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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부시와 한 배를 탈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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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부시와 한 배를 탈 생각이 없다" <기고> 자이툰 파병연장으로 국민을 모독하지 마라
정부가 또 다시 이라크 파병 연장을 추진할 모양이다. 이런 조짐은 지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있었던 한미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전부터 보였다. 지난 6월 국방부가 '자이툰 부대 임무종결 계획서'를 제출하면서 미국의 '신이라크 전략'에 대한 평가가 9월에나 가능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철군시한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군시한 없는 임무종결계획서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지 않는 한 자이툰 부대도 철군할 수 없다는 국방부의 숨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 윤영범 부대장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한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다국적군단의 중요 임무가 달성됐을 때 자이툰 부대도 같이 임무를 종결하는 것이 바람"이라는 것이다. 다국적군의 중요임무라는 게 무엇인가. 미국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나라로 이라크를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것 아닌가. 이것이 실현될 때까지 미군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미국과 함께 이라크 침공에 나섰던 영국도 철군을 결정한 마당에 한국군이 나서서 "다국적군단의 작전이 끝나지 않았는데 예하 사단이 보따리를 싸고 귀국했을 때"를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궁색하고, 반윤리적이고, 부끄럽운 파병
  
  아무래도 이라크 파병연장을 시도하는 이들은 한국이 이라크에서 미국과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 하는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동안 정부가 펴왔던 온갖 파병연장의 논리가 허구라는 것이 드러났고. 연중 철군약속도 국회에 이미 한 바 있는데 또 다시 파병연장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또 다시 국방부는 '경제적 실익과 한국군의 해외작전능력 제고'를 위해 자이툰 파병을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래 정부는 온통 폐허가 된 이라크에, 수십만명의 인명이 살상된 그 곳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이유라는 게 그런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궁색하다. 국방부의 논리는 수차례의 파병연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경제적 실익과는 무관했음이 드러난 한국군 파병정책에 대해 단 한 차례의 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반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반윤리적이다. 이라크인들의 피눈물이 뿌려진 곳에서 경제적 실익을 구하고, 그곳에서의 대테러전 지원 활동을 한국군의 해외전지훈련 양 삼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참으로 부끄럽다. 한국군의 파병정책에는 무장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곳의 평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흔적이 없다. 정부는 이라크 내 종족, 종파간 갈등의 한 축이 되고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한국군의 일방적인 지원이 과연 이라크와 터키 등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를 고려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도리어 종족간의 내전을 지원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미국의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 참전하면서도 그곳 주민들의 평화와 안전에 대해서는 관심도 성찰도 없는 오로지 군대 파견만을 고집하는 게 한국 정부의 해외 파병정책의 현주소이다. 혹독한 대가를 치룬 아프간 피랍사태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애초부터 이라크에서 미국과 끝가지 함께 할 작정이었다면 정부가 매년 파병을 연장하고 갖가지 파병연장의 논리를 찾아내고자 애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부가 그토록 믿고 따르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당연히 이라크를 손쉽게 접수할거라고 믿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수십만 명의 인명살상을 낳으며 지진부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4000명에 육박하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숨져갔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만 한 이라크 정세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라크에서 미국과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면 파병의 논리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고 파병연장도 딱히 그 시한이 있을 이유가 없다. 파병과 파병연장의 논리는 임시방편용 일뿐이었다. '국익'이라고 명명되었던 것도 실현되면 좋은 것이고, 실현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 불행히도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반면 모호한 '국익'논리는 언제든지 유용하고 현실적이라고 우기는 버릇이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라크 침공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미국이 이라크라는 수렁에 빠질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애초 파병결정에 있어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올해 안에 철군계획을 제출하겠다는 국회와 국민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파병연장은 매년 그러했듯이 한 해만 연장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정부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종지부를 찍지 않는다면 한국군을 철군시킬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낯뜨거운 '평화애호' 국가론
  
  그럼 과연 우리는 이라크에서 마지막까지 미국과 함께해야 하는 운명공동체인가. 틈만 나면 역사상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애호 국가'라고 말하는 한국과 21세기를 전쟁으로 시작해 지금껏 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과 운명공동체여야 하는가.
  
  한국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경험했고 앞서 일제의 식민통치도 겪었다. 그래서 총과 탱크가 남긴 상흔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치유하기 어려운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남북간의 대립이 그렇고 첨예한 남남 갈등이 그렇다. 일제 식민지 통치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웠는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우리 세대도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마찬가지다. 미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심어놓은 분노의 불씨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한 세대 아니 두 세대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분노는 총부리를 미국과 그의 동맹국을 향하게 할 것이고, 후세대들은 선험적으로 그들 나라를 파탄내버린 국가들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며 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분노의 씨앗을 키우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아프간 피랍사태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왜 재앙과도 같은 이라크 전쟁에 한국이 미국과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 하나. 그러면서 낯 뜨겁게도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애호 국가라고 말하는가.
  
  이라크 파병을 두고 '양심에 따른 결정' 이라고 한 노무현 대통령과 줄기차게 군대파병을 시도하는 정부는 부시 대통령과 인식을 같이할지 몰라도 다수의 한국 시민들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 지 오래이다. 한국의 많은 시민들은 미국 내에서도 많은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점령에 대해 미국과 끝까지 같이할 생각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이 시대 최악의 학살자로 역사에 기록될 부시 대통령과 한 배를 탈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과 함께해야 한다는 운명과도 같은 '그들만의' 생각은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병리학적 증세로 치부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반박의 여지도 없는 파병연장의 논리를 되풀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국민의 뜻인 양 오도한다면, 그래서 수치스럽게 또 다시 파병연장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분명 국민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무고한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자국의 패권과 석유이권을 노리고 그 와중에 무기시장을 개척하는 미국과 평화를 지향해야 할 한국은 결코 운명공동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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