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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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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48ㆍ끝>
목련꽃 꽃잎 가장자리가 흙빛으로 타들어가는 게 보입니다. 벌써 꽃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는 새들이 날아와 꽃술과 흰 꽃잎을 부리로 톡톡 쪼아 먹는 게 보였는데 오늘 저녁에는 꽃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꽃을 보는 나만 '어느새'라고 말하는 것이지 꽃은 희고 고운 꽃봉오리를 피워놓고 그 사이에 많은 걸 겪었습니다.

봄비가 퍼부은 날도 있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황사 몰려온 날도 있었으며, 며칠씩 흐린 날이 이어지기도 했고, 엊그제는 산 너머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꽃샘추위를 견디느라 힘든 밤에도 나는 그저 꽃이 늘 피어 아름답게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비와 바람 황사와 추위 속에서 언제나 환하게 피어 있는 꽃은 없습니다. 그 속에서도 꽃을 지키고 그 꽃을 푸른 잎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혼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겠습니까? 보아주는 이가 있건 없건 꽃은 저 혼자 곱게 피었다 소리 없이 돌아갑니다.

뒤뜰에 백목련 피었다 지는 시간에 창가에 모과나무 꽃순이 파란 손을 펼치며 앙증맞게 자라 오르고 있습니다. 모과꽃도 눈에 뜨일 듯 말듯 그러게 피어날 겁니다. 향기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다가 갈 겁니다. 저도 그렇게 있고 싶습니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모과꽃처럼 살다 갔으면
꽃은 피는데
눈에 뜨일 듯 말 듯

벌은 가끔 오는 데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모과꽃처럼 피다 갔으면

빛깔로 드러내고자
애쓰는 꽃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나무 사이에 섞여서
바람하고나 살아서
있는 듯 없는 듯

---「모과꽃」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다 그렇듯 저도 "눈에 뜨일 듯 말 듯"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드러내고자 / 애쓰는 꽃 아니라 /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있다가 가고 싶습니다.

숲의 모든 나무가 그렇듯 "있는 듯 없는 듯" 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봄이면 이렇게 조촐한 꽃 하나 피워놓고 있다가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소월이 「산유화」에서 이야기한 '저만치' 거리를 두고 서 있고 싶습니다.

지난 일 년 간 이삼일에 한 통씩 여러분들께 엽서를 보냈습니다. 엽서를 여기까지 쓰고 저도 잠시 쉬겠습니다. 지는 꽃잎과 함께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있을까 합니다.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늘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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