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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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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40>
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겨우내 언 나뭇가지에 내려와 온종일 그 나무의 살갗을 쓰다듬으면서도 봄 햇살은 말이 없습니다. 메마를 대로 메마른 나무 둥치에 내려 나무의 살 속으로 들어가려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자 더 많은 친구들을 불러와 기어코 단단한 각질 아래로 스며들어가면서도 봄비는 조용합니다. 나무의 속을 적시고 새순을 키워 껍질 밖으로 밀어내면서도 봄비는 비명소리 한 번 지르지 않습니다.

웅크린 몸을 좀처럼 펴지 못하고 있는 꽃봉오리를 입김으로 조금씩 열어 내면서도 봄바람은 쇳소리를 내는 법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며 눈을 감고 있는 봉오리마다 찾아가 감싸고 다독이고 쓰다듬으며 꽃이 되게 하는 봄 햇살, 봄비, 봄바람은 늘 소리 없이 움직입니다.

혼자서 꽃을 피우는 꽃나무는 없습니다. 바람이 영혼을 불어넣어 주고 햇살이 몸을 데워 주며 빗방울이 실핏줄을 깨워 주고 흙이 흔들리는 몸을 붙잡아 주어 꽃 한 송이가 피는 것입니다. 꽃 한 송이 속에는 그래서 자연의 온갖 숨결이 다 모여 있고 우주의 수 없는 손길이 다 내려와 있습니다. 그걸 꽃이 제일 먼저 알기 때문에 조용할 줄 아는 것입니다. 시끄럽거나 요란하지 않고 모든 꽃이 다소곳할 줄 아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피었다가 저를 꽃으로 있게 해 준 자연의 품으로, 우주의 구극(究極) 속으로 말없이 돌아갈 줄 아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 꽃을 발견할 뿐입니다. 살아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고 하루아침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는 없습니다. 꽃 한 송이를 둘러싼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오랜 세월 그 꽃과 함께 존재하고 일하고 움직이면서 꽃 한 송이를 피우는 것입니다. 억겁의 인연이 그 속에 함께 모여 꽃과 함께 나고 살고 아파하고 기뻐하며 살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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