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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북 冊파도 고기 반찬을!" '달빛요정' 비극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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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親북 冊파도 고기 반찬을!" '달빛요정' 비극 막으려면…

[이권우-김학원-장은수-이홍·下] 책으로 희망을 쏘다

'親북 冊파!'

한 출판인이 '프레시안 books'의 '親북' 꼭지를 염두에 두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새로운 이름으로 제안한 조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저자, 독자…. 그리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 사람들. 흔히 출판사에 일하는 이들 편집자, 영업자, 디자이너 등이 있기에 저자와 독자는 책을 매개로 행복한 만남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 이 저자와 독자를 매개하는 사람들이 불안하다. 애플, 구글과 같은 거대 정보통신 기업은 더 많은 대가를 약속하며 저자에게 콘텐츠를 맡기라고 유혹하고, 독자에게는 값싸고 편리한 전자책을 약속한다. 이에 질세라 대형 서점도 나름의 모바일 단말기를 만들고 콘텐츠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선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이 설 자리는 협소해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출판의 덩치가 크든 작든 불안하다. 덩치가 큰 출판사는 갈수록 쪼그라드는 출판 시장에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은 출판사는 끊임없이 쌓아가는 빚을 감수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틈새시장의 '대박'을 꿈꾼다. 이런 구조를 턱없이 적은 편집자 등의 임금이 뒷받침한다. 이들의 잦은 이직은 그 증거다.

이런 불안이 책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내용과 형식 양쪽에서 책의 질이 떨어진다는 독자의 불만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갖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이런 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親북 冊파의 든든한 보루로서 출판이 바로 서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지난 22호에서 책과 사람들이 빚어내는 상호작용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견을 나눴던 책 동네 '고수' 4인이 나름의 고민과 해법을 털어놓았다. 지난 4일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의 사회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장은수 민음사 대표, 이홍 웅진씽크빅 리더스북 대표가 만나 네 시간에 걸쳐서 얘기를 나눴다.

그들의 '격정 대화'의 주요 내용을 22호에 이어서 소개한다.


책을 통해서 2011년 한국 사회를 전망해보는 4인 좌담은 이미 7일 발행되는 '프레시안 books' 22호에 일부가 실렸습니다. (☞관련 기사 : 2011년 '親북 冊파'가 대한민국을 접수하나?)

▲ 오른쪽부터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 장은수 민음사 대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이홍 웅진씽크빅 리더스북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위기를 자초한 한국 출판

이권우 : 앞에서 '책의 위기'라는 화두를 놓고 여러 가지 쟁점을 점검해 보았다.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일차적인 주체는 출판인일 텐데, 지금 우리의 준비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

김학원 : 현재 이런 위기 상황은 한국의 출판인만 직면한 게 아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가 모두 비슷한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그간 나름대로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경쟁을 하게 될 텐데,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어서 잠을 못 잔다.

이런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서 미국, 유럽, 일본 등 각각의 언어 권 출판인이 준비하는 모습과 한국의 출판인이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사실상 아무 것도 안 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해서 과연 미국, 유럽, 일본 등과 경쟁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 참담한 것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출판계가 보인 모습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출판계의 가장 큰 변화는 일정한 목록과 상당한 자산을 갖춘 출판사들이 상위 그룹을 가시적으로 형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위 그룹의 출판사들과 두 세 명의 편집자들뿐인 소규모 출판사가 새로운 시장 환경, 기술 환경에 대응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실 근본적으로 보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출판의 질적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새로운 기획, 새로운 편집, 새로운 시도와 도전, 그리고 당장의 상업적 성공과는 관계없지만 남다른 문제의식을 담은 문제작들이 경험, 자본, 기술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출판사들이 보여준 눈에 띠는 샘플과 모델들이 있는가?

소형 출판사와 비교했을 때 대형 출판사가 보이는 차별적인 다른 모습은 더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고, 더 많은 마케팅을 보장해 서점의 평대와 저자를 빼앗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줄어드는 출판 시장을 놓고 누가 더 점유율을 높여 우위를 점할 것인가에만 신경을 써온 것이 바로 한국 출판의 모습이었다. 한결같다. 상위 그룹을 형성하는 이른바 '100억대' 이상의 출판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자극, 어떤 문제의식, 어떤 도전을 받았는가? 이해의 확장 이상의 것이 있었는가? 미국 출판의 가장 쓰레기 같은 모습만 답습한 것이다.

유럽은 출판사가 저자, 독자,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단적인 예로, 최근에 독일 출판의 한 줄기를 형성해온 주어캄프(Suhrkamp)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자 프랑크푸르트뿐만 아니라 독일 전체가 난리가 났다. 주어캄프는 독일 지성의 한 상장이자 프랑크푸르트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미국도 독립 출판사일수록 지역에 수백, 수천, 수만 명의 네트워크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렇게 사회에 뿌리를 내린 유럽의 출판사는 세계화, 전자책과 같은 시장 환경, 기술 환경 변화를 놓고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책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지 않은 채, 책 내고 팔기에 급급한 한국의 출판사는 이런 근본적 전환기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출판의 위기 상황은 자초한 면이 크다.

전자책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곳곳에서 3000건 이상의 전자책을 화두로 한 컨퍼런스가 있었다. 이런 컨퍼런스를 통해서 이미 출판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다 나왔다. 이렇게 전 세계 출판계가 공동의 대응을 모색할 때, 한국의 출판사는 철저하게 자기 회사의 이익 확장과 점유율 상승에만 목매온 것이다.

책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출판계는 한국 사회를 탓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좀비의 습격? 출판의 위기!

▲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이권우 : 방금 김학원 대표도 잠깐 언급했듯이 지금 책과 관련한 가장 핫이슈는 전자책이다. 전자책을 놓고는 '열광', '불안', '침묵'이 섞여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장은수 : 사실 한국은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책과 관련한 법적 준비는 비교적 잘한 편이다. 외국에서 놀랄 정도다. 출판사와 저자가 출판권 계약을 할 때 전자책 판권을 동시에 확보한 예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전자책을 도서정가제의 대상으로 한 경우는 외국엔 거의 없기까지 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최근에 한 전자책 서점이 몇몇 중견 출판사에 책 한 종당 50만 원을 줄 터이니 10년 동안 전자책 판매권을 넘기라는 제안을 했다고 들었다. 만약 그 출판사가 책을 500종 정도 보유하고 있다면, 곧바로 현금 수입 2억 5000만 원이 생기는 것이다. 경영이 어려운 출판사에서는 귀가 솔깃할 만한 제안이다.

그런데 이것은 출판사나 저자를 위한 제안은 아니다. 아마 전자책 서점은 그렇게 확보한 전자책 판매권을 이용해 음반 시장에서처럼 저가 판매, 무한 대여, 정액제, 쪼개 팔기 등을 시도하면서 유통 구조를 혼탁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예가 많아지면 출판 시장은 음반 시장처럼 몰락할 것이고, 결국 '달빛요정' 이진원 씨의 경우처럼 대다수 저자들을 죽음에 몰아넣을 것이다.

전자책 시장을 이런 식으로 몰고 가려는 게 바로 (유통) 자본의 요구다. 책을 독서의 대상이 아니라 납품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점에 대한 성찰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 전자책 관련 쟁점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생산-유통-소비 규칙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나중엔 파멸적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 등장 초기에 순진하게 대응하다가, 현재 미국보다 심한 가격 경쟁에 출판계 전체가 노출되면서 도서 시장 전체가 왜곡되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유통 자본은 전자책에서도 그런 식의 구조를 도입하려 할 게 뻔하다. 이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없다면 출판계는 인터넷 서점 등장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전자책의 확산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국에 서점이 약 2만 군데가 있었다. 지금은 약 2000군데 수준이다. 서점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데 20년이 걸렸다. 아까 김학원 대표가 유럽 출판사 얘기를 했는데, 유럽이나 미국은 서점 역시 지역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미국 제2의 서점 체인인 보더스 그룹이 지불 유예를 선언했듯이, 서적 판매량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서점들은 지역 공동체 속에 뿌리박고 오랫동안 문화적 소통의 중심 공간으로 존재해 왔기에 지역 주민들의 애정이 대단하다. 거의 문 닫을 뻔한 서점을 지역 공동체가 합심해서 살려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한국의 서점들은 지역의 문화 중심이라기보다는 '책 가게'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 서점 매출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참고서의 20%만 전자책으로 유통되더라도, 서점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종이)책을 판매할 공간 자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책의 전자화를 피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 관련 단체들은 전자책 시대의 출판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고민하기보다는 "전자책 시대가 열렸으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함께 모여 전자책을 만들자"라는 수준의 대응에 머물러 있다.

전자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궁극적으로 각 출판사에서 해결할 문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판사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전자책을 만들자는 식의 논의가 아니라 어떻게 전자책을 유통시키는 것이 저자, 독자, 출판사에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까와 같은 성찰이다.

▲ 장은수 민음사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김학원 : 전 세계에서 전자책이 논의가 되면서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세대가 바로 스마트폰 등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디지털 콘텐츠로 책을 주로 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출판협회(IPA)가 1990년대 이후 세대의 75%가 10년 안에 종이책에서 전자책의 독자(e-reader)로 전환하리라고 전망한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이런 전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1990년대 이후 세대가 전자책으로 무엇을 읽고, 그에 따라서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앞으로 10년간 전 세계 출판계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출판인이 이 세대와 어떻게 소통할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1990년대 세대를 상대로 스펙(specification) 쌓기를 핑계로 고전 읽기 등을 강요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식의 독서에 대해서 1990년대 세대가 피로감 혹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다. 텍스트도 어렵고, 커리큘럼·프로그램도 부실하기 짝이 없으니까.

더 늦기 전에 한국의 출판인이 1990년대 세대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독서 문화를 기획하는 데 나서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독서를 통해서 곱씹을 수 있는 텍스트를 저자와 함께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그런 텍스트를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공급해야 한다.

또 그들이 처한 새로운 매체 환경에 독서를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1990년대 세대는 굳이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인터넷 강의 등에 아주 익숙한 세대다. 이 세대에 걸맞는 효과적인 전달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세대를 놓치면 한국 출판의 미래는 어둡다.

1990년대 세대와 함께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세대는 바로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지금의 20대들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1970~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독서 1세대'의 아이들인 이들은 어린이, 청소년 때부터 부모가 권한 책을 읽고 자란 '독서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생들과 마찬가지로 이 20대를 어떻게 독서 세대로 안착시키는지에 따라서 향후 한국 사회의 독서 인구가 재생산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당연히 전자책이 출판이나 책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줄지도 바로 이들이 책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와 깊은 관계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10~20대에 책의 미래가 달렸다.

이홍 : 장은수, 김학원 두 대표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몇 가지 의견을 추가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콘텐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의 확보가 절실하다. 출판사가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해도 종이책을 만들고 파는 인력 외는 사람이 없다.

부지런한 몇몇 에디터들의 얼리어답터 정신만으로는 안 된다. 기존 에디터십 이상의 복합적인 프로듀싱 능력을 요구받고 있지만 교육을 하는 곳도 없고 개념도 없다. 매체의 특성과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다 기술적 종속이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에디터들 사이에서 자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시장에서 돈만 벌자고 할 게 아니라 인력 구조를 바꾸든지 제대로 교육을 시키든지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책이라는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대표적인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니 그대로 인용하여 말하겠다. 머뭇거림 없이 출판계가 상황을 장악하고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과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첫째는 유통의 장악이다. 재고를 쌓고 디스플레이를 해야 하는 오프라인 환경은 이미 어쩔 수 없게 되었지만 전자책마저 대형 유통사에게 기득권을 넘겨준다면 장은수 대표가 지적했듯이 이후에는 수습이 불가능하다. 제작과 유통이 분리되지 않고 일원화되는 스마트 과정은 필수고 다수의 소비자를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서점은 절대 유리한 위치다.

둘째는 저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종이책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관성에 의한 관계를 고집한다면 저자들이 떠날 것이다. 지금의 저자는 옛날과 다르다. 책의 제작이나 유통 구조를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매체 환경의 변화에도 영리하게 사고한다. 단순히 텍스트를 집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출판사는 저자에게 가는 인세 10% 정도가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저자는 출판사, 유통사가 자기한테 돌아가야 할 몫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고 믿는다. 지금 아마존이나 애플은 저자에게 65~70%의 인세를 약속하고 있다. 저자와 직거래를 해야 가능한 구조다. 고유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상황에서, 저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지 않으면 그들이 남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세 번째는 그러므로 저자-출판사-독자가 종횡으로 연결되는 실질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책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아니라 지식과 가치가 교류하는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출판사가 가진 거의 유일한 장점이지만 지금까지 출판사들은 이걸 지하실에 처박아두고 있었다. 지금처럼 모든 네트워크를 출판사가 주도하는 경직된 방식으로는 저자의 욕구도, 독자의 욕구도 만족할 수 없다.

오해를 촉발할 위험한 발언이 될지 모르겠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출판계 전체의 구조 조정도 생각해 봐야 한다. 앞서 말한 내용들은 솔직히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구사할 수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게 현실이다. 개성과 전문성을 무기로 하는 강소 출판사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실은 약소 출판사의 난립이다. 이것 또한 현실이다. 지금의 환경은 한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분발한다고 해서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 출판사의 독립성과 지위는 유지하면서 집단화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앞으로 10년은 규모화를 전제로 한 구조 조정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 조정이야말로 전자책과 같은 매체 환경의 변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항할 조건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권우 : 개인적으로는 전자책은 좀비 같다. 10년 주기로 죽었다 살아나는…. (웃음) 이번에도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홍 : 이번에는 다르다. 완전히 부활한 건지도 모른다. (웃음)

▲ 이홍 웅진씽크빅 리더스북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출판사 초임, 불편한 진실

이권우 : 얘기를 듣고 보니, 자연스럽게 출판계의 인력 문제로 이어진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새해에는 어떻게 출판계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까?

김학원 : 재작년 하반기에 경영에 복귀해서 올해까지 총 18명을 선발했다. 휴머니스트를 창업하고 나서, 지난 9년간 선발한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을 1년간 선발했다. 그 과정에서 5~7년차 편집자 60~70명을 만났다. 사실상 지금 출판사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 출판계의 허리 같은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들과 만나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면서 한국 출판계의 심각한 문제를 확인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의 부재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국내 역사 관련 책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역사 전문 편집자가 없다. 현재 역사 전문 필자가 적게는 40~50명, 잠재적으로는 약 100명 정도가 있는 상황인데도 이렇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 출판의 독자 기반이 꾸준히 형성되어 온 반면 사이언스북스, 승산 등과 같은 몇몇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과학 전문 편집자 층이 그 수요와 필요성에 비해 너무도 취약하다. 단행본 출판계 전체에서 채 10명도 안 된다. 출판사들이 장기적인 전략과 투자보다 당장 책 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역사, 과학과 같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에서 전문 편집자가 없는 것이다.

'편집자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해' 이런 요구 속에서 아무 것이나 다 하는 편집자가 너무나 많았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비슷한 책의 양산이다. 같은 분야의 책이 대개는 비슷한 내용이라는 걸 독자들이 느낄 것이다. 종수는 많은데 정작 읽을 책은 별로 없다. 이런 전문성의 부재를 해결하는 것, 출판계의 큰 과제다.

두 번째 심각한 문제는 실무를 담당하는 핵심 인력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5~7년차, 7~12년차가 오히려 사장보다 더 현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렇게 된 데는 경영자의 책임이 크다. 출판사에서 발행인과 편집자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발행인 즉, 출판사의 최고 경영자가 편집자들과의 소통을 외면하면서 그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매출이 늘고, 규모가 커진 출판사 사장들이 공통적으로 경제·경영서를 탐독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출판사다운, 지식을 다루는 문화 기업의 모델을 만들기보다는, 국내 출판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세계적 기업의 경영 모델을 고작 직원 수십 명 되는 출판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웃음)

몇몇 출판사에서 성과주의를 도입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 결과는 어땠나? 지난 10년간 편집자가 기능인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에게 책과 출판의 비전을 이야기하게 할 것인가? 앞으로 한국의 출판사가 그들을 차세대 출판인다운 주체로 다시 자리매김하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장 고쳐야 하는 게 바로 대졸 초임이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해서 출판사에서 일하겠다고 하는 이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 이것은 출판사 규모, 매출 액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다. 최소한 출판사라고 문패를 걸려면 대졸 초임은 얼마 이상은 줘야 한다, 이런 합의가 있어야 한다.

큰 출판사든, 작은 출판사든 지금은 대졸 초임이 고작 1800~2200만 원 정도다. 외환 위기 이후 10년간 아무도 대졸 초임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산업군의 대졸 초임과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액수가 고착화된 것이다. 성과에 따른 연봉제 하에서 스태프와 후배들을 파트너로 안고 가야하는 편집장들이 자기 연봉만 신경 쓰면서 이런 상황을 부추긴 측면도 크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출판계가 꼭 해결해야 한국 출판의 미래가 있다.

생산-소비 공동체의 복원

ⓒ프레시안(손문상)
장은수 : 최근 한국 출판의 모델 중 하나인 <세계의문학>,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등과 같은 문예지 모델을 연구하는 중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에 해당하는 한국의 문예지 중심 문학 출판이 미래 출판의 중요한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개 고등학교 때쯤 문예지를 처음으로 접한다. 그들은 문예지를 읽으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을 늘려나가고 스스로 저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택하는 경우도 많고, 수업을 들으면서 문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거나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모방하면서 스스로 시나 소설이나 비평 등을 써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일정 수준의 작품을 쓰게 되면 문예지나 문학상에 작품을 보내서 작가로서 세상에 나온다. 또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문학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은 독자가 되고,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편집자가 되기도 한다. 또 편집자로 있다가 작가가 되는 경우도 많고, 작가이면서 직업을 편집자로 하는 경우도 많다.

요컨대 문예지는 작가, 독자, 편집자를 한 곳에 모아주는 생산-소비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서점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 탓인지 출판은 서점이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마케팅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유통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이런 상황에선 출판을 둘러싼 생산-소비 공동체를 만드는 게 출판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하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편집자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가나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먼저 좋은 독자이기도 하다. 문예지 모델을 통해 생겨난 한국 문학 편집자는 대부분 그 이전에 한국 문학의 작가이기도 하고 독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전에 창작 동인과 같은 생산 공동체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민음북클럽과 같은 독자 공동체에서 활약한다.

좋은 독자였기 때문에 직접 책을 쓰는 작가도, 책을 만드는 편집자도, 작가나 편집자가 된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독자도 될 수 있다. 이런 생산-소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출판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한국 문학 편집자가 한국 문학의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의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얻으려면, 최소한 3년 정도는 한국에서 나온 모든 작품을 읽고 머릿속에서 정리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입사 전에 한국 문학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경우에도 그렇다. 독자로 읽기와 편집자로 읽기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읽고 훈련을 받아야 그 편집자가 작가 공동체에서 선생님과 직원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일원이 될 수 있다.

영화 회사에서는 영화 마니아를 뽑고, 게임 회사에서는 게임 마니아를 뽑는다. 그런데 출판은 학교를 비롯한 여기저기서 책 읽기를 시킨다는 것을 핑계로 생산-소비 공동체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다. 앞으로 미래의 독자고, 필자고 또 동료가 될 생산-소비 공동체를 형성하고, 또 그 안에서 출판에 남다른 열정과 비전을 가진 이들을 받아들여서 어떻게 성장시킬지를 한국 출판계가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최근에 편집자들이 책의 육체에 대한 이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교열은 고사하고 교정 상태가 엉망인 책들도 많은 데다 오른쪽 페이지를 공백으로 두는 것과 같은 꼭 챙겨야 할 책의 규칙들조차도 잘 지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오류가 책을 통해 더욱더 확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정말로 반성해야 한다.

기획과 편집의 분리, 성과주의 시스템 등과 같은 흐름 속에서 책의 육체에 대한 관심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의 고급화(이것이 편집이다!)는 오직 책의 견고한 육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책의 육체성에 대한 무시는 책으로써 전달되는 정보와 인터넷이나 신문으로써 전달되는 정보 사이의 차이를 없앨 것이고, 그 결과는 책의 소멸이다. 편집자가 대체 가능한 인력, 기능인으로 전락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은 이런 관행 탓도 크다.

ⓒ프레시안(손문상)

신구 세대의 단절, 그 해법은?

이홍 : 단기 속성 모델로 출판사가 성장하던 시기는 끝났다. 큰 출판사든, 작은 출판사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고급 인력의 확보가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대로 된 성과 측정과 그에 따른 파격적인 보상 지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과주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단순한 결과주의로 전락해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 출판사들은 성과주의나 보상 체계를 무슨 역병처럼 불순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책을 만드는 일이 신성하다고 월급이나 보상 따지지 말고 열심히 일해라는 것은 난센스다. 지금 출판계로 들어오는 후배들은 DNA 자체가 이전과 많이 다르다. 그들에게는 선명한 미션과 비전이 더 중요하다.

과연 선배들의 DNA로 그런 후배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성장 과정, 대학 생활 등 그들은 역사 자체가 다르다. 당연히 책을 읽고, 사회를 보는 관점도 많이 다르다. 그런데 선배들은 여전히 88년도식 자질이나 덕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방금 장은수 대표가 요즘 편집자들이 책의 육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했다. 책을 바라보는 관점 혹은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낸 굴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이 종이책이 아닌 복합적인 콘텐츠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변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로운 DNA를 가진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출판의 미래를 염두에 둘 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은수 : 최근에 회사 후배들과 두 가지 스터디를 한다. 하나는 마케팅 스터디다. 하도 마케팅을 강조하니까 요즘 직원들은 마케팅은 잘 알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것도 약하다. (웃음) 자기가 만든 책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만들어야 팔리는가 등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이슈 스터디이다. 역시 1980년대와 같이 정치·사회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홍 대표가 지적한 대로, 1980년대와 같은 그런 식의 사고 구조 혹은 DNA를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통째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게 고민하고 성찰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장기적으로 편집자를 키워야 한다. 삼성이 자질이 좋은 사람을 뽑기 때문에 강할까?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지 않는다. 삼성 안에 직원을 삼성에 필요한 인력으로 키우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강하다고 생각한다. 능력이 닿는 출판사는 이런 시스템을 자체로 갖추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출판사는 함께 모여 이런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책은 저탄소 녹색 성장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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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 : 화제를 좀 바꿔서 정부의 출판 정책을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의 출판 정책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김학원 : 한 외국 언론의 기사를 봤더니, 대통령이 그 나라 출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15%라고 한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자면, 대통령이 책에 관심을 가지면 아주 많은 공무원이 따라서 책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통령은 정치적 노선을 떠나서 최악이다.

이전 대통령은 어쨌든 베스트셀러도 만들어내지 않았었나. 또 대통령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책이라는 사실이 끊임없이 환기된 측면도 있었다. 책을 인용하는 일도 빈번했고.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명백한 후퇴다. 그나마 이 정부의 유일한 기여가 2008년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를 선정한 일이니까.

이홍 : 리더스북은 사실 큰 도움을 받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휴가 때 <넛지>를 읽고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을 했다는 기사 덕에 곧바로 단체 주문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고 주춤하던 판매 사이클이 완전히 우상향되었었다. 대통령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게 공무원 사회를 움직이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넛지> 생각만 하면 대통령 비판하기가 미안해진다.

장은수 :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대화 부족이다. 이전 정부에선 출판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채널이 존재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 정부에서는 그런 대화 채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 이 정부와 이전 정부의 가장 큰 차이는 시민들이나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제도적 고민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독서이력제와 같은 엄청난 제도를 도입했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알아서 읽고 보고하라는 것일 뿐, 체계적으로 독서 프로그램을 짜서 실행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독서는 학생들을 성찰적인 이성을 갖춘 성숙한 시민으로 키우는 교육 과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이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없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반면에 'CEO 정부'라서 그런지 산업의 요구에는 발 빠르게 대응한다. 전자 교과서 도입 문제 같은 게 한 예이다. 미국에서는 전자 교과서를 도입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오랫동안 진행 중이다. 인터넷으로 얻은 분산적인 지식이 아이들을 산만하게 만들고 깊이 있는 사고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등…….

이건 아이들의 책가방을 가볍게 만드는 수준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녹색 성장의 한 지표를 만드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쪽 용어를 빌리자면 후대를 지혜롭게 만드는 게 '경쟁력'을 가장 높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전자 교과서로 공부해서 혹시나 후대가 더 멍청해진다면 이런 건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따져보고 또 따져본 후에 신중하게 추진할 과제가 관련 산업의 경박한 요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김학원 : 전자 교과서에 대한 연구는 이미 20년 전에 끝났다. 미국에서 10년, 20년 단위로 비교 연구를 해본 끝에 전자책과 종이책을 겸비한 환경이 가장 탁월한 교육 효과를 발휘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미국의 교과서 출판사 피어슨에서는 이미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교과서를 개발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진국의 축적된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KT는 '책가방을 없애겠다' 유의 빌 게이츠와 같은 디지털 전도사의 말만 되뇌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생각 없이 그런 산업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이런 상황 자체가 출판에 강요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이홍 : 난 새로운 이슈나 신기발랄한 묘안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제기된 문제들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해결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현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 정부부터 출판과 관련해서 누적되어온 문제들이 많았다. 굳이 새로운 일을 안 하더라도 누적된 문제만 해결해도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부산 시립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편성 예산중에서 최하위가 도서 구매비라는 말을 들었다. 책이 중심인 도서관에서 책이 예산의 꼴찌다.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도서 보유 비율은 아프리카 대학 수준이다.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내건 도서관 건립 공약이 실천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도서관 강산'이 되었을 것이다. 출판계가 오래 전부터 요구하고 있는 저작권법 개정은 언제 하려는지…. 이게 늦어지면 전송권 문제에 심각한 혼란이 오게 된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언젠가 정부에서 내놓은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그 보고서를 보면,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에 장애가 되는 대표적인 탄소 배출 산업으로 '출판'이 올라와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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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서, 출판의 꽃!

이권우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보자. 지난 10년간 자기 계발서, 실용서가 굉장한 붐을 이뤘다. 그런데 2010년에는 이런 자기 계발서, 실용서가 주춤한 듯이 보인다. 이홍 대표는 어떻게 보는가?

이홍 : 독자들은 장르에 따라서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기 관심사에 따라서 책을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자기 계발서, 실용서가 죽었다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장르가 고착화되어 있는 아니라 서로 크로스오버 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책들이 실용서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서 시장은 세상의 흐름에 아주 민감하다. 책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기보다는, 불쑥불쑥 나타나는 흐름에 어떻게 편승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그런 흐름이라는 게 너무 뻔해 잘 보이는 것 같지만 보이는 것과 숨어 있는 욕구 사이의 간격은 만만치 않게 넓기도 하다. 기획도, 편집도 정말 어려운 분야다.

실용서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심한 부침이다. 어느 한 쪽이 쪼그라들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띄곤 한다. 암이나 파스요법 같은 건강서들은 부진하지만 뷰티, 요가, 라이프 관련 책은 인기가 있다. 암에 안 걸렸으면 좋겠어, 이런 단순한 욕구만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좋은 피부를 어떻게 유지할까, 생활공간을 어떻게 멋있게 꾸밀까 이런 고민을 한다. 독자의 세대 교체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실용서의 소멸-부흥과 같은 일회적인 분석의 접근은 부질없다. 대중의 욕구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시장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서 수요는 꾸준히 있을 것이다. 더구나 맞춤법은 틀리되 아이디어 하나는 귀신같이 내놓는 잘 훈련된 편집자들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난다. (웃음)

2011년에도 부침은 있겠지만, 또 다른 열쇳말이 대세를 이루는 실용서 시장은 계속될 것이다.

이권우 : 2011년의 트렌드는 뭐가 될까? 열쇳말을 제시한다면?

이홍 : 그걸 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웃음) 최근 재테크 책들이 부진했는데 부동산의 침체가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독자들이 그동안 이런 책들에 속았다는 반성도 있고, 주식은 역시 개미들이 이길 수 없다는 비관론도 있고 그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주식 시장이 2000을 오래도록 지지한다면 선진국형 금융 투자나 종잣돈 관리와 연관된 책이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쪽은 쳐다보지 않는 게 건강에 좋다.

장은수 : 데이터만 놓고 봐도 실용서 시장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출판 시장 전체의 매출에서 실용서 시장은 늘 같은 비율을 유지한다. 아까 이홍 대표가 지적했듯이 이 분야 책이 안 나가면 저 분야 책이 나가는 식으로 시장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다만 매년 실용서 쪽에서 슈퍼 베스트셀러가 나왔는데, 2010년에는 그렇게 눈에 띈 책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실용서가 쇠퇴한 게 아닐까, 이런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또 2010년에는 트렌드가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으로 이동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고.

▲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 ⓒ프레시안(손문상)

이권우 : 그렇게 인문·사회과학 책이 나가면 실용서 시장을 대체하는 효과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

이홍 :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경제·경영서나 자기 계발서만 놓고 보면 독자의 다수가 김학원 대표가 '독서 1세대'라고 이름을 붙였던 30, 40대다. 최근 이들이 경제·경영서나 자기 계발서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새로운 저자, 뾰족한 담론이 안 나오고 있고, 자기 복제 과정만 반복하고 있다.

오리지널 경제·경영서를 개발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한국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이고 경제든 경영이든 자체 담론이나 이론 체계는 극히 빈약하다. 다수의 경제·경영 분야 교수나 전문가를 만나봤는데, 다들 선뜻 책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세상과 대화하는 책 쓰기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외국 책에 실린 내용을 짜깁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렵게 쓴 책들도 독자들의 외면이 서럽기만 하다. 오피니언 지식인들이 1차 독자인데 이들의 눈높이는 쉽지 않다.

경제·경영서를 펴내는 출판사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독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저자의 수는 절대부족이다. 장하준 교수나 시골 의사(박경철)가 모든 출판사에 원고를 줄 수는 없지 않나. (웃음) 외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경쟁이 심화되고, 그 과정에서 선인세 뻥튀기와 같은 일도 발생한다.

어지간한 경제·경영 분야 외서의 경우에는 1만~2만 달러는 내밀지도 못한다. 고작 한두 쪽짜리 제안서를 보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선인세로 걸어야 하는 건 현실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문제는 이렇게 선보인 책들마저 2007~2008년의 금융 위기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영미 권에서는 20세기 초반의 대공황을 분석하는 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생상품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자본 시장과 그 구조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기는커녕 대공황 공포증에서 진땀만 흘린 꼴이다. 행동경제학과 같은 새로운 이슈들이 던져지기도 했지만 이른바 담론을 생산하는 대가들의 신작이 주춤한 상황이고 그래서 독자들의 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시간은 좀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김학원 : 사실 본격적인 실용서라고 하면 취미, 여행, 요리 이런 분야를 다루는 것인데, 선진국에서는 이 분야의 책들이 굉장히 팽창하고 있다. 또 이런 분야를 다루는 책이야말로 책과 커뮤니티가 결합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요리, 낚시, 여행 등의 분야를 다루는 실용서는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반향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실용서 편집을 보면 그 나라 출판의 수준이 보인다.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린 깊이 있는 편집이 실용서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한국에서도 사회에 뿌리를 내린 한국의 실용서 출판사들이 나와야 한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까지 실용서를 통해서 그 사회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실용서가 일종의 패션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올해의 트렌드, 내년의 트렌드…. 이런 식으로 트렌드만 좇다가는 사회에 뿌리를 내린 깊이 있는 실용서가 등장할 수 없다. 지금 상당수 30~40대가 라이프스타일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실용서가 이른 욕망을 포착하고 그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books'를 응원한다!

이권우 : '프레시안 books'가 제대로 된 서평 매체를 표방하며 시작한 지 1월이면 만 6개월이 된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많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프레시안 books의 그간의 모습을 보면서 조언할 게 있다면 한 마디씩 부탁한다.

김학원 : 프레시안 books는 시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탄생했다. 리뷰 문화에 대한 잠재적 요구와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가시적으로는 대다수의 방송, 언론 등 대중 매체들이 오히려 책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정보화 시대에서 지식기반 사회로 이동하고 오피니언 리더 층이 소수가 아닌 광범위한 중산층을 형성해서 시민사회의 기반과 주체들을 두텁게 해야 하는 시기에 독서 문화와 리뷰 문화의 깊이와 넓이는 사회적 담론 형성의 두터운 기반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프레시안 books의 탄생은 반갑고 주목할 만 했다. '프리뷰'의 성격이 강한 신간 리뷰만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주제나 관련 책들을 묶어 담론의 폭넓은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시대적 흐름에 걸맞게 단순한 리뷰 매체가 아니라 이를 통한 북 커뮤니티로 확장할 수 있도록 독자 지형에서 성장한 리뷰어들을 생동감 있게 조직해갔으면 좋겠다. 늦게나마 프레시안 books의 탄생과 빠른 성장에 박수를 보낸다. 휴머니스트도 적극적으로 함께 하겠다.

ⓒ프레시안(손문상)
장은수 : 책과 온라인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은 출판계의 오랜 과제였다. '프레시안 Books'가 처음 생겨났을 때 이제야 비로소 책과 온라인의 만남이 새로운 장을 열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누리꾼 독자들의 참여가 조금 더 활발했으면 하는 점은 있지만 지금까지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

이홍 : 올바른 서평의 핵심은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제대로 된 서평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은 짬짜미 때문이다. 서로 밀어주고 실어주고 뭐 그런 관계 속에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 어렵다. 출판사가 광고주인데 광고주를 섭섭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시안 books는 그런 한계의 틀에 갇히지 말았으면 한다. (출판사 보기에) 좋은 서평을 실어주기보다는 제대로 된 서평을 올리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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