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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결식아동 점심지원비 대폭 삭감"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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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 결식아동 점심지원비 대폭 삭감" 파문

내년에 28% 삭감안, 대통령은 시정연설서 "대폭 확대" 약속

불황이 장기화하고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학교 현장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며 갖가지 고통스런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불황이 가난한 가정들을 덮치면서 점심을 못 싸오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는 노트나 연필조차 사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겨나 몇몇 선생님들이 조용히 돈을 모아 학용품을 사주는 형편"이라며 "잘사는 집 애들은 고가의 핸드폰을 갖고 다니며 과소비를 하는 반면, 교실 한 구석에서는 가난한 집 학생들이 절대빈곤에 숨도 못쉬고 있는 상황"이라고 작금의 심각한 교실풍경을 전했다.

노무현대통령도 이처럼 심각한 민생경제 붕괴의 심각성을 시인한 뒤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방된 시장경쟁체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특히 금년 겨울방학부터는 결식아동에 대한 중식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대통령 공언과는 달리, 정작 정부여당은 교육예산에서 국가부담금을 대폭 삭감하는 법안을 추진, 결과적으로 불황기에 도리어 크게 늘려야 할 극한계층 자녀들의 중식지원비와 학비 지원금이 대폭 삭감되는 결과를 초래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통령 말 따로, 정부 행동 따로'의 전형적 난맥상이다.

***서울시교육청, 내년 결식학동 점심지원비 28% 삭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2일 시교육위원회에 '2005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다. 예산안을 훑어보던 기자들은 한 항목에 이르러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저소득층 학생 중식지원비를 올해 2백73억5천여만원에서 1백97억여원으로 무려 28%나 줄어들었고, 저소득층 자녀 정보화 교육지원비 52억여원도 29억여원으로 43.1%나 격감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과밀학급 해소 사업비도 올해 3천5백54억여원에서 1천8백48억여원으로 48% 줄였고, 과학교육활성화를 위한 사업비는 68.2%나 격감했다.

IMF사태를 능가하는 장기불황이 도래하면서 저소득층이 집중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결과 저소득층 자녀들 가운데 굶고 다니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에 속한다. 이런 마당에 늘려도 시원찮은 저소득층 중식지원비를 대폭 삭감하다니, 서울시교육청이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기자들의 한결같은 '분노어린 의문'이었다.

그러나 사정을 알아보니, 서울시교육청만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근원적 원인제공자는 다름아닌 교육부 등 '정부'였다.

***대불황기에 결식아동 점심 지원 줄이는 난정(亂政) 발발**

교육인적자원부와 기획예산처는 내년부터 '중학교 의무교육'이 시 지역으로 전면 확대됨에 따라,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교부금 가운데 봉급교부금과 증액교부금을 없애는 대신 경상교부금의 법정교부율을 현행 내국세의 13%에서 19.32%로 상향 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중개정령안'(개정안)의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회 제출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일 열린 열린우리당과의 당정회의에서 "개정안대로라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규모가 현행보다 크게 확충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원만히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우리당도 전폭지원을 약속했다.

문제는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정부 주장대로 교육재정의 규모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행 교육재정을 악화시키며, 이로 인해 서울시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볼 수 있듯 우선적으로 저소득층 학생 지원사업과 교육환경개선사업 등이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는 데 있다.

개정안에 따라 봉급교부금이 없어질 경우 모두 3조1천억여원에 이르는 중학교 교원의 인건비를 지자체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개정안은 법정교부금을 크게 높여주는 만큼 중학교 교원의 증가와 인건비 증가분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책임질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교육계는 이렇게 될 경우 현행 교육재정이 되레 2조8천억여원 이상 줄어들게 돼, 결과적으로 모든 항목의 교육예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으며 결식학생 점심지원비로 따라서 줄어들게 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문제의 개정안은 저소득층 학비지원에 주로 사용돼 왔던 증액교부금 항목을 아예 없애 저소득층 지원비를 더욱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에 주로 EBS 수능방송 등에 사용되는 특별교부금은 경상교부금의 4%로 고정해 놓고 있어, 한층 줄어든 예산내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지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서울시교육청 제출 예산안을 검토하는 과정에,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지원금 축소는 최대한 막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워낙 예산의 운용폭이 적어, 과연 얼마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극한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도 시원찮은 판에 도리어 줄이는 '난정(亂政)'이 펼쳐지려 하는 것이다.

***"정부, 일부러 입법예고 늑장 부린 것 아니냐"**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문제투성이 개정안의 입법예고가 늦어진 대목에 대해서도 의문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김홍렬 서울시교육위원은 25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듯 교육예산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은 늦어도 17대 국회가 활동을 시작했던 지난 7월쯤 관련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협의를 거쳐야할 사안이었다"며 "기획예산처가 교육예산의 수립과정을 잘 알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가부담금을 줄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개정안의 상정을 늦춘 감이 있어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요컨대 정부가 개정안의 문제점 노출을 은폐하기 위해 막판에 후다닥 법안을 처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다.

***"개정안 강행하면 '대국민 사기국'"**

이같이 문제투성이인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전국교육위원협의회, 전교조, 한국교총, 교육개혁시민연대 등 32개 교육·시민단체들은 지난 13일 '안정적 교육재정확보를 위한 범국민협의회'(국민협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앞으로 정부여당의 개정안에 대해 공동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이번 주중으로 전국의 초·중·고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임과 동시에, 조만간 국민협의회 대표단을 구성해 각 정당 대표, 교육부장관 등을 항의 방문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협의회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미 지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오는 2007년까지 교육재정을 GDP(국내총생산) 대비 6% 수준으로 확충하기로 약속했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만약 그럼에도 이같은 개정안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대국민사기극'으로 전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무리 선거 공약이 '공약(空約)'이라고는 하나,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결식아동에 대한 중식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하고 밑의 공무원들은 "결식아동에 대한 중식지원을 대폭 감축"하는 정부정책의 이중성은 반드시 시정돼야 마땅하다는 게 교육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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