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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은 정말 몰랐을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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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은 정말 몰랐을까 <8> 부시행정부 진상조사 거부하다
이제까지 미국의 정보기관이 9.11 테러에 대한 정보들을 사전에 입수하고 있었다는 여러 증거들을 검토해 보았다. 이 정보들에는 테러 주동자 모하메드 아타를 비롯한 수많은 테러 용의자들의 신원, 이들의 테러 방법 및 구체적 목표물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 어째서 미국의 항공 방어 시스템은 납치 여객기 중 단 한 대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등등.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이들 단편적인 증거들보다도 9.11 사태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는 보다 중요한 증거가 하나 있다. 즉 9.11 테러와 미 정부의 대응에 대한 일체의 진상조사를 부시 대통령과 미 의회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본토에서 사상 초유의 대량학살 행위가 벌어진 5개월이 돼가는데도 의회는 청문회도 열지 않았고 조사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았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철저하게 무시됐다. FBI 내부의 자체조사마저도 은폐되고 있다. 진상조사를 외면하는 행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는 점을 볼 때, 정치적으로 은폐됐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초당적 진상조사, 공화당이 가로막아**

당초 미 의회는 9.11 사태의 진상 규명에 의욕을 보였었다. 의회와 백악관이 임명하는 독립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어째서 미 정보기관들이 자살테러를 사전에 감지하고 방어하지 못했는가를 비롯해 현실적인 테러로까지 이어기까지의 사태의 전개과정을 검토하려고 했다. 실제로 하원 정보위는 미 정보기관 예산법률안에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 구성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백악관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해 10월 6일, 하원은 정보기관 예산안의 증액은 표결로 승인했으나 9.11 사태 대비부족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는 철회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조사위원회의 권한을 제한하고 소환권과 증인에 대한 면책권 등을 박탈했다. 또한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과 분석에 관련한 ‘구조적 문제’에 맞춰진 진상조사의 초점을 변화시켰다. 즉, 9.11 사태를 방지하지 못한 CIA와 FBI에 대한 조사는 덮어두고 대규모의 새로운 첩보기관 건립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변모됐다.

공화당 의원들은 부시정부의 이같은 소망을 확실히 현실화시켰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출석 투표를 거부함으로써 공화당의 계획이 통과되도록 허용했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은 지금 사전에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 정부의 실수에 대해 진상을 조사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보도했다.

2주 후,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과 민주당 상원의원 조셉 리버만은 ‘언론과의 만남’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 자신들은 9.11 테러 진상조사를 위한 독립조사위원회의 설립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리버만은 2차대전 당시 진주만 공격과 관련, 군사적 준비태만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는 역사적 사례를 인용, 진상 조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부시정부가 진상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월21일, 상원정보위원회의 민주당 의장인 로버트 그래험과 공화당 의원 리차드 쉘비는 세계무역센터와 팬타곤 공격을 사전에 감지해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한 진상조사를 2002년으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의회 지도부 역시 2002년까지 조사를 보류하는 데 동의했다. 그래험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진상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쉘비 역시 진상조사는 전쟁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시킨다고 말했다. 두 상원의원은 백악관과도 접촉을 가졌으며 어떤 청문회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기간동안 FBI도 자살납치에 대한 형사조사를 종결지었다. 10월 8일, 뉴욕타임스는 “사법부와 FBI의 고위 관료들이 2차 테러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용의자들을 추적할 수 있도록 9.11 공격에 대한 조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그 직후 두 명의 FBI 고위 관료가 해직됐다. 닐 갤러거는 자신이 곧 국가안보과장 직을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9.11 사태에 대한 수사업무를 지휘하던 토마스 피커드 역시 10월 31일 사임을 표했다. 이들은 모두 11월 30일부로 직위해임됐다.

피커드는 FBI 재직기간 동안 많은 테러사건을 수사했으며 해임되기에는 너무 이른 50세였다. 전쟁 중 발생한 그의 돌연한 해임은 따라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른 상황 같았으면 언론은 이를 직무유기나 FBI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후의 내부정비 차원으로 그의 해임을 다루었을 것이다. 9.11 사태의 조사 책임을 맡고 있던 피커드의 해임은 아무런 언론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2차대전중에도 진상조사는 행해졌다**

9.11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거부는 전쟁기간 중에는 그러한 조사가 적당하지 않다는 논리로 정당화됐다.

클린턴 정부에서와는 다르게 현재 워싱턴에는 진상조사를 위해 기꺼이 총대를 메거나 정치적 이견을 드러내는 세력이 없다. 2001년이 아니라 2000년에 테러가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공화당 의원들이 보였을 반응은 단지 상상만 가능할 뿐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R. W. 애플은 12월 14일 “놀랍게도 정부 안팎에서 직무를 다하지 못한 정보기관을 비난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장 조지 테네트를 해임하라는 요구도 없다”고 지적했다.

진주만 당시의 사례는 전쟁기간 중에는 진상조사를 수행할 수 없다는 주장과 완전히 상반된다. 진주만이 공격당한 지 1개월 이내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오웬 로버트 고등판사에게 조사위원회의 지휘를 임명하고 진주만의 군부 관료들의 행위를 조사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곧 진상조사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를 공표했다. 그리고 두 명의 지휘관을 퇴역시켰다. 물론 이 조치는 미국의 전쟁수행에 어떠한 차질도 빚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일본과 나치 독일이라는 강력한 두 적대세력을 앞에 두고 전례없는 군사작전을 취하는 동안에도 진상조사는 진행됐다. 현재의 적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근거지를 둔 소규모 테러리스트 조직일 뿐인데 왜 지금은 진상조사가 불가능할까?

백악관과 그 동조세력은 2차세계대전 당시 루즈벨트가 8명의 독일 전범을 처리하기 위해 군사재판을 승인한 사례를 언급하며 체포된 테러리스트들을 비밀 군사재판정에 세우도록 한 부시의 명령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9.11의 ‘비밀공격’에 대한 조사에 대해서는 2차대전 당시의 사례를 무시하고 있다.

부시정부가 차용한 루즈벨트의 군사재판의 선례조차도 매우 일면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루즈벨트가 비밀리에 군사재판을 한 것은 전쟁 중의 군사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조사를 수행하는 정보기관과 군부 관료의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상조사를 방해하기 위한 또 다른 압력-탄저균 편지**

조사위 구성에 관한 최초의 발언 2개월후인 12월 20일, 매케인과 리버만은 워렌위원회나 진주만 조사위원회를 모델로 초당파적인 14명의 조사위원회 건립을 위한 입법화 계획을 발표했다. 4명의 위원은 부시 대통령이, 나머지 10명은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각각 선임하기로 했다. 매케인은 전 상원의원 게리 하트와 워렌 루드만을 공동 의장으로 추천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1999년에 “미국 본토에서 대한 테러 공격으로 수많은 미국인이 사망할 수 있다”는 예견을 했던 대미 테러 관련 조사위원회의 의장직을 맡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매케인은 “정부 각 기관에는 독립적인 조사수행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리버만이 이 계획을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또 행정부와 사법부의 합동조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며 매케인은 “행정부나 의회가 개별적 조사를 할 경우 9.11 사태에 대한 초당파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 대변인 앤 워맥은 부시 행정부의 조사수행이 없는 점에 대한 사과만 할 뿐, 이러한 제안에 대해 아무 논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그들의 제안을 검토할 것이다. 현재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독립적 진상조사위 구성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상원의원의 한 고위보좌관은 민주당으로서는 소속 상원의원 톰 대쉴(사우스다코타)과 패트릭 리(버몬트주)에게 보내진 탄저균 편지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혼란스런 대응 이후 의원들은 생화학테러 대응계획의 부재 등에 미 행정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탄저균 공격과 관련해 미국이 비밀리에 세균전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강력한 포자를 얻었다는 점은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다. 탄저균 공격은 민주당 지도부를 파괴하기 위해 시도됐다. 매케인과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알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이처럼 신중한 반응을 한 것이다.

이러한 미적지근에 조치에 믿음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난 25년간 민주주의적 권리가 심각하게 도전받을 때, 민주당의 대처 양상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대한 제한적 폭로로 만족하고, 1987년 레이건 행정부의 이란 콘트라 사건 은폐를 분쇄하는 데 실패한 일, 클린턴 행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우익의 활동 앞에 무릎을 꿇은 점 등이 극명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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