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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할리우드를 말하는가, 또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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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할리우드를 말하는가, 또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북 앤 시네마]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다룬 책들이 다 모아보니
할리우드를 이해하는 건 한국 영화 산업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한국 영화산업은 할리우드 성장 모델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이란 건 규모와 국적에 상관 없이 유사한 곡절과 사건을 겪기 마련이다. 할리우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을 소개한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할리우드 영화산업 관련서들을 모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게 아니다. 톰 행크스가 만든 것도 더더욱 아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아이비리그 출신인 스튜디오 간부의 머리 속에서 시작됐다. 할리우드 메이저 파라마운트의 수석 부사장 돈 그랜저는 어린 시절 전쟁 영화를 즐겨봤었다. 그는 자신이 스튜디오 간부로 있는 동안에 전쟁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했다. 돈 그랜저는 하버드 MBA 출신인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로댓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줄거리를 구상했다. 그런데 돈 그랜저에게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로댓을 소개시켜 준 건 파라마운트의 경쟁사인 20세기 폭스의 제작자 마크 고든이었다. 마크 고든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맡아줄 적당한 감독과 배우를 물색하기 위해 매니지먼트 회사인 CAA의 간부 카린 세이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끌어들인 건 카린 세이지였다. 카린 세이지는 다른 사람의 기획에는 관심이 없는 스필버그를 설득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하지만 정작 스필버그를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이 역할을 한 건 카린 세이지가 아니었다. 우연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기 시나리오를 읽어본 톰 행크스가 배역을 탐내기 시작했다. 제작진과 점심을 먹으며 영화 이야기를 하던 톰 행크스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감독하면 어떻겠습니까?"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무명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러나 그때까진 함께 작업한 작품이 없었다. 톰 행크스가 스필버그를 설득했다. 비로소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가 태어난다**

피터 바트가 지은 〈할리우드 영화 전략〉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영화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피터 바트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 전문지 〈버라이어티〉의 편집장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었다. 완성된 영화는 감독과 제작자와 주연 배우만의 것처럼 포장된다. 그게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돈을 버는 영화 산업의 속성이다. 하지만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영화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산업의 구조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든 건 파라마운트나 20세기 폭스의 경영진도, CAA의 간부도, 하버드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도, 심지어 스필버그나 톰 행크스도 아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든 건 할리우드다.

〈할리우드 영화 전략〉은 1998년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겨냥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혈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뿐만 아니라 〈딥 익팩트〉와 〈고질라〉, 〈리쎌 웨폰〉 같은 영화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영화들은 하나 같이 이런 저런 영화 산업의 구조 속에서 치이고 받치다가 결국 극장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하게 된다. 피터 바트는 1998년 할리우드의 여름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본질은 산업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 산업 안에는 감독의 예술적인 재능과 상업적인 감각, 제작자의 수완과 시나리오 작가의 좌절, 매니지먼트의 농간과 계산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게 할리우드 영화인 것이다.

한국 영화 산업은 빠른 속도로 할리우드를 닮아가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등장하고 박스오피스 수치에 집착하게 됐다는 외형적인 변화도 크다. 하지만 한국 영화 산업이 할리우드를 좇아가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영화가 점차 산업 구조 안에서 잉태되고 출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영화 한 편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다. 감독과 배우, 매니지먼트와 제작사, 여러 명의 시나리오 작가와 스태프, 투자사와 배급사, 홍보사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영화 한 편이 완성되고 개봉된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에선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감독과 배우, 일부 스태프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본질이 달라지고 있는데 여전히 관점은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몇 권의 책들이 국내 영화 산업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시사점을 주는 건 그래서다.

***중요한 것은 영화라는 콘텐츠 그 자체**

다키야마 스스무의 〈할리우드 거대 미디어의 세계 전략〉은 〈할리우드의 영화 전략〉에 비하면 딱딱한 책이다. 피터 바트가 현장에서 채굴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면 다키야마 스스무는 경제신문사 출신 기자답게 통계와 분석으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해부하고 있다. 드문드문 등장하는 표와 그래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거대 미디어의 세계 전략〉이 흥미로운 이유는 다키야마 스스무가 할리우드에 접근하는 관점이 철저하게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피터 바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를 좇는다면 다키야마 스스무는 영화 산업이 IT와 미디어 회사들, 더 나아가 워싱턴 정가에까지 연결되는 큰 그림을 담는다.

거시 경제적인 관점에서 영화의 메이저들이 어떻게 사업 전략을 가져가고 있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서 어떤 모험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할리우드 콘텐츠 산업이 실리콘 벨리의 IT 산업, 그리고 TV나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 산업과 융합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건 지금 한국 영화를 둘러싼 인터넷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다키야마 스스무는 결국 이런 저런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난 100년 동안 할리우드를 지배했던 메이저 '모글'들이 결국 패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는 "콘텐츠가 왕이다"라고 말한다. 콘텐츠를 가진 쪽이 결국 시스템을 장악한 쪽을 압도한다는 얘기다.

〈할리우드 거대 미디어의 세계 전략〉이 국내에 출간된 건 2001년이었다. 당시에는 타임 워너와 AOL의 합병이 큰 화제거리였다. 영화 미디어 그룹인 타임 워너와 인터넷 회사인 AOL의 합병은 동등한 결합처럼 보였지만 사실 AOL의 타임 워너 인수였다. 콘텐츠가 필요했던 AOL은 타임 워너를 집어삼켜버렸다. AOL이 점령군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다키야마 스스무가 지적한 데로 AOL 타임 워너의 주도권은 타임 워너의 영화 출신 간부들이 쥐게 됐다.

그리고 2년 뒤 타임 워너는 AOL를 버렸다. 점령군은 조용히 물러갔다. 결국 콘텐츠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지금 충무로에서도 콘텐츠가 필요한 통신 자본의 유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SK는 싸이더스HQ를, KTF는 싸이더스FNH에 거액을 투자했다. 이런 산업 재편의 추이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도 〈할리우드 거대 미디어의 세계 전략〉은 좋은 참고서다.

***플랫폼을 장악하는 자가 콘텐츠를 장악한다**

콘텐츠와 윈도우의 관계는 영화 산업을 이해하는 데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메이저들은 모두 극장이라는 윈도우를 틀어쥐고 있다. 그러나 극장이 끝이 아니다. DVD나 비디오 같은 2차 윈도우 시장은 붕괴된 상태지만 새로운 윈도우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콘텐츠를 돈으로 환원하려면 윈도우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콘텐츠가 여러 윈도우에서 공개되면 그 만큼 돈이 배로 벌리게 된다.

그리고 지금 국내 영화 산업에게 새로운 윈도우로 제시되고 있는 건 DMB 사업을 확대하면서 영화 콘텐츠를 갈구하고 있는 이동 통신 윈도우다. 그런데 할리우드 산업에서 이러한 새로운 윈도우를 만들어낸 인물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영화와 아이팟을 통해 콘텐츠가 소비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윈도우를 창조했다. 시릴 피베가 쓴 〈iCEO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가 윈도우와 콘텐츠 산업에서 선구자가 되기까지 어떠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었는지를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가 할리우드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건 그가 이미 20년 전부터 '플랫폼을 장악하는 자가 콘텐츠를 장악한다'는 진리를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곧 콘텐츠가 소비되는 윈도우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킹콩〉과 2005년 〈킹콩〉은 사실 만듦새만 조금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영화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흥행에 성공했다. 결국 콘텐츠는 진화한다기 보다는 순환하는 것이다. 다만 그 산업에서 누가 돈을 버느냐는 결국 누가 플랫폼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느냐에 달려있다. 지난 수년 동안 진행된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확보전이나 앞으로 전개될 이동 통신사의 플랫폼 개발 전쟁은 결국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되느냐의 경쟁이기도 한 것이다.

할리우드 산업은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다른 거대 산업의 인수 합병 대상이 돼 왔다. 그리고 그걸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기업이 바로 소니다. 소니는 할리우드 메이저 콜럼비아를 인수해 전자와 콘텐츠 산업의 합병을 도모했다. 소니의 할리우드 진출을 진두 지휘했던 오가 노리오 회장의 경영 업적을 분석한 〈소니, 할리우드를 폭격하다〉는 하드웨어 산업과 소프트 웨어 산업의 결합이 어떤 성과와 오류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결합은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이 걷고 있는 노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디 앨런을 부러워해**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관련된 서적들은 번역물 일색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저자가 쓴 책은 있지만 국내 필진이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파헤친 서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동아일보 김희경 기자가 쓴 〈흥행의 재구성〉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할리우드 산업 관련 영화 서적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할리우드는 어쩌면 오히려 실체가 없다. 그들도 영화를 만드는 산업에 불과할 텐데 할리우드의 시스템과 영화 만들기에 대해 지나치게 큰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폄하하기도 한다. 〈흥행의 재구성〉은 국내 영화 산업을 이해하고 있는 필자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이해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기술한 경우다. 〈할리우드 거대 미디어의 세계 전략〉이나 〈할리우드의 영화 전략〉처럼 거시적이거나 현장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편의 영화가 흥행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흥행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의 〈흥행의 재구성〉과 유사한 분야를 다룬 책은 앨 리버만과 패트리샤 에스케이트가 쓴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혁명〉, 미도리 말이 쓴 〈할리우드 비즈니스〉가 있다. 이런 책들은 특히 영화 산업와 언론과의 관계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는 모든 것이 홍보의 대상이 된다. 스타와 감독, 영화 내용도 결국 홍보 거리다. 따라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영화는 정치와 경제, 사회처럼 정의가 존재하는 분야가 아니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가 있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 없는 영화, 흥행작과 실패작, 가치 있는 영화와 쓰레기 영화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언론은 기본적으로 영화에 우호적이고, 그것이 마케팅과 연결되면서 흥행으로 이어진다.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혁명〉이나 〈할리우드 비즈니스〉는 바로 이런 미디어와 영화 산업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사실 동년배인 스필버그나 마틴 스콜세지가 아니었다. 코폴라는 우디 앨런을 시샘했다. 코폴라는 "난 평생 우디 앨런처럼 일할 수 있기를 꿈꿨다. 그는 자신의 책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를 가지고 현장에 나가서 연출을 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 후반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며 승승장구했던 코폴라는 1990년대에는 존 그리샴의 소설을 영화화해야 할 만큼 고갈돼 있었다. 그러나 우디 앨런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코폴라는 우디 앨런을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얽히고 설키기 때문에 구조가 되고 산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값진 자료가 되는 서적은 할리우드 산업 서적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판 〈프리미어〉의 편집장인 피터 비스킨드가 쓴 〈할리웃 문화혁명: 어떻게 섹스-마약-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에는 1960년대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태동기부터 1990년대까지 할리우드의 변화를 주도했던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의 모든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정말 〈대부〉의 코폴라는 〈애니홀〉의 우디 앨런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애증이 결국 영 화 산업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초창기 할리우드를 다룬 일리아 에렌부르크의 〈꿈의 공장〉에도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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