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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FTA 특위, '벼락치기 과외' 받으면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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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FTA 특위, '벼락치기 과외' 받으면 달라지나? [기자의 눈]통상절차법! 제 밥그릇부터 챙겨라
3일 있었던 열린우리당 한미 FTA 특별위원회 농업분과 토론회에서 한 여당의원은 미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자못 유쾌한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이 관계자가 최근 미 무역대표부를 방문한 우리나라 의원들에게 "미국 의원들은 자신이 나온 주의 이익만 이야기하는데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익'만을 이야기하니 정말 놀랍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이 USTR 관료는 '지역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고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대단하다'며 한껏 추켜세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협상을 벌여야 하는 그 관료가 '국익'만을 되뇌는 한국 국회의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한국 협상력 깎아 먹는 국회

USTR 관계자의 말처럼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자신이 나온 주의 이해관계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와 같은 통상협상은 각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주마다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행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 미 행정부와 의회는 소속한 당을 떠나 대내적으로는 늘 대립하고 갈등하는 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역학관계는 대외적으로 더없이 탄탄한 파트너십으로 나타난다. 미 행정부는 의회의 압력을 빌미로 상대국 정부를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또 상대국의 요구를 의회가 반대한다며 거절하기도 한다. 의회의 활발한 활동이 협상단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일부 진보적인 의원들과 농촌지역 일부 의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딱히 대변하는 이해관계라는 게 없다. 하다못해 한미 FTA 협상의 성사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이익단체나 시민단체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도 찾기 어렵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지만 사실상 사회와의 교류는 단절, 내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익과 이해관계에 대한 정확한 관념이 없다보니 안에서나 밖에서나, 심지어는 협상 대상국을 가서도 실체 불분명의 '국익'만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의회의 헐거움을 드러냄으로써 한국 협상단의 협상력이 알게 모르게 뚝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안에선 권모술수에 그리 능하다는 그 '정치인들'이 맞는지 다시 보게 된다.

한미 FTA 과외는 그만

한미 FTA 3차 협상을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들은 최근 한미 FTA 특위를 꾸리고 각 당별로 토론회를 여는 등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차례 비공개로 열린 특위 토론회는 "부실한 국회, 하품(下品) 특위"라는 눈총만 얻었다. 기본적으로 '한미 FTA는 성사돼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접근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 한미 FTA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부분이니 당연한 일이다.

'부실 특위'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대부분의 의원들은 "외교통상부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정부쪽에 손가락질을 한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알려진 자료마저 비공개 회의 도중 배포돼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걷어간다고 하니 의원들의 정보 갈증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런 예습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특위 위원이 된 그들이 이제와 정보 타령을 하는 것은 손쉬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막상 이런 저런 자리에서 통상교섭단 관계자를 만나면 그때서야 온갖 협상 용어와 국제 관행 등을 배우기에 급급하다고 한다. 3일 있었던 열린우리당 한미 FTA 농업분과 토론회도 그랬고,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비공개로 진행된 한미FTA 특별위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 의원은 "한미 FTA 특위가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한 것은 '하품 특위'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며 "보고 내용도 언론보도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협상 과정 검증이라기보다는 국회의원 과외공부 시키는 자리를 연상케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대목에선 다시 미국 의회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들로부터 몇날 며칠을 밤새워 벼락치기 과외교습을 받은들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는 선생님을 뛰어 넘어 선생님의 오류를 지적하는 학생을 기대하는 것만큼 난망한 일이 아닐까?

협상용어를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국회의 역할에는 협상의 역기능과 이에 따른 파장을 단속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집단과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듣고 행정부의 일방독주를 제어하는 일도 포함된다. 이때야 비로소 국회는 '대 행정부 종속'에서 벗어나 '대등한 파트너십'을 갖고 상호 견제를 할 수 있다.

자기 밥그릇도 못 챙겨 먹는 국회

따라서 국회는 한가하게 학자들과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들을 불러 과외수업을 듣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한시바삐 국회의 권리부터 제대로 살리고 볼 일이다. 그 첫 단계가 바로 통상절차법 처리다.

지난 2월 2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상협정의 체결 절차에 관한 법'(통상절차법)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다.

이 법안은 통상 정책 수립 등을 실행하는 국무총리 산하에 '통상위원회'를 구성하고 국회 내에는 통상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사회적 합의를 위한 민간 자문기구를 구성하고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 정부가 협상의 진행 상황을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이해당사자 등 국민에게도 협상의 중요 진행 상황을 수시로 설명하게 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조약을 추진할 때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조약의 추진 계획의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고, 협상 추진의 방향, 조약의 범위 등에 조건을 걸 수도 있다.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행정부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한미 FTA를 지지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지만, 국회가 먼저 '통상절차법'을 제정해 제 권한을 챙기고 나서면 해결될 일들인 것이다.

만약 한미 FTA가 이대로 졸속으로 추진돼 한국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 책임은 협상단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행정부를 견제하기는커녕 민의를 모으지도 못하고, 제 밥그릇도 걷어 찬 '어리버리'한 국회가 그 때는 또 어떤 '영악한' 변명을 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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