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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예방법…日은 100년 전부터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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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예방법…日은 100년 전부터 알았다! [박상표 칼럼] 역사와 과학의 눈으로 보는 구제역 ②
일본의 구제역 번역어 : 유행성 아구창에서 구제역까지

서양에서 형성된 '구제역'이라는 질병명과 그 개념은 난학(蘭學)을 통해 일본에 소개되었다.

카시와바라 가쿠지(柏原学而, 본명 柏原孝章, 1835~1910년)는 1874년(메이지 7년) 3월에 네덜란드 학자 뉴만(Neumann P.=布魯巴紐満)의 <가축의서(家畜医書)>(제6판, 1866년)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우병신서(牛病新書)>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처음에 그가 선택한 번역어는 '아구창(鵞口瘡)'이다. 구제역의 학명인 'Aphthis Contagiosa'를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구제역을 의미하는 네덜란드어 'Mond-en-klauwzeer'를 번역한 것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아마 학명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아구창(鵞口瘡)'이라는 번역어로 구제역을 일본에 소개하기 직전부터 서양 수의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1873년 도쿄에 수의학교가 전문학교로 설립되었으며, 1873년 3월에 군대에서 수의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육군성 병학료에 마의학사가 설치되었다.

카시와바라 가쿠지는 1854년 테키주쿠(適塾)에 들어가 네덜란드 어와 서양 의학을 배웠다. 이때 아구창이라는 번역어 병명을 알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아구창이라는 병명은 에도 시대부터 난학의(蘭學醫)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키주쿠는 의사이자 난학자(蘭學者)였던 오가타 코안(緒方洪庵, 1810~1863년)이 오사카에 설립한 사립 학교로 현재 오사카 대학의 전신이다. 일본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후쿠자와 유키치, 오무라 마수지로, 다케다 아야사부로 등이 데키주쿠 출신이다.

1864년엔 에도막부의 15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시의(侍醫)가 되었으며, 1869년 순푸병원(駿府病院)의 이등의사로 재직하다가 1871년 자택에 개원을 하였다. 그는 <유행성우병예방설(流行牛病予防説)>(1873년), <이과제강(耳科提綱)>(1876년), <라사고화학신서(羅斯古化学新書)>(1876~1877년), <병자수지(病者須知)>(1880년) 등의 저서를 남겼다.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는 구제역을 아구창각열(鵞口瘡脚熱, ガコウソ), 소의 혀병(牛の舌病, ヘタギピヨン), 전염성 아구창(伝染性 鵞口瘡), 유행성 아구창(流行性 鵞口瘡), 구족병(口足病) 등으로 불렀다.

▲ 농상무성 고시 제18호 가축류 전염병 예방 수칙 제5 전염성 아구창(1886년 9월 15일). ⓒ프레시안
1886년에 가축류 전염병 예방 규칙이 제정되었는데, 우역, 탄저역, 비저 및 피저, 전염성 흉막폐렴, 전염성 아구창, 양두가 가축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법률 제76호로 수의 면허 규칙이 공포되었으며, 9월 15일자 농상무성 고시 제18호 가축류 전염병 예방수칙을 보면 '제5 전염성 아구창' 항목에 "학어 : Aphthis Contagiosa, 영어 : Foot and Mouth Disease, 불어 : Stomatite Aphtheuse, 독어 : Maul und Klauenseuche"라고 기술되어 있다. 학어는 유행성 아구창 또는 전염성 아구창으로 번역되었고, 독어는 구제역으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때는 1899년(메이지 32년)이다. 규슈 방면에서 이바라키 현으로 들여온 소 3마리가 유행성 아구창에 걸렸다고 한다. 1900년에는 도쿄, 교토 등 2부 5현에서 구제역이 유행하여 2322마리의 소가 발병하였으며, 1902년에는 628 마리의 소가 구제역 임상 증상을 보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1899년 사례는 구제역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당시의 이바라키 현의 보고나 이바라키 신문 등을 조사해 봐도 해당 발생 보고의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진위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메이지 이후에 발간된 수의학 전문서 등에서도 최초 발생시기와 발생지를 1893년(메이지 26년)의 니가타 현, 1899년(메이지 32년)의 이바라키 현, 1900년(메이지 33년)의 도쿄부 등으로 서로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1900년 도쿄 부에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를 일본의 첫 발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 일본의 구제역 발생 기록. 1899년(메이지 32년)에 유행성 아구창(구제역)이 처음 발생했다. ⓒ岡山県畜産史

일본에서는 도쿄 부, 가나가와 현, 효고 현, 니가타 현에서 522마리가 구제역에 감염된 이후 1909년부터 1999년까지 구제역 발생 기록이 없었다. 구제역에 감염된 소를 수입한 사례는 있었지만, 2000년 미야자키 현과 홋카이도에서 약 92년 만에 구제역이 발생하였다. 최근에는 지난 2010년 미야자키 현에서 291건의 구제역이 발생하여 29만9000두의 가축을 살처분하였으며, 약 3000억 원 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는 1893년 8월 28일 농상무성령 제14호를 통해 "하기 모든 질병에 걸린 소, 말, 양, 돼지의 사체는 매장 후 12년이 경과되지 않으면 발굴할 수 없다. 위반한 자는 2엔 이상 25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우역 2. 탄저 3. 비저 및 피저 4. 전염성 흉막폐렴 5. 전염성 아구창 6. 양두"라고 규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구제역 매몰지의 발굴을 3년 동안 금지하는 규정과 비교해볼 때,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무려 16년이라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발굴을 금지시킨 점이 이채롭다. 최근 매몰지의 환경이 복원되려면 최소한 20년이 걸린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데, 오히려 100년 전 옛날 규정이 더 과학적이었던 것 같다.

1897년 2월 24일에는 농림성령 고시 제4호로 수역 예방 주의 사항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 중 '유행성 아구창' 항목을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유행성 아구창

병성 : 유행성 아구창은 일명 구제역이라고도 한다. 급성 발진에 속하는 전염병으로 구강 점막, 발가락 사이의 피부 및 유방에 수포가 생기고, 주로 소, 양, 염소 및 돼지에 발한다. 드물게는 말, 개, 고양이 및 가금에도 전염한다. 또 사람에 전염된 예도 드물지 않다. 한 번 이 병에 걸려도 면역성이 없다.

원인 : 병독의 양태에 관해 다양한 설이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병독은 타액 수포의 함유액, 유즙, 혈액, 분뇨, 호기 등에 존재하며, 상당한 점액질로 분변 등의 속에서는 수개월 혹은 1년간 효력을 유지한다. 환축으로부터 직접 전염되거나 혹은 매개물로 인해 간접 전염된다. 그리고 이 수역은 한결같이 교통 무역으로 전파된다.

경과 및 예후 : 구제역의 경과는 해마다 경중이 다르나 대략 정형적인 양성 경과를 보이며, 2~3주 이내에 치유된다. 폐사는 전혀 없거나 혹은 100마리 중 불과 1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해에는 악성을 보인다. 성장기 가축은 100마리 중 1마리 내지 5마리 수유중인 어린 가축은 50마리 내지 80마리가 페사된다.


▲ 츠노 게이타로의 <수의경찰학>(1905년) 표지(왼쪽), 그는 이 책에서 교통 차단을 가장 유력한 구제역 방역 방법이라고 밝혔다(오른쪽). ⓒ프레시안

1897년이면 유럽에서 구제역의 원인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때이다. 당시 일본도 서양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거의 시차 없이 수용했음을 구제역 예방 주의 사항을 통해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00년 전의 구제역 예방 방법과 현재의 구제역 예방 방법이 거의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쓰노 게이타로(津野慶太郎, ?~1939년)가 1905년(메이지 38년)에 펴낸 <수의경찰학(獣医警察学)>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의경찰학은 현재의 개념으로 가축 방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가장 유력한 구제역 방역 방법은 '교통 차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쓰노 게이타로는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1901년부터 1903년까지 3년간 독일과 오스트리아 유학을 다녀왔으며,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 농과 대학 조교수로 가축위생학 및 수의경찰법을 강의했다. 유럽 유학에서 최신 수의학을 배우고 돌아와 <수의경찰학>을 저술했음을 알 수 있다.

▲ 가츠시마 센노스케의 <가축내과학> 표지(왼쪽)와 유행성 아구창 항목(오른쪽). ⓒ프레시안

유행성 아구창과 구제역이라는 번역어는 메이지 시기부터 다이쇼, 쇼와 초기까지 병행적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카츠시마 센노스케(勝島仙之介, 1858~1931년)가 지은 <가축내과학(家畜内科学)>(개정 2판)은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유행성 아구창(일명 구제역)"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전염성 아구창이라는 번역어는 1927년(쇼와 2년) 가축 전염병 예방법이 개정되었을 때 구제역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그야말로 구제역의 시대가 온 것이다.

① 柏原学而譯, 石川良信閲(1874), 牛病新書, 東京, 英蘭堂. / 臼井一城 外(2005), 牛病新書に関する研究, 日本薬学会 第125年会 一般学術発表, 2005年 3月 31日.

② 諏訪綱雄(2008), 家畜感染病の病名は時代によって変わる, 畜産茨城 平成 20年 3月号.

③ 岡山県畜産史(1980), 第2編 第7章 第1節 家畜保健衛生対策. ()

④ 諏訪綱雄(2010), 本邦における口蹄疫の史実, 畜産茨城 平成22年度 9月号.

⑤ 津野慶太郎(1905), 獣医警察学, 中央獸醫會, p 185.

⑥ 勝島仙之介(1905), 家畜内科学 第2冊 下巻, 朝香屋書店, 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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