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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대견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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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대견한 꽃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46>
피반령 고개를 넘어오다 진달래꽃을 보았습니다. 차창을 열고 진달래꽃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아름답게 확인시키는 것이 봄꽃이라서 봄꽃이 더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산수유꽃은 제밀 먼저 피는 꽃이라서 사랑받습니다. 누구든지 저렇게 먼저 나가는 이가 있어야 봄이 오는 것임을 알려주는 꽃이라 사람들은 박수를 보냅니다. 매화꽃은 천천히 피면서 은은하게 아름답습니다. 겨울을 이기고 난 뒤에 환호하거나 소리치기보다 말없이 웃고 있는 은은한 모습이 미덥습니다.

백목련의 희고 밝고 고아한 모습은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저렇게 고운 사람 하나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람들을 모조리 밖으로 불러내어 꽃보다 더 들뜨게 하는 건 벚꽃입니다. 사람들은 벚꽃을 보고는 박수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저 그 꽃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합니다. 여럿이 몰려다니며 공연히 흥에 겨워 마음이 꽃잎처럼 여기저기 흩날리곤 합니다.

개나리는 그런 꽃에 비하면 화려하거나 고매하지 않습니다. 그저 잿빛으로 겨울을 견뎌온 도심의 구석구석을 환하게 바꾸고 있을 뿐입니다.

(.......)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때문이다

깊은 산 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의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개나리꽃」중에서

개나리꽃은 진달래처럼 산속에서만 피지 않습니다. 백목련처럼 정원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산동네 언덕에도 피고 공장 울타리에도 핍니다.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 속에서도 핍니다. 본래 살던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옮겨 심어도 까다롭게 굴지 않고 자랍니다. 개나리꽃은 세속에서 피는 꽃입니다. 먼지와 티끌과 바람 속에서 피지만 그곳을 환하게 바꾸는 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개나리꽃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꽃 한 송이는 별로 주목받을만한 데가 없지만 모여 피어서 아름다운 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개나리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개나리꽃 줄기 옆에서 까닭 없이 즐거워지는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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