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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감화되지 않은 지성인 누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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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감화되지 않은 지성인 누가 있으랴" [리영희 선생님을 보내며]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켰더니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걸린 '리영희 선생 타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잠시 멍했습니다. 신문에 실린 활짝 웃는 사진을 보고 나서 메일함을 열어보니, 번역서 교정 작업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일본의 문예지 <신초(新潮)> 편집장 야노 유타카 씨로부터 12월 5일 0시 27분 43초에 메일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다시 신문에서 추도 기사를 읽다 보니 공교롭게도 그 시간은 리영희 선생께서 이승에서 마지막 호흡을 정지하려던 순간, 2010년 12월 5일 0시 30분 무렵에 전송된 것이었습니다.

답장을 보내기 전에 야후 재팬에서 '李泳禧(리영희)'를 넣고 검색해 보았습니다. 정연주 선생이 2010년 창비 여름호(통권 148호)에 기고하신 '사상의 은사' <리영희 프리즘> 서평이 일어로 번역된 글이 올라왔습니다. 야노 씨한테 답장을 쓰면서, 맨 마지막에 "오늘 지성·사상계의 거성이 떨어진 날입니다. 지성·사상계 사람들 중에 그에게 감화되지 않은 자 드물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일본 야후 사이트에서 검색된 <리영희 프리즘>을 링크해서 마지막에 음력 날짜를 적어 넣고 메일을 발신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다른 때와는 달리 맨 앞에 '한국'의 라는 수식어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메일함으로 돌아와 <한겨레>에서 일하셨던 어느 선생님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33년간 언론인으로 일하신 그 분의 생신이 공교롭게도 12월 5일이었습니다. 부고를 접한 착잡한 기분과 함께, 그래도 생신 축하드린다는 메일을 보내고 잠시 먹먹해졌습니다. 다시 추도 기사들을 읽다가 12월 5일 부고가 난 선생님과 12월 5일 생신을 맞이한 선생님과 동시에 인연이 있는 미스홍콩 님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한겨레>가 맨 처음 창간되던 시절의 어지럽고 뜨거웠던 시간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썼습니다.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나서 삼각산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김민웅 선생의 리영희 선생 인터뷰를 일어로 읽은 신쵸 편집장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 ⓒ프레시안(김하영)
"사실 나는 내 글이 문학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을 쓰도록 노력해왔다. 그래서 200자 원고지에 혹 같은 낱말이 들어있으면 다른 낱말로 대체하고, 한 문장의 길이가 200자 원고지 세 줄 정도를 넘지 않도록 신경을 써왔다.

문장은 가능하면 짧게 하고, 긴 문장이 나온 뒤에는 짧은 문장이 두세 개쯤 나와서 독자가 한숨 돌릴 수 있도록 구성을 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는 내용은 좀 긴 문장을 쓰고, 핵심을 담고 있는 문장은 짧게 끊어서 쓰곤 했다.

문장이 길면 읽는 사람의 호흡이 가쁘고, 앞뒤 의미의 연결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지."

(2005년 3월 29일 <프레시안>,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와의 인터뷰 "일본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바로가기)중 발췌. <창작과비평> 2010년 여름호 일어판에 실린 문장의 번역은 와타나베 나오키(渡邊直紀)가 했다.)

오늘따라 소나무 숲길은 어두웠고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서너 시간을 숲 속에서 거닐며 1987년 이후를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메일함을 열어보니 그 사이 미스홍콩 님한테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이라고, 그래서 "아프다"고, "한 분의 기일이 또 한 분의 생일인 날, 아프지 말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마음이 몹시도 아픈 그런 하루를 보냈습니다. 편히 쉬세요, 리영희 선생님. 남기고 가신 글들은 두고두고 읽겠습니다.

김정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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