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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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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②] 이명박 정권, 노동자 대상 손배 본격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노동자들의 죽음을 현 정권과 연결시키려는 주장은 잘못됐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말이다. 이 장관은 "손배나 가압류 문제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유서에 언급됐으나,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고 개인에 대한 사항은 없다"면서 이와 같이 발언했다.

이 장관은 "손배는 노무현 정부 때가 건수는 훨씬 많고 금액은 이명박 정부 때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때 손배와 가압류 건수는 각각 62건, 60건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33건, 26건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이 지적한 대로 손배·가압류 문제가 이명박 정권 들어 처음 나타난 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손배·가압류는 존재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씨가 분신 자살했고, 같은 해 10월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던 2003년 당시 언론은 손배·가압류를 '신종 노조 탄압 수단'으로 지목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손배로 노동자가 죽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였던 최강서 씨는 지난해 12월 21일 '158억 손배 철회, 민주노조 사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손배는 어떻게 '신종 노동 탄압' 수단이 됐나?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손배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경영계는 주요 파업 대처 방식으로 민사소송보다는 형사소송을 통한 파업 주동자 구속·수감을 택했다. 노조 간부 구속 및 수억 원대 손배 청구가 동시에 이뤄졌지만, 파업이 끝난 후 노사가 서로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관례였다.

2000년대 초반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경영계에서 손배 청구는 노조에 대처하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적 압박 카드'로 부상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설 연구원이 2004년 내놓은 '불법 쟁의 행위와 손해배상·가압류에 관한 연구'를 보면, 경영계는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최소한의 자구 조치"라고 주장했다.

손배의 양태도 달라졌다. 경영계는 '노조 조직'에만 부과하던 손배를 2000년대 이후 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평조합원, 가족, 신원보증인에게도 부과했다. 가압류 대상도 노조 조합비에서 노조원 개인의 임금 및 퇴직금, 노조원의 아버지나 형제의 선산까지로 확대됐다. 친척에게까지 '연좌제' 성격의 차압이 들어오니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 관계가 파탄 나는 것은 당연했다.

배달호·김주익 씨가 숨진 2003년 전후 손배는 '노조에 대처하는 협상 카드'에서 '노조 탈퇴 압박 수단'으로 차츰 진화했다. 사측은 전방위적으로 손배·가압류를 걸어 노동자를 압박한 뒤,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가압류를 취하했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손배를 갚을 수 있는 길은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한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라며 "그렇게 노조 간부들이 회사와 손잡고 해고 명단이나 손배 대상에서 빠지면, 노조는 완전히 깨진다"고 말했다.

배달호 씨의 죽음은 '손배 탄압'의 상징이었다.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던 배 씨는 2002년 단체협상이 어그러지고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이 압류됐다. 배 씨는 구속된 이후 현장에 복귀했지만, 가압류로 6개월 이상 사실상 임금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초반에 배달호 씨의 죽음을 외면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김주익 지회장마저 '손배'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 전 대통령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났다. 2003년 11월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열고 급여에 대한 가압류 범위를 최저임금이 보장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경영계도 신원보증인과 평조합원에 대한 손배 청구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가압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이 주로 '징계 해고자'라는 점이다. 이미 해고돼 최저임금만큼 남겨둘 '급여'조차 없는 노조 간부들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은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차압됐다. 해고 시 가압류로 퇴직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이명박 정부 때에도 이어졌다.

"민주노총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 575억→1582억"

이명박 정부 들어 변한 것도 있었다. 우선 이채필 장관 스스로 밝혔듯 손배 액수가 절대적으로 늘었다. 민주노총이 2011년에 낸 정책 보고서를 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은 2003년 10월 575억 원에서 2011년 5월 1582억7000만 원으로 3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손배 액수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고용노동부 자료를 따르더라도, 손배 총액은 2010년 121억4200만 원에서 2011년 7월 700억1000만 원으로 6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2010년 13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160억4900만 원으로 12배가 됐다.

손배 액수가 커진 이유에 대해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2003년 직전까지만 해도 돈 있는 사측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손배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나,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제한하려는 노력이 없다 보니 마구잡이로 금액을 청구한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노조에 대한 손배 청구 본격화

이전까지 손배 청구 주체가 주로 사측이었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 정부가 노조와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손배를 청구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가 대표적이다.

2009년 당시 1년치 최루액 사용량의 90%를 사용해 파업을 진압했던 정부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상대로 경찰 치료비와 경찰 개인 위자료 및 장비 손상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의 원고 '대한민국 및 경찰'이 피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노동자 103명에게 세 차례에 걸쳐 청구한 손배 금액만 22억 원이다. 65명을 대상으로 청구한 가압류 금액도 20억 원에 달한다.

2011년 사측이 공격적으로 직장 폐쇄를 한 유성기업에서도 정부가 유성기업 노동자 30여 명에게 '경찰 피해 및 장비 손상비' 1억1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2800만 원의 가압류를 신청했고, 해고자인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장의 퇴직금을 압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국가가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승소한 손배 소송 수는 8건, 압류를 마친 손배 액수는 1억6000만 원이다. 이는 정부가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화물연대(특수고용직) 파업에 대한 손배 소송, 그리고 패소한 소송과 진행 중인 소송은 제외한 수치다.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이전에는 회사만 손배를 때렸지만, 국가까지 나서서 노동권이 있는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며 "다친 사람은 우리가 더 많은데 경찰 개인 위자료 2억 원까지 청구하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공공 부문에서 정부가 '손배로 적극 대응' 독려하기도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파업 유도→고소·형사처분→파업 불법화→징계해고·손배 소송→노조 파괴'를 묵인하거나 조장한다고 분석한다. (☞ 관련 기사 : "노동부, 타임오프 감독하며 금속노조 찍어 관리", "용역한테 쇳덩이 맞고 살려달라고 해도 경찰은…", "폭력을 상품화한 그들, 몸통은 현대차")

정부와 경찰의 묵인 하에 손배는 '노조 압박' 수단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민주통합당 의원이 아산경찰서에서 입수한 문건을 보면, 경찰은 "유성기업 파업은 적법"하다고 자체 판단했지만 "(파업) 상황이 악화하고 여론 지지를 확보한 뒤 경찰력 투입, 노조 지도부 체포영장 조속 발부를 통한 (노조) 지속 압박, 사측에 손해배상 청구 유도를 통한 지속적 노조 압박" 등의 대응책을 내부 문건으로 공유했다. (☞ 관련 기사 : 구사대 동원 트라우마, 유성기업 노동자 자살)

공공 부문에서는 정부가 더 노골적으로 '노동 탄압'을 주문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한국전력 자회사인 발전회사들의 노조 탄압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가 직접 주관한 회의에서 공기업의 "(민형사상) 고소, 고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독려했다는 점이다.

2009년 9월 17일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주재로 '노사관계 회의'가 열렸다. 노동부, 행안부, 지경부, 교과부, 방통위 등 정부 부처 국장이 참석한 자리였다. 발전노조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철도공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노조 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지 실천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준 차장은 "해당 기업이 고소, 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 당부"라며 손배를 포함한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독려했다.

이영호 비서관은 "인사권, 경영권에서 양보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대처"하되 "이면계약 등 노사 간의 이면 합의는 절대 용납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정부가 이미 일어난 노사 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정부가 직접 '노사 문제에 개입'해 노사 분규를 유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영호 비서관이 '노조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한 철도공사의 상황을 보자. 철도공사는 2006년 3월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철회, 인력 충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걸고 불과 나흘간 돌입한 파업을 빌미로 2009년 100억 원대의 손배 소송과 가압류를 단행했다. 2009년 파업 때도 노조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200여 명이 해고됐고 1만3000여 명이 징계됐으며,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뒤따랐다.

결과는 참혹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참여한 이후 해고자가 된 허모 씨(39)는 2011년 11월 21일 화장실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가 '발전노조 대응 회의'를 한 지 두 달 뒤인 2009년 11월에는 동서발전이 발전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파업을 유도했다. 한전은 발전회사 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실적과 '노조 사무실 회수' 노력을 경영 평가에 반영했다. 같은 해 발전노조 영흥화력 남성화 지부장은 '근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됐다. 발전회사가 노조에 걸었던 손배 소송은 결국 법원에서 기각됐다.

▲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 민영화 등에 반대해 4일간 파업을 벌였다가 철도공사로부터 100억 원대 손배 소송에 휘말렸다. 사진은 철도노조가 지난해 2울 서울역 광장에서 KTX 민영화 반대 결의대회를 여는 모습. ⓒ연합뉴스

수십억 원대 손배액은 합당한가?

손배 가압류가 노동자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에도 경영계는 손배·가압류가 '불법 파업을 막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합법 파업'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은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법원은 파업권과 경영권이 충돌하면 경영권이 우선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철도노조가 KTX 민영화에 반대하거나, 한진중공업 지회가 정리해고에 반대하거나, 언론노조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거나, 두산중공업 노조가 회사 매각에 반대해 파업하면 '불법'이다. 파견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원청 사업장에서 파업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사측이 청구하는 수억, 수십억 원대의 손배액이 합당한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일례로 경주 발레오만도가 파업 참가자 32명에게 청구한 손배액 26억4800만 원에는 영업 손실액, 용역 투입비와 더불어 파업에 따른 '사장의 명예훼손 및 정신적 피해 위자료'가 포함됐다.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파업으로 손해가 안 생겼을지라도 사측은 노조 압박 수단으로 손배 대상이 안 되는 천문학적 액수를 일단 청구하고 본다"며 "설사 법원에서 몇 년 뒤에 기각 판결이 나더라도 당장 파업을 진행하는 노조를 무력화해야 하고, 가압류도 (되면 좋고) 법원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이 신청한 '가압류'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신속하게 재산을 차압해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사측의 자료를 넓게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 법률원장은 "노조로서는 영업 손실액이 적절한지 확인할 정보가 없고, 법원은 사측이 면밀한 손실액을 입증하지 않아도 사측 자료를 편의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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