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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폐해' 해결책이 사유화? 잘못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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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 폐해' 해결책이 사유화? 잘못 짚었다 [민영화 공동 기획 ①]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토교통부는 '자회사' 형태의 수서발 KTX 분리를 추진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는 영리 병원과 각종 규제 완화로 대변되는 '의료 산업 활성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도시 가스 도매 시장에 경쟁 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가스 민영화법(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일부 지자체도 수자원공사를 통해 상수도를 민간 위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과 민주노총은 철도,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민영화(사유화) 현황을 짚는 기획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편집자>

일반적으로 민영화는 비가역적 조치라고 알려져 있다. 일단 민영화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시기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나 각 부처의 주요 업무에서도 민영화라는 용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영화는 경쟁 체제 도입, 공공 부문의 비효율성 제거, 서비스의 질 제고 등으로 포장되어 관계 부처가 추진하고 있다. 민영화 정책을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민영화 조치의 비가역성 때문이다.

민영화(民營化) vs 사유화(私有化)

정부와 기업들은 민영화를 일반적으로 "정부가 공급하던 공공 서비스를 민간 부문에 이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고 정부의 역할 범위를 축소하고자 하는 일련의 조치들"이라고 규정하긴 한다. 영어로 표현하면 privatization으로서, 사유화된 공공 부문을 매입하는 당사자가 민중(people)이 아니라 사기업(私企業, private enterprise)임을 의미한다.

이 용어가 자의적으로 '민영화'라고 번역되면서 공공 부문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民)'이라는 용어는 백성을 지칭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지만, '관(官)'은 착취, 국가의 통제, 관료의 경직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영화(民營化)는 공공 조직을 '비효율적인' 관료가 운영하는 것에 반대하여 국민이 운영하도록 개혁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민영화의 본질은 관료의 조직을 백성의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이용해온 공유 재산을 이윤을 추구하는 소수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민영화가 아니라 '공(公)'적(public) 조직을 '사(私)'적(private) 소유로 전환한다는 의미에서 사유화(私有化)가 올바른 표현이다.

사실 민영화론이 대두하는 이유는 민영화가 타당하고 선(善)해서가 아니라, 민영화를 통해 이득을 얻는 정치·경제적 세력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가 노리는 것도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철도노조

민영화, 얻은 것과 잃은 것

민영화 신봉자들은 민영화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곤 한다.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이 높아지면 공공 서비스 요금이 인하되고, 서비스 질도 향상되며, 산업 재투자와 고용 유연화도 확대된다는 것이다. 실제 민영화 시행 초기에는 인력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 효과가 있고, 공급자들 사이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서비스도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근본적 토대가 작동할 수 없는 필수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자유로운 상호 작용이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오스트리아의 반(反)세계화 활동가인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가 쓴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는 자연 독점으로 경쟁 체제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도 경쟁 체제가 성숙하지 않은 물과 전기·가스 등의 에너지 공급, 보건·의료 체계, 교육 제도, 연금 보험, 교통망, 전화망, 인터넷망을 민영화한 이후 나타난 재앙의 기록들을 파헤치고 있다. 정부 독점 기업이 소수 공급자가 있는 민간 과점 체제로 전환되면서 시장이 분할되고 나면 동업자들끼리 담합하게 되고, 서비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민영화론자들이 외쳤던 경쟁의 효율은 사라져버린다. 그 결과 서비스의 질도 열악해지고 서비스의 공급도 불안정해지지만, 정작 이를 규제하고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전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전력 민영화 이후 민영화 기업들은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도매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소매 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여기에 엄청난 보조금을 쏟아 부어야 했다. 물론 소매가격도 크게 뛰어올랐다. 가격을 인상하기 위한 발전기의 '전략적 가동 중단 사태'도 발생하여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도 위협받았다. 이에 대해 민영화 찬성론자들은 '그것은 자유화 문제가 아니라 규제 문제였다'고 얘기했지만, 자유화 이후 민간 공급자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영국에서 민영화했던 철도를 불완전하게나마 다시 공영화했던 사례에서도 민영화의 한계가 드러난다. 철도 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누적 적자와 저수익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철도 회사들이 무리하게 인력을 감축하고,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정부의 규제 조치를 거부했다. 그 결과 안전사고가 빈발했다. 오히려 국영 기업이던 시절보다 효율이 떨어졌고 서비스도 망가졌다. 더욱이 철도 산업에 들어간 정부 지원금 액수를 비교해보면, 민영화 이전 5년 동안 영국 정부는 철도 산업에 24억 파운드를 지원했지만, 민영화 이후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그 두 배가 넘는 54억 파운드를 지원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빈발하고 있는 KTX 열차 사고 또한 수년간 진행된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유지·보수 업무가 외주 용역 업체로 넘어가고, 철도공사가 무분별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 방침을 취한 결과이다. 철도 업무 민영화·외주화·상업화 등이 열차와 승객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토교통부는 오히려 경쟁 체제 도입을 운운하며 철도 자회사 설립을 통한 철도 민영화에 나서고 있다.

사기업은 수익을 우선하고, 이익이 없는 것엔 소홀하기 마련이다. 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에서 나타난 도쿄전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초기에 대응을 제대로 했더라면 방사능 누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년 전부터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의 결과 도쿄전력은 금융 자본이 최대 주주가 된 사기업의 수익성 논리에 매몰되었다. 결국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계속된 안전성 경고를 무시한 채 사고 후에도 파장 축소에 급급했고, 일본 정부는 이에 휘둘려 국가적 재난을 낳고 말았다.

민영화에 따른 공적 자산 처분은 국가 재정 수입 증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그런 수입은 일회적일 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 미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 그 수혜는 모두 시장 지배력이 강한 소수의 민간 자본에 돌아가고, 민영화의 수익 증대 효과는 투자자 또는 주주들에게 편중 배분된다. 반면에 민영화로 인한 민간 독점의 폐해와 부담은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정부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효율로 모든 걸 따질 수는 없다. 공기업이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 공기업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복지적 성격의 요금 체계와 수익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산간벽지에 대한 무난한 공급 체계를 갖춰야만 하고, 사회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재정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민영화되고 나면 이 과업은 달성될 수 없고, 그 과업 수행에 필요한 비용은 복지 지출 증가, 낙후 지역 지원 및 환경 보호를 위한 지출 등의 형태로 납세자가 부담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적 약자들이 민영화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된다.

알짜배기를 판다? 민영화 논리의 모순

시장 논리에 따르면, 공공성이 매우 낮은 기관, 그중에서도 경영 효율성이 미흡하여 정부 지원이 불필요하게 많이 요구되는 기관이 우선적으로 민영화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정 수입 확보가 민영화의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다 보니, 대체로 그동안 국가가 선제 투자를 많이 해놓은 기간 산업이나, 수요자가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필수재 관련 기관, 또는 공적 자금 투입 등으로 효율성과 수익성이 호전된 기관 등, 매수자가 흔쾌히 돈을 지불하려는 기관이 민영화의 대상이 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한다.

정부는 실적이 나쁜 공기업에 재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여 먹기 좋게 포장한다. 공기업은 민영화되기 전에 대부분 경영학적으로 정비되고, 이들 기업에 부과되었던 부담은 경감된다. 그러면 그들이 아직 국가 소유인 동안에도 적자를 모면할 수 있는 셈인데, 이렇게 공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진다면 이를 매각할 이유가 있을까? 민영화를 하면서도 공공성을 유지하고 가격을 적절하게 통제하려면 강력한 규제 정책이 새롭게 필요하다. 하지만 그 규제를 실질적으로 집행할 행정력이 있다면 차라리 정부가 직접 수행하는 게 낫고, 그런 행정력이 없다면 민영화한다 하더라도 공공성 유지나 가격 통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어느 경우나 비효율적인 셈이다.

한국에서 민영화 논리는 박정희 정권으로 대표되는 개발 독재 시기에 훼손됐던 민간 부문의 자율성을 복원하는 과정, 즉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영화 논리의 기반이자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초가 되는 방만 경영과 비전문적 경영, 정경유착, 낙하산 인사 등은 국가적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공기업 체제 자체에 내재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기업이 사회적 통제로부터 유리되어 정권의 사적 전유물로 전락하였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민영화된다고 해도 이러한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민영화는 공공 기관에 필요한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소유 구조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공기업 체제의 문제점을 다른 형태로 재생산할 뿐이다. 민영화된 기업은 국책 사업 등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국가의 특혜를 받으며 정실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민영화 기업인 KT와 포스코 등에서 낙하산 인사, 방만 경영, 정경유착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전 세계적으로 보면 1997-1998년을 정점으로 공공 부문 사유화 추세가 약화되고 있다. 이는 민영화 이후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증거가 없으며, 기업 차원의 효율성 제고가 사회 차원의 효율성 감소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남미에서는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등장한 이래 계속된 좌파 정권의 집권 속에서 석유와 가스뿐만 아니라 전기, 통신, 철강, 항공, 금융 등의 국가 기간산업들에 대한 국유화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권 교체와 헌법 개정 수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만큼 이러한 사례를 당장 대안으로 들이밀기는 어렵다.

더욱이 국유화는 신자유주의가 불러일으킨 시장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에 가장 먼저 유탄을 맞은 영국에서 노던록,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 등 대형 은행들이 국유화되는가 하면, 미국에서도 GM, AIG, 시티은행 등의 거대 기업들의 국유화가 논의된 바 있다. 이들 회사가 도산하면 미국의 경제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기 때문에 정부가 일시적으로 국유화한 후 강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다시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오바마 정부의 '국유화' 정책은 오히려 국민들의 세금으로 부실을 털어내고 자본가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생산수단을 넘겨주려는 목적으로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공적 자금 투입 기업들이 강력한 구조조정과 국가 재정 투입을 통해 알짜 기업으로 변모한 후 다시 민간 자본에 매각되는 사례를 통해 이미 경험한 바다. 이익은 재벌과 금융 기관, 외국 투기 자본이 사적으로 가져가지만, 구조조정의 부담과 희생은 노동자와 민중에게 전가되었다. 또한 민자 컨소시엄을 통해 엉터리 수요 예측을 근거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뒤 엄청난 부실이 발생하자 이를 철도공사가 인수하도록 하여 사실상 국유화한 인천공항철도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관철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국유화, 민영화 자체가 아니라 이들 산업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통제가 아닐까. 이를 위해서라도 기만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또한 공적 통제의 영역 및 대상을 축소하고, 공공 기관을 통한 공적 역할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공공 기관 합리화 정책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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