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차기 교황은 젊고 보수적인 인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차기 교황은 젊고 보수적인 인물?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가톨릭 역사 바꾼 베네딕토 16세의 퇴위 결정
전 세계 12억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1일 갑자기 퇴위를 발표해서 가톨릭 신도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추기경회의 의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의 말대로 청천벽력 같은 돌발사건이었다. 금년 85세인 베네딕토 16세는 이날 추기경회의에서 라틴어로 진행된 담화에서 "여러 차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양심을 깨우고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나는 나이가 너무 많다"며 "지금의 내 체력으로는 사목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황직 퇴위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오는 28일 20시를 기해 교황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교황의 말을 고스란히 인용해 보겠다.

"나는 나의 고령 때문에 지금의 체력으로는 사제의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 세계에서 성 베드로의 방주(方舟)를 관리하고 복음을 전파하려면 육체와 정신의 왕성한 활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수개월 동안 내 몸에서 이 활력이 빠져나간 것을 느꼈다. 내가 부여받은 사제직을 잘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이 라틴어로 말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통신사 <ANSA>의 지오바나 키리 기자 외에는 교황의 담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기자가 한 사람도 없어 역사적인 뉴스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교황청 라디오 방송이 라틴어를 이탈리아어와 각국어로 번역해서 발표한 이후에야 교황의 역사적인 결단 뉴스가 바깥세상에 알려지게 돼, 그만큼 시간이 지연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11일(현지 시각) "오는 28일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재임 중 교황이 물러나는 것은 598년 만의 사건이다. 차기 교황은 3월 말 선출될 예정이다. ⓒ뉴시스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사임 결정은 1415년 교황 그레고리 12세가 자진 퇴위한 이후 598년 만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다.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를 통틀어 여덟 번째의 퇴위라고 한다. 그러나 그레고리 12세까지의 교황 퇴위는 자의(自意)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진 퇴위를 기준으로 하면 베네딕토 16세의 퇴위는 그레고리 12세 이후 두 번째가 된다. 하지만 그레고리 12세의 퇴위도 당시 세 사람의 교황이 서로 자신이 교황이라고 다투는 과정에서 교황을 한 사람으로 결정하기 위한 협상의 결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베네딕토 16세가 완전한 자의로 스스로 교황 자리를 포기한 최초의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을 그만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베네딕토 16세의 결정은 지금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망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던 불합리한 교황제의 관행을 깨고,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면 자리를 그만두는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현대인의 사고에 맞는 결단이었다. 교황 바오로 6세도 한때 퇴위를 고민한 적이 있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진 사퇴의 결의를 문서로 작성까지 해놓았으나 고통 때문에 "십자가에서 내려갈 수 없다"는 생각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측근들의 증언이 있다. 그렇게 보면 베네딕토 16세가 어려운 결단을 실행에 옮긴 첫 교황이 된 것이다. 가톨릭교회를 20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현대화한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정신이 성취한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르몽드>는 지난 12일자 "겸손하면서도 명석한 행동"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교황의 행동을 가톨릭교회를 현대적 사고와 접목한 결단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베네딕토 16세 후계자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가톨릭교회 역사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선례를 세운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 역사는 베네딕토 16세가 퇴위하는 2013년 2월 28일 밤 20시를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게 될 것이라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교황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직자이지만, 그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베네딕토 16세는 이미 2010년에 교황도 "은퇴할 권리가 있고, 만약 그가 '물리적, 심리적, 영적' 힘의 결핍으로 인해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상황에 따라서 은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을 현실화한 베네딕토 16세의 결단에 따라, 가끔 자기 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교회가 세기의 시계에 시간을 맞추게 됐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적인' 교황이며, 베네딕토 16세의 후계자들도 '정상적인' 선대 교황의 결단을 정신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라고 <르몽드>는 전망했다.

28일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새로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의 교황선거 회의)가 실시된다. 부활절 전, 아마 3월 31일 무렵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추기경 수는 208명이다. 하지만 80세가 넘는 추기경은 선거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 117명만이 콘클라베에 참여한다. 아프리카나 남미 출신 추기경들의 이름이 언론의 하마평에 보도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게 바티칸 주재 <르몽드> 특파원 필립 리데의 분석이다. 추기경 숫자로만 따지면 61명의 추기경이 참가하는 유럽 출신 추기경이 유리하고, 그중에서 28명을 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이 새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가톨릭 교세는 유럽에서 퇴조하고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상승세라 예단은 금물이다. 재임 8년 동안 교회 내 성직자들의 아동성범죄를 단죄하는 데 단호한 반면 보수원리주의자들에게는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베네딕토 16세가 게임의 룰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이 새 교황 선출에 영향을 끼치리라는 분석도 있다. 베네딕토 16세 재임 중 교황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의 절반을 임명한데다, 역사상 처음으로 은퇴한 교황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새 교황선거가 실시되는 만큼, 베네딕토 16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몽드>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나이는 베네딕토 16세보다 젊되 성향은 보수적인 인물이 새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당선 당시 젊었던 요한 바오로 2세와 지적으로 원숙하고 보수인 베네딕토 16세의 장점을 종합한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결국 다시 보수 교황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르몽드>는 지난 11일 교황 사임이 일으킨 현대화의 바람이 교황을 선출하는 밀폐된 콘클라베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유감스럽다고 좀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