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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꿈과 돼지 저금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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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꿈과 돼지 저금통 이야기 임백준의 '컴퓨터를 통해서 보는 세상' <4>
맑은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 그 곳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별을 보면서 바람에 몸을 내맡기면 번잡한 세상사가 사라지고 ‘우주’를 호흡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종교적인 체험이고 행동에 속한다. 시간이 흐르면 광막한 우주 속에는 마침내 별과 ‘나’만 남게 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소중한 존재가 따뜻한 별빛 속에서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삶이 고단하여 세 아이와 함께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그러기 전에 한번이라도 하늘의 별을 보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전쟁’ 소식으로 한반도 전체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요즈음, 그녀에게는 사는 것이 이미 전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고통의 가시밭길이었나 보다.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아이들의 목숨을 차례로 끊는 어미의 정신이 제정신이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모두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다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었을 때 돌이켜보면 정말 미친 것은 아마 여인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체제에서 ‘돈’을 벌면서 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부 미친 것이 아니라면 “엄마 나 죽기 싫어” 하고 울며 애원했다던 여자아이의 절규가 너무나 원통하고 한스럽기 때문이다.

***별의 의미**

별은 흔히 힘을 쥔 권력의 ‘힘’과 ‘영광’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애용된다. 하지만 별은 동시에 소박한 사람들을 위한 ‘꿈’과 ‘희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미국 펜타곤 건물이나 워싱턴 시내의 도로 설계안에 감추어진 별 모양은 제국의 번영과 힘을 상징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 악마의 구호 속에서 별은 ‘대동단결’의 신명나는 굿판에 취한 한국 시민의 기쁨을 상징했다.

죽음을 불사한 피의 전쟁을 벌일 듯이 서로를 벼르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국기에 똑같이 등장하는 별은 국가체제의 정립과 번영을 의미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패션’이 되어 버린 체 게바라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별은 고단한 삶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을 위해서 온몸을 불태웠던 혁명가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의미했다.

한국 정치사를 피로 물들였던 장군들의 양쪽 어깨에 놓여 있던 별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야심과 탐욕을 의미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별>에서 별은 풋풋한 사랑의 느낌 앞에서 설레는 어린이의 마음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였다. 실제로 별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 공간 속에서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운동하는 ‘불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인류가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인식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각별하고 다정한 의미로 존재해 왔다.

***우주 관측의 원리**

어릴 적에 혼자 우주의 끝을 상상해보다가 깊은 심연에 빠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옛날 사람들은 우주를 거대한 거북이 위에 다른 거북이가 올라타고 있는 모습으로 상상했다는데 단순히 웃을 일은 아니다. 훨씬 발전했다는 현대 과학에서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비밀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주라는 존재는 ‘왜’ 시작되었는가 하는 질문들 앞에서는 현대 과학자들도 “거북이 위에 거북이” 수준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청천벽력 같은 ‘지동설(地動說)’에 의해서 무려 1,500년 동안이나 절대적인 우주론으로 통했던 프톨레미의 ‘천동설(天動說)’이 권좌에서 내려왔던 무렵은 인류의 지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케플러, 티코 브라헤, 데카르트, 갈릴레오와 같은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은 보다 발전한 관측 도구와 수학 공식을 무기로 삼아 우주의 모습을 한층 정교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이 도달했던 결론은 우주의 모습은 끝도 경계도 없는 무한한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에도 한계가 없어서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심연에 해당했다. '끝’이 없는 공간 앞에서 우주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시작’이 없는 시간 앞에서 우주가 ‘왜’ 생겨났을까 하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뉴튼은 당대의 과학적 성취를 한 곳에 모아서 ‘중력’을 중심으로 하는 별들의 운동 법칙을 정식화했다. 우주는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칸트에 의하면) 신(神)의 섭리에 의해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침묵의 중력장이었다. 별은 그러한 중력장 속에서 동일한 궤도를 그리면서 기계적인 운동을 하고 있는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망원경을 통한 관측과 당대의 수학적 지식을 통해서 가늠할 수 있는 우주의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만약 거대한 물질이 ‘인력’을 통해서 사물을 끌어당기고 있다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들이 차츰 한 곳으로 뭉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당대의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고작해야 ‘사물 안에 내재한 신의 의도 때문’ 정도였다. 라이프니츠의 ‘단자(單子)’며 칸트의 ‘물자체(物自體)’와 같은 난해한 개념들은 이를테면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메우기 위한 철학의 엄호사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정적이고 무한한 우주의 개념이 뒤집어지고 하나의 작은 점이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서 폭발한 ‘빅뱅(Big Bang)'을 통해서 우주가 탄생되었다는 주장이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빅뱅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데, ’팽창‘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크기의 한계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가 끝도 없이 무한하다는 과거의 이론은 자연스럽게 폐기된 셈이다. 또한 시간이라는 ’존재‘도 빅뱅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끝‘은 몰라도 적어도 ’시작‘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우주론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궁금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빛이 수십, 수백 억 년을 달려야 겨우 닿을 수 있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천문학자나 물리학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관측’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이 그것이다. 어떤 현상을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서 마치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분석하고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프라운호퍼선과 도플러효과 - 신의 선물**

18세기말에 독일의 한 유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프라운호퍼(Fraunhofer)는 빛을 분산시켜서 아름다운 무지개 모습의 스펙트럼으로 나타내는 프리즘을 가지고 실험을 하던 중 스펙트럼 안에 마치 바코드(bar code)와 같은 검은 실선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실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거듭되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그 실선의 위치가 빛을 발하는 물질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빛을 프리즘에 뿌려보기만 하면 빛을 발생시킨 물질의 성분을 ‘보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프라운호퍼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수학자 도플러(Doppler)는 흔히 ‘도플러효과’라고 알려진 원리로 유명하다. 기차 소리가 역으로 들어올 때 더 높게 들리고 역에서 빠져나갈 때는 다소 낮게 들리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도플러효과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차가 역으로 들어올 때는 ‘소리’가 공기 중에서 운동하는 거리가 점점 짧아지기 때문에 소리가 높게 들리고, 기차가 역에서 나갈 때는 반대로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소리가 낮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소리만이 아니라 빛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도플러는 망원경 관측을 통해서 서로 마주본 채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 두 별을 확인하고 그들이 발산하는 빛을 프리즘으로 굴절시켜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지구에게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운동하는 별에서 나온 빛은 프라운호퍼선이 파장이 높은 쪽으로 조금 이동해 있고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별에서 나온 빛은 파장이 낮은 쪽으로 이동해 있음이 확인되었다. 밤하늘에서 무심하게 반짝이는 별이 실제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지 않고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프라운호퍼선과 도플러효과는 한계에 부딪힌 듯 했던 인류의 지성에게 더 넓은 우주를 관측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신의 선물이었다. 이 선물을 통해서 인류는 허블망원경이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며, 빅뱅 이론이며 하는 놀라운 진보와 발전을 이룩해 나갈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알 수 있는 능력. 신이 인류에게 선사해준 선물의 본령은 바로 그 곳에 놓여 있던 것이다.

***별과 돼지 저금통**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등장했던 ‘돼지 저금통’은 한국의 많은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별’이었다. 그 별이 너무나 크고 환하게 빛나서 사람들의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더러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름다운 별 속에는 썩은 정치를 바로잡으라는 가슴 절절한 꿈이 담겨 있었고, 이 땅에 평화를 뿌리 내리라는 절박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오만과 타락을 일삼는 무리들과 싸우는 일에 힘을 내어 당당하게 전진하라는 뜨거운 애정이 담겨 있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내 손으로 이룬다는 존엄한 자존심도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그 별은 ‘꿈¶은 이루어진다’의 별이었고, 미남 혁명가의 모자에 달린 별이었고,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머리카락이 뺨에 스칠 때 목동이 바라본 하늘의 별이었다. 순결하고 당당한 꿈을 실은 그 별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별이었다.

그런데 그 별이 떨어지고 있다. 가슴 절절한 꿈을, 절박한 소망을, 뜨거운 애정을, 그리고 존엄한 자존심을 담았던 그 별이 빛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썩은 정치를 바로잡으라는 꿈에는 똑같이 썩은 모습으로, 평화를 뿌리 내리라는 소망에는 민족의 운명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끔찍한 배신으로, 오만과 타락을 일삼는 무리들과 맞서 당당하게 싸우라는 애정 어린 주문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열과 비굴한 타협으로,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내 손으로 이룬다는 존엄한 자존심은 ‘엄단’과 ‘법대로’를 통한 진압으로 깔아뭉개는 권력은 꿈을 꾸었던 시민들에게 ‘별’이 아니라 ‘벌’이 되었다.

떨어지는 별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에게 ‘굿모닝시티’라는 해괴한 이름을 둘러싼 추문과 복마전은 가슴 아프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꿈마저 접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복마전을 둘러싼 추문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리도 없거니와 설령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알 수 있는 것”은 비단 우주 관측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여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끊은 여인의 이야기는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간 강사가 나오더니, 사업을 비관해서 죽는 가장에 취직이 안돼서 죽는 청년까지 그야말로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힘없는 서민들의 ‘죽음의 굿판’이 정신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체적인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없고 서러운 사람들이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꿈을 이루어 주었더니’ 돌아오는 것은 잔혹한 배신이다. “에이 못해먹겠네” 하는 짜증과 경멸이다.

꿈과 희망을 듬뿍 담았던 별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한번 진 별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다만 별이 진 자리에 더 많은 별들이 새롭게 떠오를 것이다. 더 많은 별은 더 많은 희망을 담고, 더 많은 희망은 반드시 꿈을 현실로 끌어올리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여전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것이다. 별을 보며 희망을 키우는 아름다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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