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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향 빼앗아 놓고, '농사 지으며 살겠다'는 말이 나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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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의 고향 빼앗아 놓고, '농사 지으며 살겠다'는 말이 나오냐" 대추리 주민들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 너희 전경들이랑 위에 있는 정치인들 100명, 1000명이 몰려와도 우리 아들 같은 놈 없어. 어떤 멍청한 놈들이 우리 아들을 잡아다 가뒀는지. 왜 고향에서 자기 땅 지키겠다는 사람을 잡아가냔 말이여. 우리 지태가 어릴 때부터 자기네 부모 농사짓는 거 보고 자라면서 자기는 대학 가고 직장 다녀도 농사 짓겠다고 그랬던 애야. 그런 애를 왜 잡아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 고향에 돌아가 농사 짓겠다고 그랬다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남의 땅, 남의 고향 송두리째 다 빼앗아 가놓고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평택 팽성읍 대추리 주민대표 김지태 위원장의 어머니 황필순 씨의 발언은 점점 대성통곡으로 변해갔다.

"우리 아들 내놔라, 이놈들아. 내 땅 지키고 산다는데 왜 유치장에 가둬놓냐. 그 애가 물건을 훔쳤냐, 사람을 죽였냐. 마을일 보고 돌아다니던 우리 아들을 왜 잡아가. 아이고 지태야. 아이고 지태야. 내 속을 가르면 시커먼 먹물만 나올 것이여."

"이 통곡마저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대추리 김지태 이장의 어머니 황필순 씨가 발언 도중 오열하고 있다. ⓒ 프레시안

서른 명 가량의 대추리 주민들이 16일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 앞에 모였다. 청와대 앞에서 11일째 단식 중인 문정현 신부도 위문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항의서한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인 주민들은 다리가 아파 서 있을 수 없다며 효자동 구 정부합동청사 앞 아스팔트에 앉아 기자회견을 했다.

황필순 씨는 구속되어 있는 아들 생각에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 황 씨의 오열을 지켜보던 사회자는 "우리가 왜 서울까지 올라와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정말 속상한다. 그러나 여기 계신 거의 모든 분은 노인분들이시고 이런 목소리를 들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한시 바삐 황새울 들판을 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추리 새마을 지도자를 맡고 있는 신종원 씨는 "대추리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로 참혹해질 수 있느냐. 전쟁 이후에도 이 정도로 참혹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면서 "자기 땅 지키는 것도 잘못이라며 구속시키는 현실이 비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얼른 문제가 해결되어서 김지태 이장을 비롯한 구속자들을 모두 석방시키고, 지금 단식 중인 문정현 신부님도 다시 모시고 마을로 돌아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정부의 모습에 양심이라곤 없다"

도두2리 이상렬 이장은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라는 공개서한을 낭독했다.

이 글에서 주민들은 "수도 서울에 있는 미군기지가 없어지는 것은 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요 자랑거리라면서 농촌 촌부들의 인생과 자부심인 이곳 마을과 들을 빼앗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대추리 이장인 김지태 위원장을 구속시켜서 우리 마음은 더욱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며 "대화하고 싶다고 공문까지 보내놓고서 경찰에 자진출두한 사람을 구속시키고, 늙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묶는 이 정부의 모습에서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국방부 사람이 국책사업 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서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정부 공권력에 희생당해 왔으니, 이번에는 정부가 희생 좀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사업을 다시 곰곰히 검토해 보고 아무쪼록 긍정적인 답변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대추리 주민들 (왼쪽), 대추리 주민들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오른쪽). ⓒ 프레시안

"눈만 뜨면 보이는 전경, 여기도 있네"

주민들은 이 서한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청와대 앞에서 단식기도 중인 문정현 신부를 만나기 위해 효자동 구 정부합동청사에서 청와대까지 약 300여 미터를 삼보일배를 하며 가려고 했으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전경들에 의해 저지됐다.

사회자는 "첫 걸음은 경찰과 군대에 빼앗긴 황새울 들판을 되찾으려는 마음으로, 두 번째 걸음은 노무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잘못을 반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번째 걸음은 무관심한 시민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삼보일배를 하겠다"고 했고, 주민들은 3줄로 늘어서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경들은 "이렇게 많은 수가 한번에 청와대 앞으로 갈 수는 없다"며 가로막았고 약 한 시간 가량 주민들과 승강이를 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장을 든 것도 아닌데 왜 갈 수 없느냐", "우리가 못가는 거면 노무현이를 데리고 와라"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눈만 뜨면 보이는 전경, 여기서도 우리를 가로막네"라며 답답해 했다.
"이장님을 풀어줘야 우리 신부님이 진지도 잡수실 텐데"
▲ '가슴이 답답해서 못 살겠어' 가슴을 치는 김순득 할머니. ⓒ <판갈이> 이치열 기자

주민들은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다 결국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대추리 마을 대표와 경찰이 협상을 하는 동안 주민들은 자유발언을 하며 기다렸다. 대추리 주민 중 올해 68세인 김순득 할머니를 만나봤다.

요새 경찰과 군인들이 대추리에 엄청 많이 모여 있는데, 주민들에게 별다른 해코지는 하지 않아요?

해코지는 안 해. 해코지는 안 하는데 이곳저곳 몰려다니며 소리 퍽퍽 지르는 거, 헬기가 낮게 날면서 웅웅 거리는 거에 맨날 깜짝깜짝 놀라고 아주 그냥 심장이 떨려. 철조망 치겠다고 남의 밭이고 논이고 마음대로 들어가니까 그것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 철조망 친다고 땅을 엄청 깊이 파내 버렸어.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으세요?

요새 하도 놀라서 그런가 심장이 안 좋아. 막 급하게 뛰고 그래. 근데 요즘은 얼굴도 부어. 저번에 국방부 토질조사 왔을 때, 내 콩밭을 그냥 짓이겨 놓길래 왜 그러냐고 항의 했더니 사람을 냅다 들어서 던져놓는 바람에 뒷머리랑 어깨랑 다쳤어. 안 그래도 이 싸움 하면서 심장도 급하게 뛰고 그래서 몸이 안 좋았는데, 그 뒤로 이제는 얼굴까지 부어.

우리 영감도 올해 일흔둘인데 몸이 안 좋아. 심장병에 당뇨에 온갖 병이 다 있어. 그래서 오늘은 같이 못왔지. 이 땅 지키려는 3, 4년 싸움에 남는 건 병밖에 없는 거야. 준다는 보상금도 깡통 찰 만큼밖에 안되는데, 병밖에 남는게 없다니까.

들일 할 시간에 요새는 뭐 하세요?

요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지. 내 속 답답하다, 내 속 답답하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이랑 들판에 나가 멍하게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몰라. 새만금에는 농사짓는 땅 만든다며 몇 조 원인가 들여서 만든다면서.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 좋은 쌀 나는 땅은 왜 미군한테 넘겨줄려고 그러냐고.

내가 그 땅에 공장 짓는다 그러면 말을 안 해. 미군기지가 들었다 난 땅은 다시 못 써. 그 쓰레기에 땅이 어지러워져서 못 쓴다고. 왜 하필 미군기지냐고. 지들이 황새울 들판 둑 쌓을 때 와보기를 했어, 우리 이야기를 듣기나 했어. 이해가 안 돼, 이해가.

자녀분들은?

아들이 넷인데 장남은 같이 살고 둘은 서울에, 하나는 분당에 있어. 우리 장남 농사 짓는데 이렇게 되는 바람에 근 2년 완전히 백수야 백수.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어. 아주 속상해 죽겠어. 우리 아들도 계속 농사 짓겠다고 해. 착해. 근데 이렇게 나가라고만 해대니 원.

근데 이제 이렇게 김지태 이장 잡혀가고 우리 문 신부님 단식 하시니 이제는 땅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야, 사람이. 얼른 이장님을 풀어줘야 우리 신부님도 진지 잡숫고 하실 텐데. 그 나이 많으신 분이 심장도 안 좋으신데, 걱정도 많이 되고 속상해 죽겠어. 얼른 끝내야 해. 그럴려면 얼른 이장님을 풀어줘야 하는데. 아 이렇게 청와대 가까이도 가지 못하게 하니.

"단식하는 것보다 대추리서 사는 게 더 고생이네"

한 시간 가량 지나자 경찰은 청와대 앞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문정현 신부님을 만나되, 한 번에 15명씩만 만나라는 조건을 제시했고, 대추리 주민 대표들은 이에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 또 경찰은 주민들이 '대추리 김지태 이장 석방하라', '주민 동의 없는 미군기지 이전 사업 중단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형광색 조끼도 입지 못하게 했다.

청와대 앞 효자동 공원에는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 수십 명씩 무리 지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주민들은 "우리가 저 관광객들과 다를게 뭐 있어, 우리가 나쁜 놈들이야?"라며 분개했고 "우리가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나쁜 대우를 받는 거지, 이게 우리가 국민도 아니라는 이야기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주민도 있었다.
▲ 11일째 단식 중인 문정현 신부와 대추리 주민. ⓒ 프레시안

결국 주민들은 문정현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말을 줄입니다'라는 팻말을 붙이고 조용히 누워 있던 문정현 신부는 주민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서 이들을 맞이했다. 연신 "아이고, 우리 신부님, 신부님"이라고 말하며 다가온 주민들은 신부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문정현 신부는 한 명 한 명 얼굴을 들여다보며 밝은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했다.

주민들은 "생각보다는 정정해 보이신다"며 기뻐하면서도 "부디 별 일 없도록 몸조심 하시라"고 당부했다. 문정현 신부는 주민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단식하는 것보다 대추리를 지키고 사는 게 더 큰 고생"이라며 "어떤 상황이 와도 용기를 잃지 말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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