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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아버지' vs '온화한 어머니'…대한민국은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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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아버지' vs '온화한 어머니'…대한민국은 전쟁터! [프레시안 books] 왜 조지 레이코프인가?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의 언어학과 교수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 능력도 인간의 일반 인지 능력의 일부이므로 언어의 본질은 인간의 다양한 인지적 측면을 고려할 때야 비로소 해명 가능하다고 보는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다.

레이코프는 MIT 재학 시절 놈 촘스키의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촘스키의 생성언어학이 언어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언어 연구에서 인지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언어학자로서 레이코프는 스승과 완전히 대립적인 입장에 섰다.

언어학자 레이코프에서 정치 평론가 레이코프로

인지언어학의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는 은유가 단순히 언어의 장식적 사용이나 화용적 효과의 강화와 같은 언어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고 과정의 중요한 기제라는 시각이다. 레이코프는 개념적 은유 이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은유관을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1980/2003년)에서 정립한 이후 <여자와 불, 위험한 것들(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1987년)과 <냉철한 이성을 넘어서(More Than Cool Reason)>(1988년), <몸의 철학(The Philosophy in the Flesh)>(1999년)에서 계속 다듬어 왔다.

특히 레이코프는 이 은유 이론과 프레임 이론을 이용하여 미국인의 정치적 세계관의 본질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 기저에 '가정은 국가'라는 은유가 작용하고 있으며, 가정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 모형('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이 미국 정치에서 대립하는 두 가지 정치적 세계관, 즉 보수주의적 정치관과 진보주의적 정치관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Moral Politics)>(1996/2002년)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2004년), <프레임 전쟁(Thinking Points)>(2007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Whose Freedom)>(2007년), <정치와 마음(The Political Mind)>(2008년) 등의 책에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상대의 프레임은 아예 언급하지도 마라!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 ⓒ삼인
언어학자로서의 레이코프는 은유 이론을 정립한 <삶으로서의 은유>(나익주·노양진 옮김, 박이정 펴냄)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펴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덕택이다.

이 책에서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례를 들면서, 상대방의 프레임을 부정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이 강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의 진보 진영이 잇달아 보수 진영에게 패하고 있는 이유가 미국의 보수는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와 정체성을 적절한 프레임에 넣는 반면 진보는 그러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고 정치와 선거에서 프레임 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는 '세금 인하'를 '세금 구제' 프레임으로, '상속세'를 '사망세' 프레임으로 재구성하여 '세금은 모든 납세자에게 고통을 주는 해로운 무기와 같은 것'이므로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부시를 비롯한 보수파는 자신들은 영웅이며 세금 인하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는 악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였다.

가치를 두고 벌이는 개념 쟁탈전

▲ <프레임 전쟁>(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창비 펴냄). ⓒ창비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나익주 옮김, 창비 펴냄)에서 은유 이론이 미국의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분석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논증의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미국을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위대한 자유 국가로 만든 미국의 진보적인 가치를 은유 이론의 시각에서 다루며, 미국 진보주의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현재 미국의 진보적 가치들(공평성, 정의, 평등, 책임, 안전 등)은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극우들에 의해 그 본질적인 의미가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진보주의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는 자신의 옳은 판단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며, 자신의 진실을 타인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프레임을 찾아야 하고, 이것을 효과적인 논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는 진보주의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할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이러한 가치의 전통적인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유'를 두고 벌이는 개념 전쟁

▲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레이코프는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나익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노예제 철폐, 여성 참정권 인정, 노동자 권리의 신장, 시민적 권리의 확대, 기회의 확대, 환경 보호 운동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 근거한) '자유'의 진보적인 해석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 이 자유는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보수 우익이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하면서 이 개념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이 위기감을 "자유를 잃는 것도 두려운 일지만, '자유' 개념을 잃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라는 짧은 어구로 표현하고 있다.

정치는 뇌와 마음에 있다!

<정치와 마음>에서도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의 은유 이론을 토대로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를 분석하여, 보수주의자들이 정치·사회적 이슈를 프레임에 넣어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계속 장악해 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책에서 레이코프는 정치적 사고가 프레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자신의 생각이 신경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앞의 책보다 더 강력하게 펼친다. 그는 정치가 논쟁, 논증을 통해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경 경로나 회로(neural circuitry or pathways)를 만들고 짠다고 주장한다.

마음에 와 닿고, 매력이 있으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서사(narrative), 은유, 어구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그러한 표현의 이해에 관여하는 우리의 특정한 신경 경로가 계속 활성되어 결국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몸에 고착된 신경 경로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용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이끌고 제약한다.

한 마디로, 사람들의 뇌를 통제하는 정치가가 선거에서 승리한다.

정치평론가 레이코프의 출발점은?

▲ <삶으로서의 은유>(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노양진 옮김, 박이정 펴냄). ⓒ박이정
앞에서 간략히 살펴봤듯이 레이코프는 생성언어학자에서 인지언어학자로 전향하고 나서, 미국의 정치와 미국인의 이념을 분석하는 데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여 상당히 통찰력 있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또 새로운 책을 내놓을 때마다 그는 조금이라도 새로운 주장을 더하고 있다.

그렇지만 <삶으로서의 은유>부터 <정치와 마음>까지 다섯 권의 책은 한 가지 핵심 주장을 공유한다. 그는 미국 정치의 보수적인 세계관과 진보적인 세계관의 밑에는 '국가는 가정'이라는 은유가 깔려 있으며, 미국인의 보수주의적 가치관은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에서 진보주의적 가치관은 '자애로운 부모' 가장 모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도덕, 정치를 말하다>(손대오 옮김, 김영사 펴냄)이다. 정치평론가이자 정치철학자로서의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 사회와 레이코프

대부분의 주요 저서가 번역되어 나왔을 정도로 레이코프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지언어학계는 이제는 고전으로 평가 받는 <삶으로서의 은유> 덕택에 상당히 오래전부터 유명하였다. 또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유 이론과 프레임 이론으로 정치 담론을 분석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 전쟁>,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등으로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치평론가 레이코프의 출발점이었던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몇 년 전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지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도덕과 공정성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이 책이 다시 출간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정치적 세계관은 이상화된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서 나온다

▲ <도덕 정치를 말하다>(조지 레이코프 지음, 손대오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인 은유에 의해서 결정되며, 대립하는 두 가지 정치적 입장(진보와 보수)은 앞에서도 간단히 소개했듯이 '국가는 가정' 은유 (달리 표현하면, '가정으로서의 국가' 은유)와 이상적 가정에 대한 두 가지 모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 은유의 존재는 독립전쟁 유공자 자손 단체의 이름이 '미국 혁명의 딸들'이라거나, 1787년 미국 헌법안에 서명한 제헌의원 55명을 '건국의 아버지들',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을 묘사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 또는 '형제의 부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은유에서는 국가는 가정에, 정부(의 수장)는 부모에, 국민은 자녀에 대응한다.

보수의 정치적 세계관과 진보의 정치적 세계관은 미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적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 의해 정교하게 형성된다.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애로운 부모 가정이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에서는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가족을 보호하고 부양할 책임을 떠맡으며, 자녀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규칙을 부과할 권위를 지닌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보완할 뿐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자기절제와 자립심, 합법적 권위에의 순종이 바로 자녀들이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이 모형에서는 보상과 징벌의 원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순종에 대한 보상과 불순종에 대한 징벌은 도덕적 권위(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자녀는 절제력을 기르고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며 자기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은 감정 이입과 자애로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보살핌, 공정한 분배 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등하게 자녀들을 감정 이입과 사랑으로 보살피며, 이로 인해 자녀들은 행복감을 느끼며, 부모에 대해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성장한 뒤에 자녀들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와 공동체를 보살피게 된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정의하는 데 도덕성에 대한 은유들의 무리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 무리 중에서 어떤 은유들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가에 따라 보수적 사고와 진보적 사고의 특성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안녕은 부', '도덕 회계'(예를 들어, '명예는 자본', '불명예는 부채', '모욕은 피해', '존경은 수익' 등), '도덕성은 자기 이익 추구', '일은 가치 있는 물건', '도덕은 힘', '악은 힘', '도덕적 권위', '도덕적 질서'(즉, '도덕적 질서는 자연적 질서'), '도덕적 본질', '도덕은 깨끗함', '도덕은 건강', '도덕적 감정 이입', '도덕적 양육' 등의 은유가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과 자애로운 부모 가정의 도덕성을 정의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두 가정 모형이 어떤 은유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가는 다르며, 이것이 정치적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에서는 '도덕적 권위'와 '도덕적 힘', '도덕적 질서' 은유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이 가정 모형은 엄격한 도덕적 질서를 명시하는데, 아버지는 본래부터 가정을 이끌기에 적합하며 자녀를 통제할 권위(힘)을 갖는다. 이 권위는 아버지의 자연적인 우위와 성품으로부터 나온다. 이 가정 모형에도 '도덕적 감정 이입'과 '도덕적 양육'이 있지만, 도덕적 힘과 합법적 권위를 계발하는 일차적인 목적에 비해 부차적이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서는 '도덕적 양육(자애로움)'과 '도덕적 자애로움' 은유를 특별히 강조한다. '도덕적 권위'와 '도덕적 질서' 은유는 이 가정 모형에도 존재하지만, 부모의 자애로운 보살핌과 성품에 비해 보조적이다.

얼핏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 축소론자, 감세 옹호자, 사형제 옹호자, 낙태 합법화 반대자, 총기 소유 지지자, 환경 규제 반대자(개발론자), 차별 시정 조치 반대론자, 동성애 반대자들이 주로 보수주의 경향을 가진 사람인 반면, 사회 복지 프로그램 확대론자, 감세 반대자, 사형제 폐지론자, 낙태 합법화 옹호자, 총기 소유 반대자, 환경 규제론자, 차별 시정 조치 옹호자, 동성애 옹호자 등도 쪽은 진보 경향을 가진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코프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의 가치와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의 가치 덕택에 전자의 무리와 후자의 무리가 각각 일관성 있게 묶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을 적용하는 보수주의자에게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사람을 응석받이로 만들고 도덕적으로 약하게 만들며 절제와 의지력을 길러야 할 필요를 제거하므로 도덕적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는 세금을 늘리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오히려 세금을 낮추는 것이 도덕적이다.

자애로운 부모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자애로운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이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암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진보주의자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게 된다. 반면,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에 따르면,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당연히 엄한 벌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당연히 사형의 징벌을 지지한다.

보수주의자는 낙태가 엄격한 아버지 도덕을 위반하기 때문에 반대하며, 진보주의자는 원하지 않는 아기의 출산으로 인해 곤란에 처하게 될 산모가 동정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때문에 낙태를 허용하는 입장을 갖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의 가족을 최대한 보호할 책임이 엄격하고 권위 있는 아버지에게 있다고 보는 보수주의자는 총기 소유권을 지지한다. 총기는 개인적인 보호의 한 형태이며 남성성의 상징으로 도덕적 힘과 도덕적 권위,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이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는 고통스런 육체적 징벌은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라고 보는 자애로운 부모 도덕성에 따라 총기 소유권에 반대한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격렬한 논쟁은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현재 두 진영 사이에 치열한 개념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개념 쟁탈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거의 물리적 대결이나 언어적 감정적 대립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는 쟁점을 살펴보자면, '4대강 개발 사업' ' 고교 평준화의 유지 여부' '기업형 슈퍼마켓 및 대형 할인점 영업 허가 제한' '서울대학교 지역 균형 선발제' '대북 정책(햇볕정책 지속 여부)'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비롯한) 감세 정책' '낙태 금지' '사형제 폐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 문제' '소외 지역 교육 복지 투자 우선 사업(사회 보호 프로그램)' '의료 보험 민영화' '영리법인 병원 허용' '직업 안정성이냐 노동 유연성이냐' 등을 두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을 따르는 보수파에게 한반도의 4대강은 자원이자 인간의 소유물이며, 따라서 이익 추구를 위해 개발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4대강 개발 사업은 이익 추구 과정에서 환경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도덕에서는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으며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대북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주의의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에서 볼 때, 한반도는 갑자기 부모가 계시지 않은 가정이며, 이 가정에 두 형제(남한과 북한)가 살고 있는데, 한 형제(남한)는 충분한 자기절제와 책임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스스로 도덕적으로 권위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 형제(북한)는 절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면 더욱 응석받이가 되어 절제를 기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더욱 엄하게 대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절제를 길러 살아가도록 훈육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의 대북 관계는 이러한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이 단순한 당파성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났거나 이상화했던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레이코프는 지루할 정도로 세세하게 개념 정리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저자의 다른 정치 평론책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술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한쪽 편에 편향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이코프는 환경문제와 빈부 격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인식 부재가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세계관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자신의 바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러한 바람이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경계를 정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지만 대립하는 쟁점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 책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 상태와 관련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적지 않게 눈에 띄는 오역과 생경한 용어, 어법이나 호응 관계가 어색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고 글의 흐름이 자꾸 끊기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으며 다음 판을 인쇄하기 전에 바로잡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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