv 송전탑 반대 고 이치우 열사 분신 대책위원회'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완공하기로 한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 건설 계획이 무산된다면 밀양에 송전탑을 지을 필요도 사라진다"는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송전탑이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나르기 위해 지어지는 만큼, 궁극적으로 '탈핵'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계삼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5,6호기는 백지화된다면 2013년, 2014년 완성될 예정인 고리원전 3호기, 4호기는 기존 노선에 전선을 교체해서 승압해서 보낼 수 있다"며 "고리 1호기를 폐쇄해서 고리1호기에서 나오는 송전망을 3,4호기가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에 '탈핵'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한국에서도 원전 확장 백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희망버스 참가자 유온누리(17) 씨는 "핵 발전소를 만들면 돈은 권력 있는 사람한테 가고, 농민은 피해만 본다"며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으면서도 굳이 핵발전소를 세우는 이유는 관련자의 이권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또 다른 권경옥 씨도 "얼마 전에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에서 난 사고를 한 달이나 숨겼다가 발각돼 발칵 뒤집어졌다"며 "우리 집이 신고리 원전 5,6호기가 들어설 예정지에서 불과 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핵 문제가 남 일 같지 않다"고 동감했다. (☞"신고리 원전 사고 나면 부산 초토화")

ⓒ프레시안(김윤나영)
▲ 무단으로 들어오거나 점거 시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는 경고문. 땅 주인일지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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