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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반대' 의사표현도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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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반대' 의사표현도 못하나 이효성의 언론마당 <23> 조선ㆍ중앙의 한심한 딴지걸기
노무현 당선자가 2월 13일 한국노총 간부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이견에 대해 말하면서 미국에 전쟁불가라는 자신과 차기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분명히 천명했다. 그는 "북한 공격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공격하지 않으려면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공격할 수 있다는 상황에 대비해 우리말을 하고 있다.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언명했다. 그는 "미국이 이래저래 말하면 어렵겠지만 한국민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한국 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며 비장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북핵, 한국만 딴 소리할 때 아니다"라는 사설에서 그리고 중앙일보는 "민감한 시점, 미묘한 발언"이라는 사설에서 전쟁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은 한미공조를 깨는 것이라며 나무라고 있다. 여기서 이들 두 신문의 흔들림이 없는 친미적 태도에 대해서는 이골이 나서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명제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대처는 이들 신문이 충고하는 한미공조가 아니라 우리의 단호한 반전 의사표시라는 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미국은 공공연히 북핵 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흘리는가 하면, 한반도 주변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곧 공격할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 이후의 미국의 공격 목표는 북한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실제로 미국은 1994년 6월 북핵위기 때 우리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해 공중폭격 등 무력 제재를 준비했지만 청와대에는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통고, 군사력 결집, 한국 주재 미국인 피난 등의 사전 조처들이 북한에 사전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로 공격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뒤늦게 낌새를 안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 전쟁은 안 된다'고 강하게 항의한 것이 전부였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박관용씨는 1998년 워싱턴에 갔다가 1994년 당시 백악관 핵비확산 담당 특별보좌관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고 경악을 넘어서 "우리의 운명이 이렇게 결정되고 있었구나" 하는 허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월간조선> 2003년 2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이것은 비교적 온건한 클린턴 민주당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클린턴 정부보다 훨씬 더 호전적인 부시 정부는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지 모르는 판국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들과 정황은 무시하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북핵 위기 대처에서 한미 공조의 중요성만을 내세우며 노무현 당선자의 전쟁 불가 입장 천명을 나무랐다. 북한 문제에서는 호들갑스럽기 그지없는 이들 신문의 평소 태도답지 않게 순진하다 못해 안일하고 한가한 태도다. 이들 신문은 한미 공조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뜻인가. 아무리 노무현 당선자가 싫다 하더라도 비판에 앞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중앙일보의 사설은 "노 당선자가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수임받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전쟁은 막아야겠다는 충정에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미국을 적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려는 존재는 미국이기 때문에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1994년에 그랬듯이, 우리 몰래 전쟁을 하려 할 수 있는 미국이기에 사전에 전쟁 불가 입장을 단호하게 천명하는 일이야말로 미국의 전쟁의지를 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침묵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죽은 자의 침묵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의미한 침묵이다. 다른 하나는 반대를 뜻하는 침묵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 편들기를 강요했을 때 침묵을 지켰다면 그것은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침묵은 찬성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말하는데 우리가 그에 대해 아무 말로 하지 않고 있다면 그 침묵은 찬성을 뜻한다.

지금 미국은 분명하게 북핵 위기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군사적 공격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경우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야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전쟁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우리의 의사를 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충고하듯이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또는 한미공조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그것은 분명 전쟁에 찬성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봉으로 취급되는 아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대개는 처음 그런 일을 당할 때 단호하게 싫은 기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 싫은 기색을 단호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더욱더 쉽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봉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아무리 약하게 보이는 아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괴롭히거나 봉으로 취급하려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반대의 기색을 확실하게 보이면 다음부터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약한 아이일수록 괴롭힘을 당하거나 봉으로 취급되지 않으려면 더 분명하고 단호하게 "노!"를 외쳐야 한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전쟁에 나설 경우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말로라도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의 뜻을 분명히 밝혀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또 1994년의 북핵 위기 에피소드에서 보듯이, 미국이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부터 전쟁 반대라는 우리의 뜻을 분명히 밝혀두어야 한다. 한미공조라는 명분 때문에 또는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거북해서 미국의 대북한 전쟁 의도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미국의 전쟁 의도에 찬성하고 그것을 조장하는 셈이 된다.

한미공조에 반하거나 미국의 뜻을 거스르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전쟁은 어찌 되든 한미공조를 유지하고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가. 한미공조를 내세워 노 당선자의 전쟁불가 천명을 비판한 조선과 중앙의 태도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두려운 반민족적 선택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감히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이런 무시무시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연할 뿐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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