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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싸움을 건 자 누구인가 ['전시 작전통제권 회수' 논란의 허실 (下)] 진짜 쟁점이 죽어간다
<중앙일보>는 11일자 기사에서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 대해 "자주-사대 편가르기 국내용 정치게임"이라고 규정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이 하자는 대로 예, 예 해야 하느냐"와 같은 공세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유도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이날 "안보장사 시대에 성공한 일부 신문이 지금도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냐"는 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자극적인 표현'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이 작통권 '단독행사' 대신 '환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두고 한 미국 정부 관리가 "'미국으로부터 우리 것을 되찾아온다'는 느낌을 한국민들에게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속 쓰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를 탓하는 뉘앙스다.
▲ 노무현 대통령이 작전통제권을 둘러싼 정치공세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연합뉴스

아닌 게 아니라 노 대통령의 9일 인터뷰에는 그런 의도가 없지 않아 보였다.

"작통권은 자주국방의 핵심이고,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꽃"이라는 발언이 그렇다. 말 자체야 일리가 없지 않으나, 작통권 환수 자체에만 의미를 두기보다 한국의 목소리가 온전하게 반영될 수 있는 한미 공동방위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지적에 대한 답변은 되지 못했다.

작통권 하나만 가져오면 자주국방과 주권국가가 절로 되는 양 부풀렸다는 측면에서 정치적 저의를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 소위 '자주파'적 입장에 선 친노(親盧) 지지자들은 그런 말만 듣고 껍데기뿐인 자주국방에 열광할 가능성이 높다.

반발이 뻔한 줄 알면서도 "안보장사 시대에 성공한 일부 신문들", "자존심 없는 얘기 그만하자"는 등의 표현을 여과 없이 사용한 것은 언론과 싸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읽힌다.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해야 하느냐"는 말은 노 대통령이 거듭 범해 왔던 외교적 오류로 또한번 지적될 수 있다.

적반하장 조중동

그러나 이런 의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작통권을 둘러싼 '편가르기 국내용 정치 게임'을 시작하고 확대시킨 것은 노 대통령이 아니다. '조중동'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작통권 논란의 시작은 <조선일보>가 지난 7월 19일 '미국이 작전권 이양 시기를 2010년 이전에 했으면 좋겠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하면서부터였다. 그러자 '조중동'은 작통권 환수가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추진됐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 정부의 '그릇된 반미 의식'이 작통권 환수를 재촉하고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해 안보를 불안케 하고 있다며 주한미군이 금방이라도 철수해 버릴 듯 아우성쳤다.

그 후 이 신문들은 전직 국방장관을 포함한 소위 '군 원로' 15명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작통권 환수를 중단하라고 '입을 모아' 촉구했다고 과장되게(실제 이 자리에서는 정부에 이해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도했고, 그에 대한 '원로'들의 반발도 대서특필하며 대통령과 정부를 두들겨댔다.

이어 미국이 한국이 제시한 시한보다 3년 앞선 2009년까지 작통권을 넘기려 한다는 <워싱턴타임스>의 4일자 보도가 있었고, 미 국방부의 고위 관리가 7일 '혼란을 수습한다'며 브리핑을 하면서 주한미군의 추가감축 가능성을 시사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노 대통령의 9일 인터뷰는 이처럼 과장되고, 지극히 정치적인 조중동의 싸움걸기에 대한 대응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맥락을 깡그리 무시하고 노 대통령의 자극적인 몇 마디 말이 나오자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논란을 유도했고 정치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본질은 정치투쟁

이렇게 해서 가열된 싸움은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서주석 안보수석이 대통령의 말에 주석을 달고, 조중동은 10일 다시 모인 '군 원로'들의 성명과 발언을 지상중계하면서 거의 난투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때 어김없이 필봉을 잡은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11일 '국민에게 물어보라'며 국민투표라는 새로운 길을 '밝혀' 이 난투극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시작부터도 그랬지만, 이 싸움은 장기전으로 갈수록 정치투쟁이라는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국가안보는 명분에 불과하다.
▲ 작전통제권 환수를 거부하는 '군 원로'들. 이들은 정치투쟁을 본질로 하는 이번 논란의 주연인가 조연인가. ⓒ연합뉴스

문제는 안보를 볼모로 한 이 싸움이 작통권 환수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진짜 쟁점을 철저히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쟁점이란 작통권을 받기 전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한미 공동방위체제는 어떻게 만들 것이며, 대북(對北) 대응에서 한미간의 이견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등에 대한 문제다.

그러나 '환수냐 연기(혹은 반대)냐' '주한미군 철수냐 잔류냐' '한미동맹 파괴냐 아니냐'와 같은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논란은 그런 중요한 쟁점들이 설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작통권이 제대로 환수되고 평화지향적인 한미동맹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환수 과정을 감시하려던 이들은 맨 '오른쪽'에서 엉뚱하게 형성된 전선을 보고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껍데기 작통권' 환수가 더 큰 문제

안보문제 전문가들이나 시민단체가 작통권 환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우리 군이 대북 방어를 전담하게 되면서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 확보'를 이유로 대규모 군비증강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9일 회견에서 "(우리) 군의 욕심은 차제에 최고 A급, 최고 수준의 장비와 시스템을 갖춘 군대를 만들어 보고 싶어 한다"며 "대통령이 '그래 준다'는 거고, 그래서 가고 있고, 2012년까지 할 생각"이라고 말해 작통권 환수를 계기로 군비증강을 원하는 군의 '욕심'을 들어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 군의 요구와 대통령의 후원으로 탄생한 것이 중장기 국방개혁안인 '국방개혁 2020'이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15년간 총 621조 원의 국방비가 필요해 국방예산은 매년 평균 6.6%씩 증액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의 확보를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과 일부 감축에 따른 '손실 보전'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C4I(전술지휘통제) 구축, 공중조기경보기(E-X) 및 무인정찰기 도입 등에 따른 엄청난 국방비 부담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이를 통해 한국군이 중무장할 경우 향후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점도 지적된다.

함택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6월 20일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 온라인 정책포럼에 발표한 글에서 "한국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과 같은 수준의 C4I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불가능하다"면서 불필요한 장비를 구매하는 대신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방어 중심의 군사능력을 구축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최근 E-X 사업에서 미국 보잉사의 B-737이 선정되는 데에서 보듯, 국방개혁안에 따라 도입되는 무기체계가 주로 미국산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의 무기체계가 결국 미국의 무기체계에 종속돼 정부가 추진하는 자주국방은 '무늬만 자주국방'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작통권 환수와 그에 따른 군비증강사업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결국 미국 군수산업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또 작통권이 환수되어 주한미군이 한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략적 유연성을 구사할 경우에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작통권 논의에서 빼먹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문제점들이 논의되고 점검되어야 할 작통권 환수 문제는 지금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고 있다. 이 혼란의 끝은 어디일까. 보수언론들의 끝모를 정치공세에 국민들의 머릿속은 혼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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