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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가스'에 현대제철서 5명 사망…희생자는 또 '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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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가스'에 현대제철서 5명 사망…희생자는 또 '하청' 새벽까지 일하다 질식사…"안전 장구 미지급이 부른 참사"
10일 새벽 현대제철 충남 당진 제철소에서 용광로 보수 공사를 하던 남 모(25) 씨 등 노동자 5명이 누출된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이번에도 희생자는 하청 노동자였다.

현대제철의 하청 업체인 한국내화 소속 남 모(25) 씨, 이 모(32) 씨, 또 다른 이 모(42) 씨, 채 모(30) 씨, 홍 모(35) 씨 등 5명은 이날 새벽 1시 45분께 막바지 용광로 보수 공사를 벌이다가 산소 부족으로 쓰러졌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0여 분 뒤인 2시 30분께 숨졌다.

사고 당시 이들은 가스 누출 등에 대비한 별도의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노동자들은 지름 8m, 높이 12m의 전로(고로에서 녹인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안에서 내화 벽돌 설치 공사를 마무리하고 공사를 위해 설치한 임시 발판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러다 바닥에서 아르곤 가스가 누출되며 산소 부족으로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산소 농도는 기준치 22%에 못 미치는 16%로 측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곤은 공기 중에도 존재하지만,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는 산소 농도를 떨어뜨린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조선소에서는 아르곤 가스 사고가 나면 가스 마스크를 쓰기 전까지는 구조대가 현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아르곤은 밀폐된 공간에서는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뇌 속에 산소를 밀어내는 살인 가스"라고 경고했다.

▲ 전로(轉爐) 보수 공사 도중 산소 부족으로 하청 노동자 5명이 숨진 충남 당진 현대제철에서 10일 경찰 과학수사팀이 감식을 위해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제철 사과했지만, "'을'만 죽는다" 비난 봇물

현대제철은 10일 사고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관계 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점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제철이 공기(工期)를 앞당기기 위해 무리하게 밤샘 작업을 강행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새벽까지 용광로 안에서 안전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고 공사를 벌이다가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망자들은 지난 2일부터 8일간 전로 보수 공사를 벌인 뒤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대제철은 보수 공사를 마치고 이날 오후 시운전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사망자들은 새벽까지 작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공사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 5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지는 산업재해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플랜트노동조합은 "사측이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고 기본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고 있다"며 "노동자들은 초과 노동을 하고 있다"고 현대제철을 비판했다.

사고 이후 인터넷과 SNS 등에서도 '을(乙)만 죽어나가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갑을 관계의 가장 말단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한 일을 떠맡으면서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1월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숨진 사상자 5명은 모두 하청 업체 직원이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 감독을 통해 삼성전자의 법 위반 1934건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2일 화성 공장에서 또 사고가 나 하청 노동자 3명이 다쳤다.

3월에는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하청 업체인 유한기술 노동자 6명이 숨지고, 대림산업과 유한기술 노동자 11명이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원청 업체가 위험한 일을 하청 업체에 떠넘기면서 산업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는 이유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가스 누출 위험이 있는 밀폐 공간 작업을 할 때는 노동자에게 휴대용 가스 감지 기구를 지급해야 한다"며 "하청 업체가 위험한 작업을 할 때 안전에 대한 승인을 내리는 것이 원청인 만큼, 이번 사고는 현대제철의 안전 관리 소홀이 빚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국장은 "현행법 체계는 모든 책임을 하청에 전가하고, 기업주들은 안전 조치를 안 지켜도 벌금 100만 원만 내면 끝난다"며 "산업 안전 관리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높이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찰은 노동청, 가스안전공사 등 관계 기관 소속 80여 명과 함께 이번 사고에 대한 현장 감식을 벌이고, 현대제철을 상대로 안전 조치를 제대로 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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