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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왜 '노년유니온'을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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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왜 '노년유니온'을 만들었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서류상 이혼한 할아버지, 무릎통증 숨긴 할머니
지난 2일 노동부 앞에 수십 명의 어르신들이 모였다. 커다란 현수막까지 마련했다. 노년유니온이라는 이름의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제출하고 연 기자회견이었다. 왜 어른신들이 노동조합 결성이라는 일에 나서야 했을까?

절대 비밀! 하나

"절대 비밀로 해야 돼요." 병원에서 비정규직으로 세탁반에서 일하고 있는 김00 할머니가 나에게 다짐을 받아내듯 말씀하신다.

"병원에 가 보셨어요?" 내가 묻는다. 구부정하게 일어서는 모습이 누가 보기에도 무릎이 안 좋은 환자 모습이다. "병원에 가면 뭘 해? 돈만 들지, 나이 먹으니 퇴행성 관절염이지."

"병원 가는 게 그러하시면 좀 쉬셔야 되는 것 아니예요?"

아픈 답변이 되돌아온다. "큰 아들, 둘째 아들은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 며느리들도 마트와 식당에서 일하는데 둘이 벌어도 생활비 대기가 빠듯해. 막내는 아직 실업자이고 결혼도 못했구.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보살피려면 내가 벌지 않으면 안 돼! 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

할머니 나이는 70이다. 용역업체 직원으로 병원 세탁실에서 일한다. 할머니 소망은 건강이 허락할 때 까지 일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도 별로 건강해 보이진 않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무릎통증을 숨기기 위해 아무도 없을 때만 일어선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서 불안한데 건강까지 안 좋아 보이면 일자리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주름진 손을 내 손위에 얹으며 재차 부탁하신다. "무릎이 안 좋은 것 꼭 비밀로 해야 돼!, 알았지?"

절대 비밀! 둘

"나 이혼했어!" 일자리 상담 차 찾아오신 68세 박00 할아버지가 나를 보자 던진 첫 마디였다. 이혼했으면 복잡한 표정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표정이 밝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물었다. "왜 이혼하셨어요?"

"이건 꼭 비밀로 해야 돼!"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서류상 이혼했어. 아들 하나 있는 건 연락 두절된 지 5년이고, 달랑 집 한 칸 있는데, 이것 때문에 기초노령연금도 못 받어.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으니, 정부에서 하는 노인일자리 사업도 참여 못하고 말야. 수입은 없고, 일은 해야 되고, 기초노령연금도 받아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그래서 이혼을 선택한 거야. 그러면 한 사람은 받을 수 있어"

잘했다, 잘못했다 말을 드릴 수 없다. 복지가 불충분한 우리사회의 그늘을 볼 뿐이다. 멋쩍은 표정으로 재차 강조하는 할아버지의 "꼭 비밀이야"란 말을 들어야 했다.

3년 전 할아버지의 추억

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3년 전 3월로 기억된다.

"어르신 65세이시니 지하철 공짜로 타실 수 있습니다. 지하철 택배 일을 해보시는 게 어떠세요?" 일자리를 찾으러 온 할아버지에게 지하철택배 일을 권했다. 당시 지하철택배는 노인적합형 일자리로 많은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였다.

"내가 8월생이거든 65세 되려면 5개월 더 있어야 돼." 할아버지가 너무 고지식한 것 같아 다시 말씀드렸다. "괜찮아요, 그 정도는 지하철 무료티켓 받으실 수 있어요."

"싫어, 정확히 65세 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할 거야." 너무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기에 더 말씀드릴 수 없었다. '이런 곧으신 분도 있구나.' 결국 이 할아버지는 5개월동안 자발적(?) 실업을 겪게 되었다.

이 할아버지가,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기초노령연금 받고 픈 마음에 가짜 이혼을 한 박00 할아버지다.

ⓒ뉴시스

자살자 3명 중 1명이 노인

TV를 켜니 뉴스가 나온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60대부부가 인천시 숭의동 집에서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들이 남긴 통장에는 3000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기초노령연금 15만 원으로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인자살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주로 경제적 어려움과 신병 비관이 주된 원인이다. 경찰청이 발간한 '2011년 범죄통계'를 보면 2010년 60대 이상 자살 변사자 수가 4945명으로 전체 자살자의 33.4%를 차지했다. 자살자 3명 중 1명이 60대 이상 노인인 셈이다.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을 하는 어르신 수만 50만 명에 이른다.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복지부나,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위에서 떨어진 노인일자리 숫자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다.

"복지시설이나 인프라 늘리는 데 왜 돈을 써?. 그 돈을 그냥 어르신들에게 20만 원씩 나눠주면 고맙다는 얘기나 들을 수 있잖아! 그리고 일자리 창출 숫자도 올리고." "그냥 나눠주면 도덕적 해이가 생길지 모르니 거리청소라도 시켜! 이름도 그럴듯하게 환경지킴이로 하면 폼도 나지."

청년층의 일자리도 만들고 복지 인프라도 구축하자는 사회복지사들의 의견에 대한 복지부 실무 책임자의 대답이었다. 조금 흥분했는지 목소리 톤을 높여가며 말을 이어간다.

"복지정책 다른 건 필요없어! 노인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야! 가능한 정부 예산 투입되지 않는 일자리를 만들라구!"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현장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을 재차 질타한다.

노인복지 정책 중 하나인 일자리가 모든 복지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예산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라니 헛웃음만 나온다.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희한한 건 질 낮은 일자리라도 부처별 시도별, 구별로 할당된 일자리 숫자만 맞추면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는다. 그나마도 1년 내내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7개월에 20만 원이다. 사업을 관리하는 젊은 전담 관리자도 10개월에 100만 원.

어르신이 직접 말씀하세요….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한숨을 내쉰다.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아무리 노인복지나 일자리 정책 관련해서 제안을 해도 반영되지 않고 대화 창구도 명확치 않아요". "이젠 어르신들 얼굴 뵙는 것도 죄송스러워요. 만날 때 마다." "어떻게 됐어?. 일자린 늘어난데? 틀니는 무상지급 된대? 이렇게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거든요."

결국 뭐라도 대답해야 할 상황이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저 보다는 어르신들이 직접 구청이나 시청, 복지부에 이야기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해 보세요."

그렇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노인문제는 노인 당사자들이 나서야 효과가 크다는 것을. 어르신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활동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 그게 뭔지를 찾아야 했다.

노인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

세대별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노인복지, 노인정책과 관련해서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창구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1년에 한번씩 임금협상 및 단체교섭을 벌이듯이 그런게 필요했다. 청년 유니온 사례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인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많이 듣는 질문이 대한노인회같은 노인단체를 만들면 되지 왜 굳이 노동조합이냐고 묻는다. 심지어 어버이연합은 "노인노조는 노인들을 분열시키는 좌파조직 책동이다. 북한에 가서 해라"고 하면서 노인노조 출범을 막으려는 물리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노인단체는 많다. 하지만 이 단체들과 정부가 노인문제를 가지고 교섭하라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냥 모양일 뿐이다.

5년을 날 수로 계산하면 1825일이다. 그 중에 노인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날 수는 3일(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선거)이다. 이 3일을 뺀 1822일 동안 노인들에겐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노인복지의 주체로서 배제당하고 있다. 잃어버린 1822일 찾아야한다. 법적 교섭권을 지닌 노동조합을 통해 이 일을 이루고자 한다.

고민도 있다. 노동조합이란 명칭이 왠지 진부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운동을 하건 안하건 간에 노동조합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정규직 중심의 이익집단이라는 꼬리표다.

이런 고민 끝에 설립 신고서에 적어야 하는 노동조합 명칭을 '노년유니온'으로 했다. 복지의 사각지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직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벌일 활동도 노인들의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미 청년들의 고통도 함께 보듬어 않겠다고 창립선언문에 담았다.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 시민들이 스스로 복지재정을 책임지는 증세운동도 과감하게 펼쳐 나가기로 정했다.

고령화시대 새로운 노인상 기대하시라

노인하면 생각나는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넘어설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맞는 적극적인 노인상을 정립할 것이다.

노년유니온을 축하하면서 누군가가 트위터에 이런 얘기를 했다. "노인들의 비극은 노인이라서기 보다는 너무 젊기 때문이다." 이 말을 되새기며, 김00 할머니가 맘 놓고 병원에 가실 수 있는 날, 박00 할아버지가 서류상 이혼하지 않아도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 할 수 있는 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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