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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소리 없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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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소리 없이 핍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43>
꽃은 어떻게 필까요.
꽃은 소리 없이 핍니다. 꽃은 고요하게 핍니다. 고요한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핍니다. 꽃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아우성치지 않으면서 핍니다. 자기 자신으로 깊어져 가며 핍니다. 자기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해 언 땅속에서도 깨어 움직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눈감지 않고 뜨거움 속에서도 쉬지 않습니다.

달이 소리 없이 떠올라 광활한 넓이의 어둠을 조금씩 지워나가면서도 외롭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걸 보면서, 꽃도 그 어둠 속에서 자기가 피워야 할 꽃의 자태를 배웠을 겁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지만 집착하지 않아서 꽃 한 송이를 이루었을 겁니다. 무념무상의 그 깊은 고요 속에서 한 송이씩을 얻었을 것입니다. 자아를 향해 올곧게 나가지만 자아에 얽매이지 않고, 무아의 상태에 머무를 줄 아는 동안 한 송이씩 꽃은 피어올랐을 겁니다.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다 말고 꽃 한 송이를 보며 웃음을 짓던 가섭의 심중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꽃 한 송이가 그렇게 무장무애한 마음의 상태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 하나를 그렇게 깨닫고 삶의 경계 경계에서마다 화두 하나씩 깨쳐 나가야 한다는 걸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진흙 속에 살고 진흙에서 출발 하되 진흙이 묻어 있지 않는 새로운 탄생. 우리의 삶도 그런 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풀 한 포기도 그와 똑같이 피어납니다. 그렇게 제 빛깔을 찾아 갑니다. 나무 한 그루도 그렇게 나뭇잎을 내밉니다. 가장 추운 바람과 싸우는 나무의 맨 바깥쪽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되 욕심 부리지 않고, 욕심조차 버리고 나아가다 제 몸 곳곳에서 꽃눈 트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린 잎새를 가지 끝에 내밀며 비로소 겨울을 봄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입니다.

봄도 그렇게 옵니다. 아주 작은 냉이꽃 한 송이나 꽃다지 한 포기도 그렇게 추위와 어둠 속에 그 추위와 어둠이 화두가 되어 제 빛깔의 꽃을 얻습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혹독한 제 운명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말합니다. 발치 끝에 와 발목을 간지르는 어린 풀들을 보며 신호라도 하듯 푸른 잎을 내미는 나무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비로소 봄이 왔다고 말합니다. 그 나뭇가지 위로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는 반가운 목소리가 모여 와 쌓일 때 비로소 봄이라고 말합니다.

추상명사인 봄은 풀과 나무와 꽃과 새라는 구체적인 생명들로 채워졌을 때 추상이라는 딱지를 떼고 우리의 살갗으로 따스하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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