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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사임, 나이나 건강 때문이라 믿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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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사임, 나이나 건강 때문이라 믿기 어려운 이유 [해외시각]"시대 거스르는 절대주의로 스스로 권위 훼손"
교황 베네딕토 16세(85)가 11일(현지시간) 재위 8년만에 공식적으로 사임을 발표해 전세계가 놀라워 하고 있다.

교황은 종신직으로 생전에 사임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령에 건강이 나빠 직무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 최대 이유지만, 바티칸 안팎에서는 사임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나돌고 있다.

'무오류'라는 절대 권위를 지닌 교황이 생전에 퇴임하면 내부 권력 투쟁이 극심해질 것을 우려해, 교황의 생전 퇴임은 '금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병세가 계속 악화하던 지난 2002년 사임해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는데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한 나는 이곳에 있겠다"면서 사임 압력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2005년 12월 21일 전임 교황들이 쓰지 않던 '카마우로'라는 전통적인 교황 모자를 쓰고 신도들 앞에 등장했다. 이렇게 전통을 중시하던 교황이 바티칸의 금기처럼 여거진 '생전 사임'을 선언했다. ⓒAP=연합

"나이나 건강 문제로 사임한 교황은 없었다"

실제로 교황이 생전에 사퇴한 사례는 억지로 시켜 잠시 교황직에 있다가 곧바로 사임하거나, 권력 투쟁 속에 강제 사임당한 것이어서 베네딕토 16세도 최소한 건강 문제가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도 "바티칸 역사상 나이나 건강 문제로 사임한 교황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베네딕토 16세처럼 생전에 사임한 마지막 사례는 1415년 교황 그레고리 12세로 무려 598년 전일 만큼 드물다. 그때도 여러 명의 교황이 난립한 '서양 교회의 대분열'이라는 역사적 혼란이 배경이었다.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선출 당시부터 '임시직 교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 58세에 즉위해 2005년 선종 때까지 27년을 재위했다. 내부 계파간 투쟁이 심각해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78세의 고령의 나이인 당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추대됐다는 것이다. 당시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선출 나이는 300년 래에 가장 고령이었다.

나치 연루, 비리 문서 유출, 성추행 스캔들 은폐 의혹
선출 과정에서 보듯 권력기반이 확실하지 못한 베네딕토 16세는 재위 중에 안팎에서 끊임없이 교황의 위상을 흔드는 일에 시달렸다.

교황 선출 직후 10세 때 나치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포대에 근무했던 전력이 알려졌고, 지난해 초 교황청 권력과 돈세탁 등 비리문서가 바티칸 외부로 유출되는 '바티리크스(바티칸+위키리크스)' 스캔들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당시 바티칸 소식통들은 문서를 유출한 범인 파올로 가브리엘이 교황의 시중을 드는 집사라는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내부 권력 투쟁과 연계된 '자폭적 사건'이라는 점에 우려를 표시했다.

또 재임 중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추문이 잇따라 불거져 베네딕토 16세는 여러 차례 공개사과하는 등 곤경을 겪었다. 특히 베네딕토 16세는 교계의 추문을 은폐하도록 지시했다가 어쩔 수 없이 사과했다는 의혹에 시달리면서 교황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혹독한 비판을 면치 못했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결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난 2005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 "독선적으로 신앙의 문제를 다루는 가장 혐오스러운 추기경 중 한 명"이라고 비난했던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75) 신부도 교황의 자진 사임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보프 신부는 "가톨릭 교회가 현재 직면한 위기는 종교개혁 때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새 교황은 현대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의심이나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고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면서 보다 개방적인 인물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티칸 주변에서는 이번에도 보수적인 인물이 차기 교황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번에는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남미 등 비유럽 출신의 추기경이 교황이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콘클라베'라는 교황 선출 비밀회의에서 계파간 갈등으로 또다시 결선투표까지 가는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황의 사임 소식과 관련, <파이낸셜타임스>의 국제전문 에디터 데이비드 가드너는 '교황의 얼룩진 유산(The Pope leaves a tainted legacy)'이라는 글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루어 주목된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85세의 교황이 건강 문제로 사임한 취약성은, 완고한 교조주의로 쌓은 그의 명성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베네딕토 16세는 정통 교리를 철저하게 강조했으며, 1962~1965년 바티칸 제2차 공의회에서 결정된 개혁 작업을 중단시키고 복고적인 통치를 했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 '정통' 수호 임무를 맡은 교리신앙성 장관을 맡아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유럽의 예수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공격했다. 또한 사제의 결혼, 여성 사제의 서품, 피임과 낙태 등에 대해 논의조차 금지시켰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교황에 즉위할 때까지 추기경으로서 이런 임무를 25년간 수행했다.

2006년 9월 레겐스부르크대 연설에서 교황은 이슬람을 폭력적이고, 사악하고, 무자비한 종교로 묘사한 비잔틴 황제를 인용했다.

베네딕토 16세가 도덕적 상대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영원한 진리를 강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줬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은 무엇보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추문이 폭로된 일로 기억될 것이다.

"바티칸 권위 지키기 위해 강간과 고문 은폐"

베네딕토 16세가 통치하던 바티칸이 아동 성추행 스캔들에 대한 분노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는 한때 가톨릭의 나라로 불렸던 아일랜드에서 나왔다.

당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엔다 케니 총리는 바티칸이 특권적, 역기능적, 자기도취적 관료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강간과 고문이 바티칸의 권위와 권력과 평판을 지키기 위해 경시되거나 '은폐'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바티칸의 부패가 폭로됐을 때도 비밀스럽고 반동적인 '오푸스 데이'에게 조사를 맡겼다.

베네딕토 16세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전쟁을 벌여왔지만, 가장 심각한 범죄와 신앙과 이성이 다투는 논쟁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신학적으로 올바른 절대주의를 추구했지만, '무늬만 신자'들을 양산한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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