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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는 '신토불이' 급식운동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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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는 '신토불이' 급식운동 막지 못한다"

[분석]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의 통상법적 대안②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의 대안 찾기' 두 번째 글을 송기호 변호사가 보내 왔다. 지난 9월 12일 <프레시안>에 소개된 첫 번째 글에 이어 송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은 과연 WTO체제와 양립불가능한가 △정부와 자치단체가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등의 만만치 않은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기 쉽지 않은 통상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송 변호사가 전개하는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학교 급식'과 '우리 농산물'의 문제가 결코 그것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대목들에 맞닿아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두 차례에 걸친 송 변호사의 기고가 세계화의 거센 조류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한국 법원, 가트 협정문 해석할수록 모순만 커져"**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전북 조례를 "결국 국내산품의 생산보호를 위해 수입산품을 국내산품보다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봤다. 그리고 급식 개선의 다른 목적이 있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내국민대우원칙을 위반해 외국 농산물을 국내 농산물보다 불리하게 대우한 이상" 가트(GATT) 위반이라고 해석했다.

정책목적과 관계없이 수단이 가트 위반이면, 결국 가트 위반이라고 하는 '가트 해석론'은 과연 타당한가. 해당 가트 조문은 "so as to afford protection to domestic production" 조항을 가리킨다. 외교통상부 번역본은 이를 "국내 생산을 보호하기 위해"로 옮겼다. 그러므로 문리 해석의 원칙상, 국내 생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과 효과를 갖는 조치에 한해 가트 규정을 적용한다고 제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 법원이 가트 협정문을 해석하려고 노력한다면 모순은 더욱 커진다. WTO 설립 협정상 영어, 불어, 스페인어만이 원본(authentic) 자격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어 번역본에 터 잡은 해석론을 WTO협정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지부터 의문이다. 설령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해도 법원의 해석론이 WTO 분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WTO 회원국들은 WTO 협정의 해석 권한을 WTO 각료회의와 이사회에만 부여했기 때문이다(WTO설립협정문 9.2조). 이러한 모순은 대한민국 국회가 제공한 것이다. 2004년 12월 16일 대한민국 국회가 WTO 협정 비준 표결을 할 당시 국회의원 이길재는 국회 본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들, 제일 위에 있는 소위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 비준 동의안이 몇 장짜리인데 이것 하나 제대로 검토를 하지를 못했습니다."(회의록 446쪽)

판례가 사회적 자산일 수 있다고 믿는 필자의 입장에서 대법원 판례를 더 살피기로 하자.

이번 판결로 우리 농산물 급식은 불가능하게 됐는가. 아니다. 대법원은 학교에 우리 농산물을 우선 사용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는 학교를 선별해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 가트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따라서 전국의 학교와 학교운영위원회가 자유로이 우리농산물 급식을 하는 것은 판결과 관계가 없다. 그리고 다른 곳의 조례가 이번 판결로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에서 학교 급식의 바른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지금도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 글에서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의 통상법적 대안을 찾는다고 해서 그것은 결코 급식조례운동이 WTO 틀 내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WTO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세계화 기득권 세력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키고자 할 뿐이다.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은 WTO의 문제가 아니며, WTO에서도 가능하다.

***"WTO법은 '법'이 아니다"**

WTO법은 법이 아니다. 미국의 학교급식법과 반덤핑법(버드 수정법)의 경우를 보면 WTO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 학교급식법이 미국산 구매 조항(Buy American)을 두어 연방지원 급식에 미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WTO 위반이다. 미국이 1994년 정부조달협정에서 급식용 농산물의 미국산 조달을 한국 등으로부터 양해 받았다 하더라도, 미국 급식법의 내용은 양해의 범위를 벗어난다.

미국 급식법은 법률 제정 목적의 하나로 미국 농산물의 소비 촉진(to encourage the domestic consumption)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농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학교 당국자에게 미국산 농산물을 쓰게 하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전북 급식조례와 매우 유사하다. 대법원 판례의 해석론에 의할 때 미국 학교 급식법은 WTO 위반이다. 그런데 WTO 위반인 미국 학교급식법이 아무런 탈 없이 연간 94억 달러(2004년 기준), 우리 돈으로 1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운용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의 반덤핑법(Byrd Amendments)은 덤핑 마진을 계산할 때 미국에 정상적으로 수출한 가격은 계산 대상에서 제외해버린다(zeroing이라고 한다). 그러면 덤핑 마진은 실제보다 더 늘어난다. 반덤핑 관세율은 더 높아지고, 미국 기업에 분배되는 관세 수입은 늘어난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하이닉스 사에 반덤핑 관세를 더 많이 매기고, 경쟁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 사에게 더 많은 관세수입을 분배해 줬다.

이러한 계산방식은 WTO 반덤핑 협정 위반이다. 한국을 포함한 9개의 나라는 2000년 12월 미국을 WTO에 제소했다. 2002년 9월과 2003년 1월, WTO의 1·2심은 연달아 미국 반덤핑법이 WTO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지금까지 반덤핑법을 고치지 않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승소국들은 2004년 8월 WTO로부터 보복조치 승인까지 받았다. 캐나다는 2005년 5월 미국에 보복조치를 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했을까. 미국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할 것이라는 한국 외교통상부의 공식 발표가 나온 때가 이미 2003년 1월이었다.

이처럼 WTO법은 우리가 아는 법, 지키지 않으면 강제력이 따르는 그런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 급식법의 'Buy American' 조항이 있는 동안은 우리 '학교급식법'에 우리 친환경 농산물의 우선적 사용을 규정하는 것이 통상법적 대안일 수 있다.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입법권은 결코 WTO 협정에 의해 제약될 수 없다. 법률로 규정하는 것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직접적 영향이 없다.

***"스스로 'WTO 족쇄' 채우는 일부터 중단해야"**

만일 대한민국 국회가 자신의 입법권을 WTO 협정을 고려해 행사하고자 한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학교와 정부, 이 둘의 의사결정을 적절히 결합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먼저 모든 학교가 적용할 보편적 품질 기준으로서 우수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학교급식법개정안'이 그러하듯이 친환경농업육성법, 농산물품질관리법, 축산법 등의 품질 인증과 규격에 맞는 농산물을 급식에 사용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품질 인증 제도는 국내산과 외국산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WTO 위반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전적으로 학교의 의사결정에 맡겨 두는 것으로는 학교 급식이 지역 농업에서 갖는 중요한 의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역 농산물로 맛있게 조리해 먹이는 것은 지역 농업이 존속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만일 학교 급식을 영리성이 추구되는 사적 영역으로만 계속 방치한다면 우리 농업은 중요한 연결점을 잃어버릴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함께 추구돼야 할 대안은 정부 자신이 학교급식용 우리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다만 지원 대상은 학교가 아닌 생산자가 될 것이다. 이 점이 전북 조례와 다르다. 정부(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학교급식용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자로부터 직접 조달해 학교에 공급하거나, 또는 지역의 학교와 공급계약을 체결한 생산자가 자신이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한 뒤에 정부(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럴 경우 WTO 협정 위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외교통상부의 윤강현 세계무역기구 과장은 2005년 4월 28일 국회 학교급식법 공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의 예산이 지원된다는 전제 하에 공교육프로그램으로 들어 와서 정부가 학교급식의 주체로서 상당 부분을 커버해 주면 WTO 농업협정의 허용보조금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회의록 13쪽)

그러나 최근 재정경제부는 농림부의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시범사업 계획 자체를 저지했다. 농림부 책정 사업예산은 고작 50억 원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미국이 10조 원의 돈을 들여 미국 농산물을 학교급식법에 공급할 때 우리는 50억 원의 사업을 아예 봉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WTO 농업협정의 보조금 총액 제한에 해당하지 않도록 식료 지원 조항(food aid) 등을 통해 영양학적 대상 요건 등 구체화 방안을 논의는 것은 의미가 없다. 50억 원 예산조차 계획단계에서 잘라 버리는데 상한선을 따져 무엇 하겠는가. 더욱이 저소득층 자녀의 학교급식비 지원에 사용하고 있는 공공 예산조차 외국농산물 구입에 사용될 수 있도록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WTO 때문에 우리농산물 학교 급식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말은 그만 해야 한다. 우리 농산물 학교급식 운동은 깊은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이를 WTO로 막아 보려는 시도는 결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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