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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권력, 매체비평으로 견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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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론권력, 매체비평으로 견제하라 이효성의 언론마당 <31>
최근 방송의 매체비평이 활발해지고 있다. 2001년 4월 본격적인 방송의 매체비평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MBC의 <미디어 비평>에 이어 다른 방송사들도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강화하거나 신설했다. KBS는 <시사포커스>라는 프로그램에 '매체비평' 코너를 2주에 한번씩 편성해왔으나 매체비평 강화와 인지도 향상을 위해 매주 편성하기로 했다. EBS는 지난 3월부터 <지금은 시청자 시대>의 한 꼭지로 'EBS 미디어비평'란을 신설했다. 위성방송의 시민채널인 RTV는 언론인권센터가 직접 기획 연출하는 '김영호의 언론 바로보기'라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4월 8일부터 매주 30분씩 방송하고 있다.

매체비평은 방송에서뿐만 아니라 신문에서도 활발하다. 1988년 창간 때부터 매체비평을 본격적으로 해온 <한겨레>는 이제 좀 소극적으로 되었지만 그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근년에는 <경향신문>, <대한매일>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일보>도 매체비평란을 두고 있다. 매체비평에 가장 적극적인 매체는 인터넷 신문들이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는 매체비평 칼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매체를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들이 많이 올라온다. <대자보>나 <서프라이즈>에도 매체를 비판하는 글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매체비평이 활성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은 정부와 재벌에 맞먹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가진 막강한 권력기관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나 재벌과는 달리 언론은 최근까지도 제대로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았다.

정부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행해진 정치의 민주화로 그 힘이 많이 약화했고 또 각종 법적, 제도적 견제장치가 있고, 선거에 의해 그 주체가 바뀔 수도 있다. 재벌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그 이후 행해지고 있는 정부의 재벌개혁에 의해 내로라 하는 몇몇 재벌조차 망하거나 해체되었다. 그리고 재벌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비교적 강력하고 활발한 편이다.

정치의 민주화로 과거 정권의 나팔수로 불리던 방송은 상당한 정도로 민주화했다. 문제는 신문, 특히 신문 시장의 7할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몇몇 독과점 신문들이다. 이들은 정치권력의 약화를 틈타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 힘을 정부나 재벌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데 썼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은 비대해진 힘을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유착된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서 남용해왔다. 예컨대, 1987년 이후 대선 때마다 자신들과 유착된 특정 정치세력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노골적인 편파보도를 자행해왔다. 이번 16대 대선에서도 이들의 편파적인 행태는 여전했다. 아니 더 극렬해졌다.

사회의 다양성과 민주화를 위해서 어떠한 권력이든 비대한 권력은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 특히 남용되는 권력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 우리 언론권력 특히 사적으로 소유된 대신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해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공익을 위해서만 활용하는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적 이익을 위해서 남용해온 것이다. 이런 신문들이라면 마땅히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감시받고 견제받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더 오만한 권력이 되었다.

사적으로 소유된 언론은 법적, 제도적 견제장치가 별로 없다. 그래도 방송의 경우에는 방송위원회에 의한 공적 개입이 가능하지만, 신문의 경우에는 공적 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적 소유의 언론들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서 그 주체를 선거로 바꿀 수도 없다. 이들 언론들은 북한 정권의 세습을 신랄하게 비난하지만 막상 자신들의 소유주도 언론과 그 권력을 세습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떤 형태의 공적 개입에 대해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언론탄압을 들고 나온다. 심지어 세무조사와 같이 법에 의한 정당한 조처마저 언론 간섭이나 통제라고 몰아붙이며 저항한다.

불행히도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는 많지 않다. 그나마 이들 단체들은 방송을 감시하는 데는 열심이어도 신문을 감시하는 데는 매우 소극적이다. 이들 단체들은 신문을 감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방송 모니터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신문을 활용하는 데 급급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신문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는 현재로서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인권센터, 그리고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몇몇 시민단체들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언론 특히 몇몇 대신문은 남용되는 비대한 권력이 되었으나 그에 대해서 공적 개입이 여의치 않고, 시민단체의 감시활동도 미약하다. 이런 경우 언론에 대한 감시와 견제로서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언론에 의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 즉 언론의 매체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사회적 과업이 감시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감시견으로서 언론은 모든 비대한 권력을 그 감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언론은 정부와 재벌뿐만 아니라 이들 못지 않은 힘을 갖게 되었고 그 힘을 남용하는 언론도 감시와 견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들은 감시견의 역할을 주로 정부에 대한 것으로만 여겨왔다. 특히 과거 독재정권의 거대한 권력형 비리를 포함하여 커다란 권력남용이 많다 보니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따라서 정부만이 감시의 대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정부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따라서 국민대표성을 갖춘 민주정부다. 물론 선출된 민주정부라고 해도 최고의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마땅히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선출되지도 않은 채로 정부 못지 않은 막강한 권력으로 성장한 재벌이나 언론도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벌은 대광고주이기 때문에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상업적 언론들이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언론은 다른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잘 나서지 않는다. 언론들이 대개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업자 봐주기라는 침묵의 카르텔이 서로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신문이 방송을 비판하는 경우는 많았다. 그러나 방송이 신문을 비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독재정권의 나팔수로 역할하면서 국민의식을 마비시키는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 편성으로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민주화하면서 방송도 민주화하였다. 최근의 대선보도에서 보듯이 이제는 방송이 신문보다 더 공정하다. 이제 방송이 상당히 당당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방송도 신문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민주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창간된 <한겨레>가 출현하고, 방송이 민주화하고, 과오도 없고 자유분방한 인터넷 신문들이 등장하면서 매체비평이 점점 더 활성화하고 있다. 그것은 언론계에 동업자 봐주기라는 침묵의 카르텔이 깨져 가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부당한 성역 또는 금기가 또 하나 깨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다원주의를 위해서는 환영하고 고무해야 할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감시받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더욱더 남용되고 부패하고 전체주의화한다. 언론은 정부와 재벌 못지 않게 비대하고 남용되는 권력이 되었다. 따라서 남용되는 비대한 권력의 감시가 그 주임무인 언론은 언론도 감시와 견제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언론에 의한 매체비평의 활성화는 우리 언론들의 감시기능이 언론에게도 미치고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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