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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로 강물을 막고자 하는 ‘인터넷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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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로 강물을 막고자 하는 ‘인터넷실명제’ 임백준의 컴퓨터를 통해서 보는 세상 <7>
스탠포드대학 법학과 교수 레식(Lawrence Lessig)은 “무엇이 네트를 규제하는가? (What things regulate)"라는 짧은 글에서 인터넷 혹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힘의 핵심은 ‘코드(code)’에 있다고 주장했다. 코드라는 말은 한국의 정치권 일각에서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흔히 ‘주파수’ 혹은 ‘궁합’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기도 하는데 레식이 말한 코드의 의미는 물론 그것이 아니다.

사이버스페이스, 혹은 인터넷 공간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는 일정한 논리와 연산을 구현하는 텍스트(text)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텍스트를 보통 ‘코드’라는 말로 일컫는다. 예를 들어서 a와 b라는 두 개의 정수를 받아들인 다음 두 수를 더한 결과를 산출하는 ‘함수(function)'를 구현한 코드는 다음과 같다.

int add (int a, int b)
{
return a + b;
}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위의 코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레식은 규제를 당하는 피규제자의 모습을 ‘연민을 자아내는’ 하나의 작은 점으로 표현한 다음, 그 점에게 규제를 가하는 네 가지 힘을 ‘법’, ‘시장’, ‘윤리’, 그리고 ‘구조’라고 파악했다. 이 네 가지 주체는 서로 경쟁하거나 보완하면서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는데, 법은 직접적이고 강력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것은 구조, 즉 코드이다.

승용차 안에 들어있는 라디오를 훔쳐가는 사례가 빈발하여 그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생각해 보자. 라디오를 절취한 사람에게 무기 징역을 내릴 수 있도록 법을 대폭 강화하면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평생의 삶을 걸기에 라디오는 아무래도 사소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형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절도 행위가 완전하게 근절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단지 소수의 사례가 적발된다고 해도 그에 대한 형벌 때문에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 법을 강화하는 대신 라디오의 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것은 또 다른 해법이 된다. 라디오가 차에서 분리되는 순간 기능을 멈추어 아무 의미가 없는 고철에 불과하도록 만든다면 법을 특별히 강화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라디오를 절취하는 행위에 대해서 흥미를 잃을 것은 분명하다. 레식은 이와 같은 예를 통해서 구조(코드)의 변경이 법적인 강제에 비해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정치개혁특위의 ‘인터넷실명제’**

다른 예도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파리의 좁고 꼬불꼬불한 시가지 구조는 그 자체가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혁명가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만으로 도시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루이 나뽈레옹 3세는 훗날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1853년에 도시의 구조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구조의 변경을 통해서 빠리는 넓은 가로수 길과 많은 통로로 새로 조성되어 소수의 혁명가들이 도시를 장악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현실 세계에서 라디오의 구조를 바꾸거나 빠리 시가지의 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수정하는 일에 대응한다. 레식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들이 ‘코드’의 수정을 통해서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따라서 그가 코드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오픈소스(open source)’ 운동이 적어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권력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라고 주장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코드가 권력에 의해서 독점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시민사회에 대한 권력의 무제한적인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GNU의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픈소스’ 운동은 분명히 자본과 권력의 독점적 속성에 타격을 가한 발랄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코드’의 자율성은 여전히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법’의 규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오픈소스’ 운동이 시민운동으로서 갖는 의미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의 ‘법’과 사이버스페이스의 ‘코드’를 결합하여 자유분방한 시민사회 혹은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에 역으로 타격을 가하는 것은 지배 권력의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인터넷실명제’를 법으로 강제한 것은 이러한 지배 전략의 예에 속한다. ‘인터넷실명제’에 따르면 “인터넷언론사는 네티즌이 선거에 관한 의견을 게시판이나 대화방에 올릴 때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전산자료나 신용정보기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실명확인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현실세계의 법을 관장하는 주체가 사이버스페이스의 코드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정될 것을 명령한 사건인 셈이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시민이 이와 같은 ‘명령’에 반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실명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코드를 수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마치 “술집, 카페, 식당 등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영업주들은 손님들이 선거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전에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전산자료나 신용정보기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실명확인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통신품위법’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위헌 판결**

법이 코드와 결합하여 사이버스페이스를 통제하려고 시도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냅스터(Napster)’나 ‘소리바다’ 같은 P2P(Peer to peer) 시스템에 대한 권력의 개입은 사이버스페이스 시민들의 자유분방에 행동에 대해서 법적인 통제가 가해진 사례였다. P2P 시스템에 대한 현실권력(주로 음반회사나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자본)의 법적 통제가 ‘현재 진행형’인 반면 정치개혁특위가 내놓은 ‘인터넷실명제’는 이미 7년 전에 한번 결론이 난 문제를 새삼스럽게 들고 나온 ‘무지’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1996년에 발표한 소위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 Act)’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청소년들에게 ‘음란하거나’ 혹은 ‘품위 없는’ 자료를 전송할 경우, 그리고 ‘불쾌한’ 성적 행위를 묘사할 경우에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혀서 물의를 빚었다. ‘통신품위법’은 구체적으로 정할 수 없는 주관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시민들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전 세계의 네티즌들은 이러한 악법에 저항하여 홈페이지에 ‘블루리본’을 다는 운동을 전개했고, 미국 시민자유연합(Civil Liberties Union)은 필라델피아 연방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같은 사태를 놓고 고심하던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97년 6월에 이르러 ‘통신품위법’은 위헌이라고 결정하여 시대의 변화를 인정했다. 이때 연방 대법원이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놓은 의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법원은 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존재하는 기술 중에는 어른을 제외하고 오직 청소년들만 인터넷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법원은 이메일, 메일 탐색기, 뉴스그룹, 그리고 채팅방 등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법원은 비상업적으로-혹은 다소 상업적으로-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이 모든 사용자가 성인임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비용을 요구하리라는 점도 발견했다. 따라서 이러한 제한들이 인터넷에 존재하는 성인들의 통신 활동에 불가피한 제약을 가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물로 강물을 막는 ‘인터넷실명제’**

‘인터넷실명제’에 반대하는 인터넷신문협회나 시민단체의 논거는 199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밝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령 정치개혁특위의 요구대로 실명을 확인하기 위한 ‘코드’가 마련된다고 해도 실명 도용이나 해킹이 야기하는 수많은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따르는 사회적 비용은 실명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조성되는 ‘여론’이 민의(民意)를 항상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때론 지나친 공격성을 띠기도, 때론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인터넷 자체가 대안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가, 소수의 당파적인 대중 매체가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의사소통 구조를 해체하고 보다 공정한 민의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일정하게 실현한 부분적인 혁명이었다. 그렇다면 정치개혁특위가 비현실적인 ‘인터넷실명제’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그들은 ‘공정한 민의의 소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실명제’가 참을 수 없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그것이 비단 1997년에 내려진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정면으로 배치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공정한 민의의 소통’이라는 강물의 흐름을 ‘실명확인’이라는 엉성한 그물로 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코미디의 한 장면이라면 웃고 말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에 우리의 비극이 존재한다. 필자는 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헌법도 미국의 헌법처럼 개인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 때문에 ‘통신품위법’은 7년 전에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인터넷실명제’가 위헌이 아닐 수 있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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