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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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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141>
그래서 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의 몸속에 우주의 섭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옵니다. 우주의 커다란 계획 속에서 차례차례 옵니다. 꽃다지 보다 민들레가 먼저 피는 법이 없습니다. 민들레는 꽃다지가 들판 가득 자기의 날들을 만드는 것을 본 다음에 제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똑같이 노란빛의 꽃이라 해도 산수유 꽃보다 먼저 피는 개나리는 없습니다. 산수유 꽃이 제일 먼저 벌들을 자기 꽃으로 가득 가득 불러들이는 것을 보고도 개나리는 시샘하여 피지 않습니다. 천천히 자기 때가 되어 피어도 자기를 찾아오는 것들은 또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자연은 다 예비해 놓고 있을 것임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할미꽃이 피지 않았는데 가을 구절초가 먼저 와서 피는 법이 없습니다. 이게 우주의 질서입니다. 철쭉이 진달래보다 결코 먼저 오는 법이 없으며 백목련이 다 지고 난 뒤에라야 그 뜨락에 불두화가 피는 것입니다. 화단마다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도 장미는 팽팽하게 초록 물이 오른 줄기를 담 밑에 걸어 두고 때를 기다립니다. 자기가 피어야 할 철이 언제인가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압니다.

먼저 피었다고 교만한 꽃이 없으며 나중에 핀다고 초조해 하는 꽃이 없습니다. 제가 피어야 할 차례가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인간의 세상에 살면서 제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시간이 언제인가를 꽃과 나무들은 알고 있습니다.

때론 그걸 모르고 일찍 피는 꽃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 차례가 아니었음을 알면 얼른 다시 들어갑니다. 꺼내 놓았던 꽃을 거두어 다시 뿌리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찾아 올 제 때를 기다립니다. 같은 목련나무 안에서도 꽃피는 순서가 있고 같은 모과나무 줄기에서도 순이 돋는 잎차례가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피는데도 다 질서가 있고 차례가 있습니다. 우주만물을 이 땅에 내는 데도 그런 순서와 섭리를 따르는 것을 보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봄도 그렇게 이미 계획해 놓은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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