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린튼 유진벨 재단 회장은 11일 '2009년 하반기 방북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일반 결핵 환자에 대한 지원보다 다재내성결핵 환자에 대한 치료 지원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유진벨 재단은 1895년 미국에서 한국에 파송된 유진벨 선교사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그의 4대손인 스테판 린튼 박사에 의해 미국과 한국에 설립된 비영리 대북 지원 민간단체다. ⓒ유진벨 재단 |
'슈퍼 결핵'이라고 불리는 다재내성결핵(MDR)은 결핵 박테리아가 여러 약에 대해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 치료가 매우 어려운 병이다. 일반 결핵은 6~8개월간 약을 먹으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내성결핵은 2년 반에서 3년가량 쉼 없이 투약해야 겨우 나을 수 있다.
또한 내성 환자가 병을 옮기면 바로 내성결핵 환자가 발생하는데, 확산될 경우 에이즈 못지않은 위협적인 질병이 될 수 있다. 구(舊) 소련의 경우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못해 이 병을 앓는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었다고 린튼 회장은 설명했다.
유진벨 재단은 3년 전부터 북한의 내성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내성으로 추정되는 환자들의 객담(가래)을 가져와 국립 마산병원 등에서 다양한 약에 대한 내성 검사를 거친 뒤 '환자 맞춤형' 약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 약은 환자의 이름이 기재된 박스에 넣어져 6개월 마다 있는 재단 대표단의 방북길에 직접 제공된다.
▲ 유진벨이 지원하고 있는 평안북도 곽산결핵전문병원에 내성결핵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유진벨의 지원을 받기 위해 모여있다. 유진벨이 이번 방북에서 방문하지 못하는 지역의 환자들이, 유진벨 대표단의 방문 일자에 맞춰 곽산결핵전문병원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유진벨 재단 |
▲ 유진벨을 통해 내성결핵약을 지원받고 있는 환자들이 추가로 객담을 제출하고 내성결핵약을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유진벨 재단 |
유진벨 재단이 시범사업을 끝내고 내성결핵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 것은 지난달 24일부터 2주간 있었던 방북 과정에서 목격한 장면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간 유진벨이 지원한 내성결핵약의 치료 효과가 소문으로 퍼지면서 방문하는 결핵요양소마다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린튼 회장은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었다며 "오랫동안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 수백 명이 자기 가래를 가져가라고 그 추운 날씨에 시골에 있는 요양소까지 찾아 왔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유진벨은 애초 가져간 350명분의 객담통을 첫날 다 써버리고 급히 한국 사무실로 연락해 추가 객담통을 북송, 총 600명분의 객담 샘플을 채취해왔다.
유진벨이 촬영해 온 영상에는 결핵 치료에 실패해 거동조차 하기 힘든 딸을 데리고 온 한 노인이 "의사이면서도 결핵에 걸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딸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는데 내성을 치료해 준는 집단(유진벨)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렵게 찾아왔다"면서 "딸이 이제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린튼 회장은 기자들에게 "북한에 내성 환자가 많다고 절대로 쓰지 마라. 통계가 없어서 몇 명인지 아무도 모른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쪽에도 많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그처럼 많은 환자가 모인 것은 다만 약효가 입에서 입을 타고 급속히 퍼졌기 때문이었을 뿐 환자의 절대 수자가 많아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평양시 동대원구역 결핵요양소에 입원 중인 환자. 이 환자는 2008년 봄부터 내성결핵약을 지원받고 있으며 약 복용 6개월 만에 균배양검사결과 음성으로 전환되었다. 이번에 4번째 치료약을 지원받았으며, 향후 6개월 간의 치료가 끝나면 완치 확정을 받을 수 있다. ⓒ유진벨 재단 |
▲ 후원자와 1:1 결연을 맺고 내성결핵약을 지원받고 있는 환자들. 약 박스에 결연 후원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유진벨 재단 |
문제는 돈이다. 일반 결핵 환자 1명이 완치때까지 약 4만 원 어치의 약을 먹어야 한다면 내성 환자는 3년간 최대 360만 원 어치를 투약해야 하기 때문에 50~100배가량의 돈이 더 든다.
따라서 유진벨이 예산도 커져야 한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채취해 온 600명만을 위해서도 1년에 7억 원 이상이 든다"며 "지금 예산 규모로 볼 때 당장 3억 원 이상을 더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진벨의 대북 지원 예산은 한국 정부의 지원금과 한국 내 민간 모금액, 외국(주로 해외교포와 미국인들) 민간 모금액이 각각 3분의 1 정도씩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제 한국 국민한테 맡겨야 한다"는 린튼 회장의 말로 미뤄 볼 때 정부 지원금을 갑자기 늘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당장은 민간 모금액을 확충하는 길밖에 없는데, 린튼 회장은 "이 문제를 방치하면 앞으로 막대한 통일 비용이 들 수 있다"는 말로 민관의 적극적인 지원 참여를 강조했다.
린튼 회장은 또 "내성 환자는 약을 먹다가 끊으면 오히려 내성이 더 생겨서 진짜 불치병이 되기 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3년을 책임져야 할 막대한 부담을 안게 된다"며 "엔지오 차원의 예산을 넘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원에 대한 관심을 긴급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 각 환자들은 자신이 제출한 객담과 함께 개별 사진 기록을 남겨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는다. ⓒ유진벨 재단 |
비영리 대북 지원 민간단체인 유진벨은 후원자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모든 물품을 후원자의 이름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북한 수혜기관을 매년 방문해 영상물, 사진, 보고서 등을 통해 후원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재단 홈페이지 를 방문하면 그간의 활동 실적과 각종 활동상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문의 전화는 서울 02-336-8461이다.
☞ 2006년 11월 스테판 린튼 회장 <프레시안> 인터뷰 "장벽 뒤가 아니라 강 건너 있는 나라였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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