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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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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뿌리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144>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 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 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올해는 겨울 가뭄이 참 오래갑니다. 사람들이 먹을 물도 부족하지만 대지도 목마름으로 쩍쩍 갈라집니다. 그 흙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들도 목이 마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 소식 없는 날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뭄이 깊으면 "튼실한 꽃은커녕 /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메마르고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살기가 힘들고 목은 바짝바짝 탄다고 합니다. 하던 일을 접거나, 보따리를 싸거나 삶의 반경을 절반으로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곧게 아래로 내"립니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깊어져 갑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침착하게 행동하고 진지해집니다. 경박하지 말고 진지해져야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져야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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