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넷이나 대중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이 깊고 실력이 쟁쟁한 네티즌들이 모이는 광장(프레시안)에 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다. 필자의 본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기 때문에 앞으로 프레시안을 찾는 네티즌 여러분들과 함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역사, 프로그래밍, 해킹의 세계, 수학, 정보통신 업계의 숨은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언젠가 "프로그래머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면 세상이 따뜻해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광장으로 나왔으니 그 말을 "네티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면 세상이 따뜻해질 것"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즐거운 수다를 떨어 나갈 일에 마음이 설렌다. 필자
***매트릭스 리로디드: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
지난달에 개봉된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전편의 기발한 내용에 매료되어 속편의 출시를 기다려왔던 사람들에게 씁쓸한 실망을 안겨주었다.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서둘러서 극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이 없다'는 영화계의 속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 앞서 1999년에 발표되었던 <매트릭스> 1편은 '실재'와 '가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경쾌한 상상력과 탄성을 자아내는 컴퓨터 그래픽스가 잘 결합되어 관객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감각하는 '실재'가 사실은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컴퓨터가 구현하는 가상의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는 독특한 설정은 장자의 '나비의 꿈'을 연상시키면서 사람들의 인식체계에 유쾌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매트릭스의 세계**
매트릭스라는 소프트웨어가 생성하는 가상의 감각, 정보,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0과 1의 숫자로 이루어진 '비트'로 구성되어 있다. (매트릭스가 전자식 컴퓨터가 아니라 양자(quantum)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다면 '비트'가 아니라 '큐비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양자 컴퓨터나 큐비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볼 것이다.) 실제 육신은 매트릭스를 운용하는 기계에 사로잡혀서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자고 있지만 매트릭스 안에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는다.
이렇게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피와 살을 가진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비트로 구성되어 있는 '정보의 조각'에 불과하다. 몸과 영혼이 결합되어 하나의 구체적인 '존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현상하는 정보의 조각, 즉 소프트웨어가 컴퓨터 하드웨어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존재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황당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가 설정한 이러한 내용은 결코 허무맹랑한 상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지적인 컴퓨터의 시대(The Age of Intelligent Machines, MIT Press, 1990)>, 그리고 <영적인 컴퓨터의 시대(The Age of Spiritual Machines, Viking, 1999)>라는 뛰어난 연작으로 관심을 끈 컴퓨터 학자 레이 쿠르츠웨일(Ray Kurzweil)은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간은 태어날 때 할당받은 '육신'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될 것이다 (We will be software, not hardware)"라는 말은 쿠르츠웨일의 '상상'을 압축하고 있는 표현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소프트웨어)과 육체(하드웨어)가 분리되는 과정은 뇌에 집적된 정보를 다른 뇌에 그대로 이식하는 '두뇌 이동(brain-porting)'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한 일이 가능해진다면 사람의 생명('영혼'의 생명만을 고려했을 때)이 낡은 하드웨어를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하드웨어를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서 육신을 한계를 초월하며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닳아 없어지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담는 그릇, 즉 하드웨어지 소프트웨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버리고 이동하는 일이 잦아지면 하드웨어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는 점차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드웨어가 언제든지 바꿔 끼울 수 있는 부속품으로 취급될 정도가 되면 소프트웨어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영혼을 현상하고 존재를 시뮬레이션 하는 '매트릭스'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판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화두는 결코 어렵거나 무겁지 않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예를 들어서 불과 몇 달 전에 전쟁(이라기보다는 침략)의 광기가 '애국심'이라는 가면을 쓰고 미국을 휩쓸었을 때 CNN이나 폭스(Fox) 같은 채널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중매체를 지켜보면서 '매트릭스'를 떠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반가운' 소재를 만나서 즐거운 비명을 토한 미국의 대중 매체, 즉 미국판 '매트릭스'들은 가상 현실을 열심히 시뮬레이션 하였고, 가엾은 미국 시민들은 팝콘 봉투를 손에 든 채 소파에 앉아서 '매트릭스'가 제공하는 황당무계한 시뮬레이션을 보며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영화라는 '가상 세계'와 잔인한 전쟁이라는 '실재'를 구분하지 못하는 (혹은 구분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의도하는) 미국판 '매트릭스'들은 당시 대중매체들이 입에 침을 튀기면서 보도했던 '제시카 린치 일병 구하기' 사건이 사실상 조작극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도대체 미국판 '매트릭스'들의 뻔뻔스러움이 이 정도라면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에 달나라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마저 과연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하긴 미국 사람들 중에서도 암스트롱 일행의 모험담을 엉성한 코미디로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이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의문거리도 못된다.)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
숱한 화제를 뿌리며 성공을 거둔 <매트릭스> 1편이 나온 이후로 거의 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끝에 발표된 2편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이와 같이 흥미진진하고 심오했던 1편의 인식론적 문제 제기를 발전적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자극적인 시각 효과와 현학적인 대사가 서로 따로 노는 그저 그런 작품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전편의 성공에 기대서 '대박'을 노리겠다는 할리우드의 천박한 공식이 워쇼스키 형제의 발랄한 상상력을 억누른 흔적도 역력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네티즌들의 재치 넘치는 평론이 인터넷 곳곳을 뜨겁게 달구는 과정을 통해서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하나의 의미 있는 문화 현상이 되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실로 다양해서 <매트릭스 리로디드> 안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도 있고, 인간의 주체적 의지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읽는 사람도 있고, 시오니즘을 읽는 사람도 있으며, 컴퓨터 운영체제의 원리와 해커의 철학을 읽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할리우드의 상업성만을 보는 사람도 있다.
'2편'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아직 '3편'을 보지 않고 실망을 토로하는 것은 '경솔하다'며 꾸짖는 의견도 있고, 영화 [매트릭스]에 대해서 맹목적인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할리우드의 상업적 전략을 직시할 것을 촉구하는 의견도 있다. 재미있다. 영화 자체보다 오히려 네티즌들의 발랄한 의견 개진이 우리의 문화를 살찌우는 것 같아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런 네티즌들의 반응이 보고싶어서 올 겨울에 있을 <매트릭스> '3편'의 개봉이 짐짓 기다려질 정도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문화적 현상을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가 성취한 '절반의 성공'으로 파악한다.
***필자 소개**
필자 임백준은 미국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의 광통신그룹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웹기술에 기반한 광대역 네트워크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컴퓨터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4권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번역서를 냈으며 지난 5월 이에 관한 자신의 경험 등을 담은 저서 <행복한 프로그래밍>(한빛미디어)을 펴냈다. 이메일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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