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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결렬, 北의 협상지연 전략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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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결렬, 北의 협상지연 전략의 결과 [한반도 브리핑]<111> 북핵 해결 지체와 남북관계 경색 더 문제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결렬됐다. 하루를 더 연장한 회의가 끝내 합의 도출에 실패한 뒤, 의장국인 중국은 주요 토의 결과를 담은 의장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이 미국측의 시료채취(sampling)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검증의정서 채택이 무산되자 2단계 합의 이행과 관련해 테러지원국 재지정 또는 대북 에너지 지원 유보 같은 보복조치의 가능성까지 운위되고 있다. 그 경우 북한도 불능화 중단이나 폐연료봉 재처리 착수, 미사일 시험발사 등 강경책을 구사할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왔다. 대체로 비관적인 전망이다.

과연 이번 6자회담의 결렬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실 북·미가 2단계 합의 이행과 관련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이번 회담은 시작 이전부터 타결 여부가 극히 불투명했다. 검증 방법과 관련해 지난 7월 수석대표회의 때 합의한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관계자 면담을 넘어서는 이른바 '과학적 절차'에 관해 북한은 현 단계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기 때문이다.

10월초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협의 당시 이 부분에 대한 구두 협의가 있었고 이를 10월 11일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공개했지만 북한은 합의사항이 아니라며 거듭 부인했다. 이번 회담에 앞서 북·미 양국은 싱가포르에서 사전 협의까지 가졌지만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회담에 나섰다.

▲ 지난주 6자회담 현장에서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왼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오른쪽) 외무성 부상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단계 합의에 대한 해석 차이가 관건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2단계 합의 자체에 대한 북·미 양측의 해석이 판이한 데 있다. 작년 10.3 합의는 2.13 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시설 폐쇄(closing)와 대북 긴급 에너지 지원에 이어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disablement)와 핵 신고 제출, 그리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이 동시에 진행되는 기본 구도로 되어 있으며, 이 과업은 그런 대로 충실하게 이행되어 왔다. 현재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진도는 90%에 이르렀고 핵신고서는 6월말에 이미 제출했으며 국제사회의 대북 에너지 지원도 50% 이상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한 이와 같은 상응조치는 엄격하게 해석되지 않으면 자칫 오해와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조치가 진행되는 정도에 비해 국제사회의 상응조치가 지지부진하다는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고, 미국 등 국제사회는 핵시설 불능화나 신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언제고 이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 핵 신고의 검증 문제다. 북한은 당초 10.3 합의에 검증과 관련한 부분이 없으므로 2단계 합의 이행과 관련해 검증 문제가 나올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미국은 검증 원칙에 관한 합의가 없으면 신고의 정확성을 기할 수 없다면서 2단계 조치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이를 추가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 양국의 인식 차이와 시료 채취에 대한 이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타협 가능성도 높지 않았던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열린 것은 무엇보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조급한 입장 때문이었다. 내년 1월 20일까지 한 달여 임기만 남은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핵 문제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를 원했고, 과거 제네바기본합의 당시의 핵시설 동결(freezing) 수준을 이미 넘어선 불능화 조치의 완성을 기대했다.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이 특별한 역할을 해 준다면 북한의 입장 변화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회담 과정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료 채취는 비핵화를 위해 결국 넘어야 할 산

여러 언론에서 보도하듯이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적극적 타결 의지에 비해 여타 국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한국은 대북 경제·에너지협력 실무그룹 회의의 의장국으로서 검증의정서 채택과 대북 에너지 지원이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고 이는 강경한 입장을 가진 일본의 동의는 얻었지만 북한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힐 차관보는 러시아의 역할에 관해 공개 발언함으로써 러시아가 핵 검증의 기술적 측면을 자문함으로써 북한의 태도를 완화해 줄 것을 기대했지만 이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중국은 검증 방법에 관해 우회적 문구를 사용한 합의문 초안을 회람하는 등 열의를 보였지만, 늘 그랬듯이 이는 입장의 변화가 아니라 표현의 절충점을 찾는 수준이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6자회담의 결렬은 2단계 합의 이행 과정에서 검증 방법 문제를 덜컥 합의함으로써 3단계 이후 핵폐기 단계에서의 협상카드를 미리 소진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이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는 부시 행정부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새로 등장할 오바마 차기 정부와 본격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북한의 입장이 시료채취를 과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어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숙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1일 "시료채취와 관련해 열띤 설전들이 오갔지만 결론적으로 북한은 현 시점에서 명문화에 동의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완전한 검증의 수단으로 이 문제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지만, 당장 이를 수용하고 바로 다음 단계에서 이행하자는 미국과는 생각이 다른 것으로 이해된다.

참가국들의 사전 조율을 거쳐 나오는 의장성명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유추할 수 있다. 이번 성명에서 먼저 "참가국들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 핵시설 및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경제·에너지 지원 등 (…) 2단계 조치 이행에서 달성한 긍정적인 진전을 전적으로 인정했다."

또 "참가국들은 제2단계 조치에 관한 10.3 합의에 기술된 대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와 중유 100만 톤 상당의 경제·에너지 제공을 병렬적으로 이행하기로 합의"하고, 동시에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라는 9.19 공동성명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검증 조건에 관한 합의를 위해 이뤄진 진전을 평가했다"고 되어 있다.

일단 10.3 합의의 규정대로 2단계 이행에서 불능화와 경제·에너지 제공이 병행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검증가능한 비핵화' 목표에 따라 검증 조건에 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함으로써 이 문제를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는 점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파국 아닌 협상 지연으로 봐야

미국의 데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11일 "북한이 문서화하려고 하지 않아 회담이 후퇴했기 때문에 '행동 대 행동'에 대해 뭔가를 생각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도 테러지원국 재지정 가능성을 부인한 바 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므로 검증의정서 합의안 도출 실패를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연계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유명환 외교부장관은 12일 "기대하는 속도로 진전되지는 않았지만 북핵 시설 불능화 과정과 그에 앞선 핵 신고 등을 볼 때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것이 6자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지금까지의 북핵 불능화 과정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보긴 아직 이르고, 6자회담의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르다"면서 성급한 비관론이나 6자회담 무용론을 경계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2단계 합의 이행을 위한 6자회담 재개가 조기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북·미의 입장 변화가 없는 가운데 똑같은 문제를 두고 회담이 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년 1월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고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지명되어 인준 절차를 마칠 때까지 공식 재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차기 정부도 이 문제에 관한 정책적 검토를 거칠 것이고 그에 따라 구체적 입장을 정할 것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물론 검증 방법 문제를 핵 폐기 과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유지되고 이를 통해 핵문제 해결 과정이 꼼꼼히 점검될 수 있다면 지연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협상 전술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반발이 확대되고 자칫 문제가 더 꼬일 수 있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한·미의 당국자들이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유보 카드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검증에 대한 방법론적 논란이 현재 진행중인 불능화 조치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보면서 정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문제 발생 직후 11월에 바로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12월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고 위기가 크게 비화된 기억을 반추해 볼 필요도 있다.

문제는 북핵 해결 지연과 남북관계의 경색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작 우리에게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구상'에 따라 핵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고, 지난 봄 이와 더불어 6.15 및 10.4 선언의 이행 등에 대한 북한의 비난 이후 남북관계는 크게 경색되어 왔다.

핵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열어젖히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비추어 최소한 2단계 합의 이행 때까지 남북관계의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미 남북관계가 '감정싸움'까지 동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북한은 '12.1 조치'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남북교류를 엄격히 제한·차단했다. 그 결과 지난 7월의 금강산관광에 이어 이번에 개성관광이 중단되고 관리인원과 사업자가 대폭 축소되었고, 앞으로도 추가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지연과 더불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미흡하다면 불똥이 더 튈 수도 있다. 이미 북한은 우리 정부의 북핵 관련 입장에 관해 비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남북관계 경색과 맞물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개성공단사업 중단이나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을 넘어 심각한 경제적 손실과 안보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의 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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