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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은 세상 도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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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은 세상 도처에 있습니다"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이원규 '지리산에서 보내는 황새울 편지'
지리산에서 황새울까지는 꽤나 멉니다. 찔레꽃 하얗게 피는 섬진강변이나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얼마 남지 않은 봄의 끝자락에서 겁 많은 그러나 한없이 착한 고라니처럼 풀이나 뜯어먹으며 살 수 있으면 그 얼마나 좋으련만, 마음은 자꾸 황새울로 달려갑니다. 마침내 황새울은 황새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 도처에 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지만 '황새울의 꿈'이라는 낭만적인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쫓기고 내몰리며 살다보니
가락, 가락 울며 황새들도 떠나고
내내 황새우울 울화병의 날들이었다

저 간척의 논에
이 울화병의 몸에
절망의 허연 소금기를 빼느라
적어도 30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절망의 허연 소금기인 줄 아느냐

저 논에
내 몸과 마음의 염도를 맞추며
벼를 키우던 논물,
애간장이 녹아 흐르던
황새우울 눈물의 시간이었다

땀을 쏟은 만큼 벼이삭이 자라고
눈물을 흘린 꼭 그만큼 쌀이 나오더라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
더 이상 물러설 간척의 땅도 없다

다만 내게도 꿈이 있다면,
죽기 전에 마지막 꿈이 하나 있다면
캠프 험프리스 저 활주로 위에
예전처럼 모내기를 하고 싶다

그 푸른 무논의 활주로에
마침내 황새들이 돌아와
두 날개 쭈욱 펴고
아주 천천히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낭만적인, 어쩌면 철없는 시인지도 모릅니다. 국방부와 경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견주어보면 이 시는 부끄럽다 못해 하루 빨리 폐기처분하든지 소지라도 올리고픈 심정입니다. 그러나 소박한 나의 꿈은 나만의 꿈이 아니기에 여전히 울분을 삭이며 접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황새울 들녘에 황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황새는 고사하고 군용 헬기와 경찰 헬기만 날아와 하루 종일 정찰비행을 합니다. 볍씨는 잘 자라는지, 모내기는 잘돼 가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건강하신지, 그리고 올해 농사도 풍년이 될 것인지를 정찰하고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추리와 대두리의 봄은 가난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남녘에는 들녘마다 보랏빛 자운영 꽃들이 지천인데, 황새울만은 도대체 이 무슨 아수라 지옥입니까? 볍씨가 자라는 들녘에 또 하나의 38선인 철조망이 쳐지고, 물꼬를 터야 할 곳곳에 군용 막사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방패와 곤봉을 든 군인과 경찰들이 온 들녘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천하지대본인 농사를 더 이상 짓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 있습니다. 오갈 데 없는 늙으신 농민들은 새로운 비무장지대에 갇혀 호미도, 삽도, 괭이도 들 수 없어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한두 번이라면 참을 수도 있지만,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며 울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키겠다며 목을 놓아 울고 있습니다. 일본군에 쫓겨나고, 한국전쟁 때 다시 미군에 쫓겨나고, 또다시 한미공조로 쫓겨나야 할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지금 아무리 보아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닙니다. 모내기도 할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 갇힌 채 이들은 국적불명의 미아가 되었습니다. 5.18 때의 폭도나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북한의 하수인 혹은 욕망에 가득 찬 돼지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일평생 쫓겨나고 또 쫓겨나면서도 간척지를 만들고, 간척지의 소금기를 빼면서 농사를 지어 온 이 농투성이 어르신들이 진정 폭도이며 빨갱이란 말입니까? 본적과 주소지와 국적마저 빼앗고 빼앗으며 또다시 어디로 내쫓는단 말입니까? 이분들이 갈 곳이 이 세상 그 어디입니까? 참으로 한심하고 한심한 나라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경찰과 군인이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가 정녕 국가입니까? 경찰은 진정 경찰이며, 군인은 정녕 군인이 맞습니까?

되묻고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미 공조도 좋고, 국가안보도 좋고, 토지 강제수용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진정코 이것은 아닙니다. 세계 10위권의 부유부강한 나라 대한민국의 협상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입니까? 5.18 때처럼 자국민을 폭도로 몰아 방패로 머리를 찍고, 밧줄로 묶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285만 평의 땅입니까? 국가안보입니까? 미국의 동북아 전초기지입니까? 아니면 반생명 반평화의 아수라 지옥, 공동묘지입니까?

이것은 아닙니다. 진정코 이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소수의 국민이지만, 그 모두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대추리와 도두리의 들녘을 더 이상 이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시작이 틀리면 결과도 틀리는 법, 이들의 주검을 묻고 그 무덤 위에 군사기지를 만든다면 그것은 또 엄청난 업보의 전쟁을 불러올 게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바다와 갯벌을 메우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마침내 부메랑처럼 환경재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듯이, 곡식이 자라는 들녘이 마침내 생명을 살리는 들녘이 아니라 군사기지가 될 때 반드시 전쟁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두렵고도 두렵습니다. 대립과 갈등과 투쟁과 전쟁의 날들, 5월 4일의 악몽이 또다시 5.18 광주의 학살처럼 되풀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황새울 들녘에 황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땅에 볍씨 하나 싹 트지 못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해내야 합니다. 지난 5월 4일 대추리의 악몽을 넘어 바로 이 자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는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생명평화의 꿈을 실현하는 베이스캠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 볍씨는 잘 자라는지, 모내기는 잘돼 가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건강하신지, 그리고 올해 농사도 풍년이 될 것인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지리산과 황새울은 꽤나 멀지만, 또한 너무나 가깝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요, 이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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