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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10명 죽인 '당진 연쇄 살인 사건' 진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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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9개월간 10명 죽인 '당진 연쇄 살인 사건' 진범은? [박점규의 동행] 현대제철 산재 사망…일터의 하청화와 위험의 외주화
제철소에서 코일을 만드는 열연기계를 정비하는 일을 하는 강현구 씨(31)는 최근 다섯 명의 노동자가 돌아가신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다닙니다. 이제 돌이 갓 지나 재롱을 피우기 시작한 아이 때문에 행복하지만,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면 답답해집니다.

그는 현대제철 소속이 아니라 현우테크라는 사내 하청 업체 소속입니다. 보너스가 없는 3월 그가 받은 월급은 150만 원입니다. 주간근무를 하지만 일이 많아 잔업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는 출근해 주 6일 근무를 하는데도 상여금까지 다 합쳐 월 평균 임금이 200만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는 군대를 막 제대하고 2006년 당진공장에 들어와 3년 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힘들고 월급은 적어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2010년 다시 들어와 다니고 있습니다. 뭐가 힘드냐는 질문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힘들지 않은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위험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입니다.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인 하청 노동자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9개월 동안 열 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영화화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 동안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이 죽었습니다. 1986년 2차례, 1987년 3차례, 1988년 2차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1차례 등 총 10회에 걸쳐 불특정 다수의 여성 10명이 차례로 살해되었는데, 사건 모두 태안읍 반경 2㎞ 이내에서 일어났습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별 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잇따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연쇄 살인 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어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3000여 명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습니다.

▲ 전로(轉爐) 보수 공사 도중 산소 부족으로 하청 노동자 5명이 숨진 충남 당진 현대제철에서 10일 경찰 과학수사팀이 감식을 위해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충청남도 당진군 현대제철 공장 안에서 10명이 죽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철 구조물 해제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10월에는 크레인 전원 공급을 하던 노동자가, 11월에는 교량 상판과 전로제강공장 노동자가, 올해 3월에는 고로3기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피해자는 모두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이틀 동안 조사를 벌였으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늘 그랬듯이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을 범인으로 몰았습니다.

다섯 명 연쇄 사망 사건 범인이 안전 불감증?

정부가 범인을 잡지 못하는 사이 이번에는 한꺼번에 다섯 명이 숨졌습니다. 전로 내부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아르곤 가스 배관을 연결해 질식사한 것이었습니다. 흔한 산소마스크 하나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현대제철은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가량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고, 4시간 뒤에야 고용노동부에 사고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관련 기사 : '살인 가스'에 현대제철서 5명 사망…희생자는 또 '하청')

노동자들의 특별 감독 요구를 외면하고 연쇄 살인 사건 조사를 단 이틀 만에 끝낸 후 범인을 부주의로 돌린 고용노동부는 다섯 명이 한꺼번에 죽으면서 여론의 관심과 비난이 빗발치자 특별 감독을 실시하겠다고 합니다.

정부는 근로감독관과 안전 전문가 27명을 동원해 5월 20일부터 23일 동안 특별 감독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A, B, C지구 전 지역을 감독하고, 원청과 하청, 도급 사업 등 공장 전체의 안전 보건 관리를 들여다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당진 연쇄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질까요?

정부가 이번에도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을 범인으로 지목할까요? 아무런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하청업체 '바지 사장'을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고 할까요? 헬기를 타고 틈나는 대로 당진공장을 방문해 공기를 단축하라고 지시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범인이라고 할까요?

진짜 범인, 밝혀질까?

우선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몇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금속노조 현대제철지회에 따르면 관리직을 빼고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는 3098명입니다.

2010년 10월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 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2802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초 회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한 문서에는 45개 사내 하청 업체에 3202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서에 나온 인원은 회사가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숫자이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2, 3차 사내 하청을 포함해 최소 5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중 정규직은 3098명, 사내 하청은 5000명으로 사내 하청 비율이 62%에 달합니다. 회사가 1~3기 고로를 건설하면서 정규직도 꾸준히 늘었지만 사내 하청 노동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기 때문입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내 하청 비율 62%


사용자들은 전기전자와 자동차에서는 20-30%, 철강에서는 40-50%, 조선에서는 60-70%의 비율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진공장의 사내 하청 비율은 철강업종의 평균 사내 하청 비율인 43.7%보다도 월등히 높고 사내 하청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조선업종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더 나아가 현대제철이 사내 하청 비율을 70%까지 늘린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 조선소 노동자들 ⓒ프레시안(여정민)
사내 하청 노동자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선소에서 사망 사고를 비롯한 중대 재해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세 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가 선박 블록에 깔리거나 바닥에 추락해 숨졌습니다.

조선소와 철강 회사에서 유독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정규직을 고용해야 할 상시적인 생산 공정의 대다수를 사내 하청 노동자로 채워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터를 하청화하고,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일은 하청에게 떠넘기고 책임은 회피하고

고용노동부의 특별 감독이 끝나는 6월 중순이면 당진 연쇄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이 밝혀질까요? 이번에는 고용노동부가 현대제철 회사의 책임을 묻고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하게 될까요?

현대제철은 생때같은 아버지와 남편, 소중한 아들과 동생을 하루아침에 잃은 유가족들에게 공장 안에 분향소조차 차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사내 하청 '바지 사장'을 시켜 유가족들의 분노를 보상비로 가라앉혀 장례를 치르게 하고, 들끓던 여론도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질 것입니다.

정부는 늘 그랬듯이 원청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할 게 뻔합니다.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기업 살인법'을 제정해 산재 사망 사고를 기업 살인으로 보고 엄벌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도 정부와 국회에는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결국 대기업이 벌이는 연쇄 살인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은 노동자들 자신밖에 없습니다.


대기업의 연쇄 살인에서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정부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에서는 노조 건설 이후 산재 사망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위험한 일에 내몰리는 일들을 없애고, 노동 조건을 개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제철 강현구 씨는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를 만들고,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바지 사장'들이 교섭에 나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앉아 있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5000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함께 싸운다면 당진의 연쇄 살인 사건은 멈출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합원이 300명 남짓에 불과하지만 이번 사망 사고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15년의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화성에서 살인 사건은 더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철소와 조선소가 몰려 있는 당진과 거제, 울산과 목포의 연쇄 살인 사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진 연쇄 살인 사건의 주범은 대기업의 탐욕입니다. 지금 '슈퍼 울트라 갑'이 벌이고 있는 일터의 하청화와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용기 있는 노동자들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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