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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은 정말 몰랐을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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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은 정말 몰랐을까 <3> 미, 93년부터 항공기테러 대비
***미국 자체에서도 비행기 테러에 관한 조사와 우려가 있었다**

미국은 9.11 발생 약 3개월전부터 독일, 이스라엘 등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임박한 항공기 자살 테러에 관해 경고와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자체에서도 이미 1993년부터 항공기 테러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아가 항공기 테러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93년 미 국방부는 15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항공기 테러의 가능성과 대비책에 관한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했다. 94년에는 미국 내외에서 3차례의 항공기 테러 시도가 있었다. 또 95년 마닐라에서 체포된 압둘 하킴 무라드의 경우는 거사 직전에 이를 정도로 테러 계획이 상당히 진척돼 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납치 비행기를 몰고 미 CIA 본부를 공격할 계획이었다고 자백했다. 93년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최초의 폭탄 테러 배후조종자인 람지 아메드 유세프도 무라드와 동일한 계획을 미 정보요원들에게 털어놓은 바 있다.

미국은 또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항공기 테러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비책을 강구한 바 있으며 2002년 동계 올림픽에 대해서도 항공기 테러 방지책을 논의했다. 국제 체육계 인사들에 따르면 항공기 테러는 이미 지난 72년부터 올림픽 보안대책의 주요 항목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FBI는 96년부터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 테러를 위해 미국의 항공학교에서 비행술을 배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이에 관한 수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나아가 2001년 7월까지 미국에서 진행된 아프리카 케냐 등 미 대사관 폭탄테러범에 관한 재판에서는 빈 라덴의 부하들이 항공기 조종술을 배웠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9.11테러에 대비한 본격적 수사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 지난 93년 항공기테러에 관한 전문가위원회 가동**

미 정보기관들은 9.11 이전까지 민간 항공기를 이용한 자살 테러의 가능성을 고려한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이미 9년전부터 그러한 공격을 우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1993년에 미 국방부는 전문가위원회를 구성, 항공기가 지상 목표물 공격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미 국방부 특수작전 및 저강도분쟁국을 위해 이 위원회를 조직했던 예비역 공군 대령 더그 메나치크는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 과격한 생각으로 치부됐다”며 “내가 퇴임한 뒤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사장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회에 참가했던 전문가들은 이같은 연구 결과가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상세한 시나리오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의 초안은 국방부와 법무부,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서 회람됐지만 고위 관계자들은 결국 일반에는 공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1년 10월 2일자, ‘9.11 이전 미 정부는 생화학 테러 등 다른 형태의 테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조 워릭·조 스티븐스 기자)

***94년 한 해 동안 3차례의 항공기테러 시도**

1994년 한 해 동안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 시도가 3차례나 있었다.

첫 번째 시도는 1994년 4월 택배업체인 페덱스(FedEx)의 한 정비사에 의한 것이었다. 해직 위기에 몰린 그는 승객을 가장, DC-10 여객기에 탑승했다. 그는 비행기를 멤피스에 있는 페덱스 건물에 충돌시키기 위해 조종실에 침투했다가 승무원들에 의해 진압됐다.

두 번째는 그해 9월에 발생했다. 한 조종사가 세스나기를 백악관을 공격한 것이다. 이 경비행기는 대통령 침실 못 미쳐 백악관 내의 나무에 충돌했다.

세 번째는 무장 이슬람 단체들에 의해 에어 프랑스 항공기가 알제리에서 납치된 사건이다.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마르세유에 착륙시키고 파리까지 가는 데 필요한 양보다 3배나 많은 27톤의 연료 주입을 요구했다. 그들의 목적은 비행기를 에펠탑에 충돌시키는 것이었다. 프랑스 특수군이 이를 진압했다.

(뉴욕 타임스 2001년 10월 3일자, ‘이전의 하이재킹 시도들, 9.11 조짐을 알렸으나 간과되다’, 매튜 왈드 기자)

***95년, CIA에 대한 항공기테러 준비 중이던 테러리스트 체포**

1995년 1월, 필리핀 경찰은 마닐라의 한 아파트에서 압둘 하킴 무라드라는 사람을 체포, 고문했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폭탄제조 장치가 발견됐는데 무라드는 11개의 미국 항공기에 시한폭탄 장치를 일제히 부착시킬 계획이었으며, 이중 한 대는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를 공격할 계획이었다고 자백했다.

이 계획은 상당히 진척된 상태여서 무라드는 납치 대상 여객기의 비행편명을 구체적으로 말할 정도였다. 대부분은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객기들이었으며 이 여객기들은 비행 도중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될 계획이었다.

무라드는 미국의 여러 항공학교에 다녔으며 민간항공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는 또 납치 여객기를 CIA 본부로 몰고갈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테러리스트 1명은 국방부 건물에 비행기를 몰고 갈 예정이었다.

(워싱턴포스트 9월 23일자, ‘국경 없는 테러의 네트워크, 빈 라덴 추종자들 전 세계를 뒤덮다’, 칼 비크·피터 베이커 기자)


***세계무역센터 테러범, CIA 공격 계획 털어놓다**

1995년 말,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최초 폭탄 테러의 배후 조종자인 람지 아메드 유세프가 파키스탄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이송됐다.

유세프는 이송 도중 비행기에서 그를 호송하는 브라이언 파 및 몇몇 FBI 요원들에게 12대의 항공기를 납치해 CIA 본부에 동시다발적으로 가미가제식 자살 공격을 수행할 수 있었던 수차례의 기회를 아깝게 놓쳤다고 자랑했다.

이는 필리핀에서 체포된 압둘 하킴 무라드가 자백한 것과 동일한 계획이었다. 무라드는 미국으로 이송돼 유세프의 재판과 유죄판결에 중요한 증언을 했다.

(존 쿨리 저, ‘부정한 전쟁’, 247쪽)

***미 정부, 애틀랜타 올림픽 때 항공기테러 방지 위한 강력한 대비책 시행**

1996년 초, 미국 관리들은 농약살포 비행기와 자살 비행기들이 테러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을 지적, 이 해 여름에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동안 항공기 테러에 대한 예방책 마련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블랙호크 헬기와 미 세관국 소속의 제트기들이 올림픽 개최 장소들에 배치돼 의심스러운 비행기가 이 곳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당국은 애틀랜타 중심부에서 수백마일 내에 있는 모든 농약살포기를 감시했다.

당시 애틀랜타 지역을 담당하던 FBI 요원 우디 존슨은 “그 누구도 소형 비행기를 납치하거나 올림픽이 열리는 지역에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조지아주 북부를 감시했다고 말했다.

7월 6일부터 올림픽이 끝나는 8월 11일까지 미 연방항공국(FAA)은 올림픽 선수촌 지역의 반경 1마일(1.6km) 내에서 모든 비행을 금지했다. 또한 FAA는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기 3시간 전부터 끝난 뒤 3시간동안은 어떤 비행기도 해당 경기장으로부터 3마일(4.8km) 이내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1년 11월 17일자, ‘96 올림픽 당시 자살 비행기와 농약살포 항공기, 위협으로 간주되다’, 마크 파인만·주디 파스테르나크 기자)

***FBI, 96년부터 빈 라덴 측근의 미 항공학교 재학에 주목**

1996년 초, FBI는 미국 내 항공학교들에서의 아랍계 학생들의 활동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정부 관료는 “사직 당국 관계자들은 빈 라덴과 관련이 있는 10여명의 사람들이 미국 항공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1996년, FBI 관계자가 항공기술을 배우고 있는 아랍계 조종사들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2곳의 항공학교를 방문했다. 두 학교는 CIA 본부로 납치 비행기를 몰고 갈 계획이었던 압둘 하킴 무라드가 등록한 학교들이었다.

1998년 FBI 요원들은 오클라호마주 노만에 있는 에어맨 항공학교를 방문했다. 이들은 학교 관계자들에게 법정 증언을 통해 빈 라덴의 부하인 것으로 밝혀진 이 학교 졸업생에 관해 질문했다. 이 학교는 후에 자카리아스 무사위가 다닌 학교였다.

이를 다룬 워싱턴 포스트 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1996년부터 FBI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이 점보기 조종기술 습득에 미국의 항공학교를 활용했다는 증거를 조사하고 있었다. 미국 항공기를 폭파하려던 마닐라에서의 실패한 음모, 그리고 후에 빈 라덴과의 관련에 대한 법정증거들이 발견되면서 FBI는 몇몇 항공학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관계자는 증언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1년 9월 23일자, ‘FBI는 테러리스트들이 항공학교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티브 파이나루·제임스 그리말디 기자)

***시드니 시경국장, 항공기테러를 실행에 옮길 인물로 빈 라덴 지목**

2000년 올림픽이 개최된 시드니의 전 경찰국장 폴 매키논은 “전세계 TV 시청자들이 보고있는 가운데 올림픽 개막 행사장에 연료를 가득 채운 항공기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책을 마련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사마 빈 라덴이야말로 그러한 테러 위협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주요 인물로 거론됐다고 밝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들은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에 대한 대책은 1972년 이래 모든 올림픽의 보안 계획에 포함되어 왔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그것은 우리들에게 있어 악몽같은 시나리오”라고 밝혔다.

지난해 FBI와 IOC는 미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개최될 2002년 동계 올림픽에 대한 보안대책을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 2001년 9월 20일자, ‘경기장에의 비행기 추락은 올림픽의 악몽’, 재클린 매그내이)

***미 연방항공국도 빈 라덴 지목**

항공범죄행위에 대한 미 연방항공국(FAA)의 2000년판 보고서는(2001년 초 발간) “빈 라덴이 민간 항공기를 테러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럴 수 있는 동기와 자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빈 라덴의 반서구, 반미 감정으로 보아 그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민간 항공, 특히 미국의 민간 항공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밝혔다.
(FAA 연례보고서)

***빈 라덴 부하들의 비행술 습득 미 재판과정서 드러나**

2001년 초, 뉴욕에서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 혐의를 받고 있는 4명의 피고인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그 중 2명이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등지에서 조종술을 배웠으며 나머지 용의자들도 비행기술을 배우려 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빈 라덴의 부하였으나 미 정부측 증인으로 나선 엘 후세인 케르크토우는 법정에서 어떻게 자신이 1993년에 비행술을 배울 것을 요구받았는지를 진술했다. 또 다른 빈 라덴 동조자 에삼 알-리디는 자신이 빈 라덴을 위해 군용 비행기를 수단으로 몰고 갔다고 진술했다.

알-리디 역시 98년에 미 정부측 증인으로 전향했는데 그는 9.11이 발생하기 3년전에 항공조종술을 배웠다는 정보를 FBI에 제공했다. 당초 2001년 2월에 마감될 예정이었던 이 재판이 7월까지 연장돼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FBI는 미국의 민간 항공과 관련한 어떠한 경고도 발하지 않았다.

(관련 재판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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