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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평화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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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평화를 기원하며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안이희옥 '평택 가는 길'
아주 오랜만에 여행 채비를 갖추고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도라산역 못 미치는 곳에 있는 작고 한산한 역에서 우선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재밌고 들뜨고 흥겨운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 제 눈에는 기차 안이나 밖에서나 사람의 일손을 기다리고 있는 안타까운 광경들만 보였습니다. 자동화되어 승무원이 줄어듦으로써 안내원이 없어 겪게 되는 불편함들, 어느 역이 어느 역인지 헷갈리고 안내 방송이나 전광판, 안내판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기차 바깥 풍경 역시 누군가의 일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잡풀이 볼썽사납게 우거져 있는 철로변, 그리고 재개발이나 리모델링을 기다리고 있는 빈민가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습니다. 제가 단칸 지하 셋방에 살던 시절이 두려움과 함께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채광과 호흡과 의식주가 불안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며 절망이나 분노를 쌓아가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 <비행> 김천일ⓒ '평택-평화의 씨를 뿌리고' 대추리 현장전

드디어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평택 가는 열차를 바꿔 타기까지 한 시간 가량 여유가 있었으므로 서울역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슬그머니 울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역사는 휘황한 외관에 외국의 온갖 유명한 브랜드를 뽐내는 으리으리한 상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 누일 한 평 공간도 없는 노숙자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모든 것이 기계화·자동화 되어가는 고속 성장 뒤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무서운 고통과 실업, 실직, 안전 불감증, 사고 위험성 투성이인, 일손을 기다리는 낙후된 현장 설비들이 보였습니다.

역사 안의 기둥들은 어설프게 전선이 얽혀 있어 잘못하면 감전사고라도 날까 걱정이 되었고, 역사 뒤 하역장은 비좁기 짝이 없었고 역사의 규모에 비해 주차장은 있으나마나였습니다. 한켠에서는 고속철도 여승무원들이 필사적으로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100일이 훨씬 넘은 농성에 많이 지쳐 보였지만, 자수를 놓으며 여성적인 평화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가뜩이나 일손이 모자라는 현장의 실정에는 무심한 채 깨끗하고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관제탑에서 통계만 작성하고 원가 절감과 이윤 극대화를 위한 명령만 내린다면, 현장 근로자들은 과로와 시설 낙후로 대형사고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을 호소할 길이 없어 저렇게 농성을 하게 되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일손이 늘 모자라는 판에 몇 백 명을 해고하겠다고 하니 비정규직 철폐,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여겨졌습니다.

저는 문득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공상과학 소설을 상기했습니다. 매우 세련된 기계화, 정보화된 바벨탑 같은 사령탑에는 소수의 우수하고 잘사는 사람들이 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민가, 폐허, 광야에서 굶주리며 근근이 생존하게 되는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설의 예언대로 대망의 21세기는 실제로 그런 양극화 상황으로 빠르게 치닫고 있는 조짐이 아주 많이 보였습니다.
▲ <쇠똥구리> 박흥순 ⓒ '평택-평화의 씨를 뿌리고' 대추리 현장전

글로벌 투기 자본이 전세계를 횡행하며 나라마다 극심한 양극화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눈으로 사회 현장의 상황을 보니 정말 심각하구나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평택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역시 일반 기차는 고물덩어리 같이 방치되고 있었고 일손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아니, 창밖을 보니 모두 일손을 기다리는 일자리들만 보였습니다. 저렇게 창출할 일자리가 많은데, 왜 수십만의 실업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가?

소모적인 이념 논쟁, 레드 콤플렉스로 인한 미신적인 공포에 휩싸인 자본가들이 잔뜩 겁에 질려 생산적인 사고를 못하고 투자를 안 하고 재산을 움켜쥔 채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만, 그들이 원해온 대로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어디로 피하든 숨을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차라리 세계의 모순을, 그리고 우리 한반도의 모순을 진심으로 직면해 본다면 어떨까요? 총체적인 교육의 실패, 산업화·기계화·정보화의 실패, 한 마디로 글로벌 프로젝트의 실패를 직면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반성이나 자성의 기회를 마련하기보다 더 많이, 더 빨리만 외친다면 결국 파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매우 염려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한때는 세계화로 국가간의 경계가 느슨해진다면 민족간의 분쟁도 줄고 전쟁이 소멸되어 평화로운 지구별이 만들어지는 데 글로벌이 어느 정도 기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회 현상은 그게 아니라고 눈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낙후된 다수의 계층은 잘사는 계층을 봄으로써 끊임없이 상승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받고 좌절당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결핍감 때문에 심각하게 병들고, 너무 많이 가진 계층은 삶의 진정한 기쁨을 잃고 비인간화되고 부패하는 이상한 나라, 이상한 지구별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top! 현대 문명은 그만 발전해야 합니다. 대신에 내실을 기하여 낙후된 많은 부분들을 진정으로 개혁해 내지 않으면 아주아주 극소수의 인류만이 지구별을 탈출할 수밖에 없는 종말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 <침략자> 박은태 ⓒ '평택-평화의 씨를 뿌리고' 대추리 현장전

드디어 평택 대추리에 도착했습니다. 너른 논을 온통 포크레인으로 파헤쳐 놓고 흉측한 철조망을 빈틈없이 쳐놓은 대추리, 도두리로 가는 지름길을 파헤쳐서 끊어놓은 것, 기껏 만든 평화를 염원하는 예술작품들을 하찮게 여기듯 파괴한 것, 그 한편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는 주민들, 그리고 아무 지원도 없이 열심히 파괴된 폐교 위에다 설치미술품을 만들고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벽시를 쓰고, 농협창고에 미술품을 전시하는 예술가들, 그 평화를 갈구하는 안간힘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성당, 지금 노령에도 불구하고 단식하고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주민들과 함께 가꾸어온,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성당, 공소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 너머에는 오만한 성곽처럼 캠프 험프리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우리편이어야 할 국군과 경찰은 그 오만한 미군기지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그 너른 비 오는 들판에서 전경들은 간이 화장실을 사용하며 제대로 먹고 자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생하며 검문을 하고 통행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 자식이 있었다면 한 명은 시위대가 되어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고 한 명은 전경이 되어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미군들은 잘 먹고 잘 자며 조깅하며 잘 지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속상한 상황입니까? 결국 그 거대한 미군기지는 서울 시내를 온통 점령한 외국의 투기자본들을 지키기 위한 병력들 아니겠습니까? 한반도를 지킨다고 들어와서 한반도의 물자와 영혼을 싹쓸이한 미국의 자본과 군대. 그것을 지켜주려고 애매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저 심한 고생들을 하고 있다니…….

저는 아주 오래 전에 농활을 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땅이 건강해야 사람이 건강하고 나라가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온갖 병든 군상들을 오래 바라보며 편리함을 추구하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문명의 한계를 느끼고는 했었죠. 미국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투기 자본은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기능인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에 무척 비인간화된 세상을 만들어 놨습니다.

즉, 앞의 서울역에서 압축적으로 볼 수 있었듯이 능력 있는 소수는 너무 바쁘고 노동 강도가 세서 정신없는 전문가로 사느라 허덕이고, 다수는 실업자가 되거나 가슴 없는 향락에 빠져 참다운 삶을 잃어가는, 사람다운 생활, 사람다운 노동, 생명과 환경이 무시되고 황폐화되어가는, 순전히 자본가들 입장에 의해 구축된 세계 질서가 결국은 우리의 생명 주권인 쌀농사 지역인 대추리·도두리를 무기 장사, 전쟁광, 용병들에게 빼앗기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 두시영 ⓒ '평택-평화의 씨를 뿌리고' 대추리 현장전

안정리에 들어서자 더욱 한숨이 나왔습니다. 안정리는 미군들이 즐기고 숙박하는 시설들이 많은 상업지역이어서 미군들에게 기생해서 살 수밖에 없는, 막판까지 몰린 불쌍한 기지촌 여성들이 있을 법한 곳이었습니다. 예전에 기지촌에서 기활을 하던 친구를 자주 만나 기지촌 사정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 저는 안정리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였습니다.

사실 미군기지의 용병들은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고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해내는 사람들이니, 그 또한 불쌍하고 답답한 일이지요. 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줘야 하는 불쌍한 한국의 여성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나옵니다. 현대판 정신대지요. 소수의 자본가, 무기상, 정치가들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로 부려가면서 세계 곳곳에 얼마나 많은 비극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그러나 안정리 상인들은 미군기지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민족입니까? 강대국의 들끓는 극대화된 욕망을 위해 그 하수인이 되어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한반도의 모순에 목이 메고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농업과 미군기지 내에서의 벌이를 겸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본정리 주민들은 미군들이 많을수록 안전해진다고 대단히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투기자본과 그것을 지키려는 미군들에 의해 국민들이 시름시름 병들어 가는데, 아무리 많은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엽적인 해결이 아니라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막연히 강대국에 의존하려는 답답한 사고방식을 어떻게 물꼬를 터서 대화하고 설득해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한반도의 모순이 얽히고설킨 평택이 사랑과 평화, 화해와 대화,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화합의 마을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여하튼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입장이 한군데 모여 용광로 속처럼 들끓고 있는 평택……. 주민들은 벌써 삼 년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모두 얼마나 지쳤을까요? 그런데도 모두 눈빛들이 형형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뭐 잘난 사람이라고 이 복잡한 상황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보고 느낀 것을 쓸 뿐입니다.

할말은 많지만 이만 원고를 줄입니다. 다만 평택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너무 마음이 고통스러워 진정제를 두 알이나 먹고 잠들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잠자면서도 이 복잡하고 황폐한 상황에 FTA까지 체결되면 우리의 조국, 한반도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어 뒤척였다는 사실만 이야기하겠습니다.

* 작가 사진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게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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