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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대테러전 협조 '약발' 떨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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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대테러전 협조 '약발' 떨어졌나

'무성의한 부시 방문'으로 위기감 고조…인도와 대조적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조하며 미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 엄호를 받아 온 파키스탄 무샤라프 정권이 이곳저곳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인도에서는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아가면서까지 핵 협력 협정을 체결한 반면 파키스탄을 방문해서는 의례적인 말만 늘어놓고 미국으로 가버려 핵 협력은 고사하고 아무런 선물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언론들은 미국이 효용 가치가 떨어진 파키스탄을 버리고 대(對)중국 견제에 유용한 인도를 선택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도와의 오랜 경쟁자였던 파키스탄이 미국의 이같은 홀대에 불만과 위기감을 느껴 향후 중국과 손잡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고 있다.

***사실상 아무 일도 없었던 부시 방문**

부시 대통령이 인도에서는 사흘 머물고 파키스탄에서는 하루밖에 있지 않겠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정이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그가 인도와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맺은 데 대한 불만을 삭이며 하루밖에 안 되는 방문 일정이지만 성심을 다해 '영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파키스탄은 최고의 의전과 경호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적 저항을 무릅쓰고 인도의 크리켓 영웅이자 야당 대표인 임란 칸 정의운동당 당수를 체포하기까지 했다. 칸 당수는 부시 대통령 방문일인 4일 반대 시위를 주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방문 내용은 '무성의' 그 자체였다.

우선 부시 대통령의 이동선은 이슬라마바드의 대통령 궁과 미국 대사관을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 방문 이틀 전에 벌어졌던 자살폭탄테러로 카라치에서 미국의 외교관 한 명이 죽은 점을 들어 부시 대통령의 일정을 철저히 보안에 붙였고 가급적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있었던 파키스탄 대지진 피해 현장을 방문하는 대신 대통령궁에서 관련 영상물을 시청했고, 의례적으로 방문국의 어린이들을 만나 왔던 로라 부시 여사도 어린이들을 대통령궁으로 데려와 짤막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을 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같은 공식 일정 후 미국 대사관으로 직행해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인도에서와 달리 파키스탄 국민을 향한 연설을 하지 않아 자신을 반대하는 민심은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야속한' 부시, 의례적인 인사만**

파키스탄의 풀을 죽게 한 것은 그런 형식적인 문제만이 아니었다. 핵 협력과 관련해 인도와 상응하는 무언가를 바라던 무샤라프 정권은 부시 대통령이 그에 대한 어떤 언질도 주지 않자 굳은 낯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은 파키스탄 핵 과학의 아버지 압둘 아디르 칸 박사가 이란과 북한에 핵무기 제조 기술을 수출했다는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파키스탄과는 인도와 맺었던 핵 협정 같은 약속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단 한 차례 얼굴을 비친 부시 대통령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대테러전에 협조하고 있다는 건조하고 의례적인 인사말만 건넬 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오늘날 나에게 부여된 임무 중 하나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테러리스트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는 일을 계속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는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협조로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에 "미국과 파키스탄은 전략적 동반자"라는 말만 수차례 반복하면서 "미국과 파키스탄은 튼튼하고 오래된 관계를 맺어 왔다"고만 말했다.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5일(현지시간) "부시 대통령이 급격히 부상하는 경제 강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고 파키스탄은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분석가들의 말을 전했다.

무샤라프 대통령과 정부 지도자들은 부시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에서 우호적은 분위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파키스탄의 거리는 반미감정으로 들끓었다.

그렇잖아도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파키스탄 국민들은 최근 미군이 알카에다 지도부를 살해하겠다며 파키스탄의 한 마을을 공습해 어린이 7명을 포함한 민간인 14명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 이후 반미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덴마크 일간지에서 비롯된 무하마드 만평 파문에 대한 불만까지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리며 항의 시위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뉴스위크〉 "파키스탄-중국 협력 강화할 것"**

그러나 수십 년간 갈등해 온 인도와의 차별대우에 무엇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파키스탄도 미-인도 핵협정에 응수할 방법을 찾아 왔다는 증거가 미국의 시사주간 〈뉴스위크〉를 통해 알려졌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뉴스위크〉 최신호(13일자)는 부시 대통령이 이슬라마바드로 가기 전날 무샤라프 대통령이 파키스탄 국방대학에서 "나의 최근 중국 방문은 파키스탄의 전략적 선택을 열어놓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이같은 발언을 소개하며 지금까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헌신적 동맹국 지도자였던 무샤라프 대통령의 충성심이 곧 분열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난 1990년대 핵실험을 한 이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었지만 이번 미-인도 핵협정으로 인도는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와 관련해 핵전문가 로버트 아인혼은 무샤라프 대통령이 중국내 '친구들'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중국도 미-인도의 새로운 전략적 관계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접근을 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혼은 "인도가 (핵무기 제조를 위한)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면 파키스탄도 역시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라마트 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파키스탄은 군비경쟁을 시작할 의도가 전혀 없다면서도 "인도가 미-인도간 협정의 결과로 서서히 그런 경쟁에 나설 경우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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