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우리 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그에 대한 고려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축소 폭이나 감원 인원의 숫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위원회 역할에 대한 이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입장이 달라지거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안 위원장은 인권의 독립적 지위는 행안부의 방침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없다는 게 원칙이라고 다시 강조한다.
"국가인권위의 지위는 헌법정신에 따라 법률로 보장된 입니다. 하위 법령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에요. 축소의 폭이 얼마이든 숫자의 문제가 아니고 기관 독립성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이지요."
▲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프레시안 |
'상위법은 하위법에 우선한다'는 구절이 스치고 지나간다. 고등학교 시절 정치·경제 수업 때 배워서 아직까지 기억할 정도의 기초상식이다. 법질서, 법령에도 질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한것 아닌가? 그렇다면 인권위 위원장으로서 그의 이런 대답은 놀라운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행안부의 조직 축소 지침을 따르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놀랄 일 아닌가?
그는 길게 보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우리나라 인권 발전의 긴 여정에서 보자면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결국 제대로 자리 잡게 되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내비친다. 낙관적인가? 그렇게 가야한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는 인권위 4대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직의 안정화에 노력을 기울이겠노라고 했다. 인권위가 만들어진 지 8년이 되어가는 요즈음 인권위 활동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 10월이면 그는 3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는 '재임도 가능하다'며 웃음을 짓는데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 "국가인권위의 지위는 헌법으로 보장된 것입니다. 하위 법령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프레시안 |
그는 어떤 조직의 의사 결정이 '표결'로 이뤄지는 것에 늘 회의적인 사람이다. 현재 인권위 내 11명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 의결도 가능하면 모두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꾸려간다. 합의로 인권위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인권위의 최종결정인 '권고'의 의미를 더욱 높인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지나쳐서 그렇지 그동안 인권위가 한 일이 결코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독재 시절을 기억하는 시민들로서는 '나라에서 이런 일도 들어 주는구나'하는 놀람마저 가지게 된 적이 많았다. 가령 운동선수들이 매 맞지 않으면서, 공부도 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인권위가 말해 주었을 때, 국민들은 일종의 감동마저 느꼈다. 우리가 정말 국가로부터 돌봄을 받고 있구나 하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인권위로 오는 진정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모든 진정인들이 속시원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권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미진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인력으로 성의 있게 열심히 노력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권고 수용률이 80%에서 90%인데 아주 높은 것이지요."
그는 기본적으로 인권의 업무는 대부분 일상적인 일, 생활 밀착형 업무라고 설명한다. 즉, 국민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일상적 차별을 시정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용모, 나이, 신체적 조건, 장애 등으로 국민이 고통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스포츠 인권도 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인권위 업무에 대해서 극단적인 입장에서 정치적인 해석을 할 여지가 있는 사건은 사실 별로 없다는 게 안위원장의 의견이다. 물론 인권위 업무 중에도 예산이 엄청나게 수반되는 문제라면 정부의 성격에 따라서 수용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경제 우선 정책이라면 인권의 문제가 순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유독 정치적 의미를 해석하려는 이유를 찾자면 김대중 대통령 때 시작됐다는 인권위의 탄생 시기 때문인 것같다." ⓒ프레시안 |
"유독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해석하려는 이유를 찾자면 인권위의 탄생 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권위가 김대중 대통령 때 시작되었다는 것, 그래서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냐 하는 잘못된 오해가 있는 것 같거든요. 인권위는 93년 유엔 결의로 각국에 권고되었고 지속적인 늘어나 현재 인권위원회가 있는 나라가 120개국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인권위는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인권위는 정치적으로 좌도 우도 아닌, 그리고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런 것을 초월한 존재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인권위가 준국제기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것도 중요하고요. 인권위가 국민 정서나 대중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분을 정치적으로 과장해서 띄우려고 하는 쪽도 있고, 또 일부 언론도 그렇고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부의장국이다. 현재 캐나다가 의장국이다. 내년에 새로운 의장국을 선출하게 되는데 한국이 유망 후보란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말이다. 그는 우리 인권위가 국제사회에서 가지는 위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는 점이 크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 이라크에서 인권위를 설립한다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보면 선진국 주변에 서있지만 후발 개발도상국과 정서적으로 친근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후진국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이 서방사회와는 좀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또 중국과 일본이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큰 편입니다."
▲ "한국의 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에서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안 위원장은 이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나서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랬지요. 국제사회 안에서 한국이 부끄럽더라, 왜냐하면 제대로 역할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성장한 나라가 다른 나라 원조에 인색하고 기업은 돈만 벌려고 하고 인종 차별이 심한 사회라면 부끄러운 일이지요. 계속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견제당하고 미움 받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경제 선진국 문턱에 와있습니다. 우리가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큰 부담이 될게 분명합니다."
ICC국가 중에도 등급이 나눠진다. 이 국제협의회는 국가들 간 자격 심사를 하는데 인권위원회를 제대로 지켜내고 있는지 여부를 따진다. 독립성을 지키며 사회 전반에 걸쳐 인권 기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지를 본다는 말이다. 지금 전체 절반인 60개국이 A 등급에 속한다. 한국 점수도 A다.
▲ "한국 같이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나라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이 침해가 된다면 국제사회는 훨씬 더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프레시안 |
요즘 국제사회에서는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차별이 심한 국가의 생산품을 보이콧하는 현상이 드물지 않다. 선진국은 경제적 선진국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식 수준도 같이 선진화되어야한다는 말이다.
이즈음 꼭 나오기 마련인 질문이 있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선진국에서 하고 있다면 무조건 따라하는 게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국가인권위가 93년에 생겼으니 우리가 말하는 선진국의 경우는 그 성격이 같다고 하기가 어렵지요.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유럽 여러 국가들의 경우는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매커니즘이 이미 잘 정비되어 있지요. 그중에서 빠진 부분을 챙기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종합적인 기관을 가진 데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권위 활동이 모범적인 선진 국가는 캐나다를 들 수 있고 호주, 뉴질랜드도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또 인도의 경우도 아주 좋은 예로 들 수 있는데 사회적 권리 문제에 힘을 많이 기울이고 있지요."
안 위원장은 한 템포 쉬었다가 이어나간다. 꼭 짚고 가야한다는 듯이 새겨서 말한다.
"그런데 이런 억지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잘살고 있으니 우리나라에 인권 문제가 없지 않느냐? 인권위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인권이 열악하다는 말이 되는 것 아니냐? 또 유엔에서 인권 문제 운운하는 것은 잘 사는 나라에 딴지거는 것이라는 기가 막히는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정부가 왜 인권이사회에 가입하려고 그토록 애를 썼겠습니까? 대외적인 이미지 문제지요. 정부에 대고 쓴소리도 하는 인권위의 존재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분명히 되는 것이지요."
▲ " 정부에 대고 쓴소리도 하는 인권위의 존재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분명 도움이 된다." ⓒ프레시안 |
지난 8년간 인권위는 업무는 배 이상 늘어났지만 직원의 수는 시작 때와 같다. 우리 사회 인권지수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인권을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 권리가 되었다.
"앞으로 생활 밀착형의 인권 업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취약계층, 노인·아동·청소년 문제, 다문화 사회를 위한 문제 등등, 우리가 귀 기울이고 살펴야할 부분이 만습니다. 사실 우리 인권위가 그전부터 관심을 가져 왔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적었지요. 일상적 문제들은 정치적 문제보다 주목을 덜 받은 게 사실입니다. 국가기관 중에 인권위가 가장 많이 보도된 게 사실이지만요. 조직의 능력도 문제이지만 인원과 예산이 사실 큰문제인데요. 하, 참…"
▲ "국가기관 중에 인권위가 가장 많이 보도된 게 사실이지만 언론은 인권위의 일상적 업무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프레시안 |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주년이 됐건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아직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지 못했다. 그런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국민의 인권 향상에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혹시 인권위원장을 완전히 믿고 맡기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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