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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스티브 잡스? 진짜 영웅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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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 스티브 잡스? 진짜 영웅은 따로 있다! [프레시안 books] 박명준의 <사회적 영웅의 탄생>
이 책의 제목 "사회적 영웅의 탄생"은 얼핏 과대 포장 같은 느낌을 준다. 민주주의 시대에 '영웅'이라니,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대중문화의 분위기에 너무 영합하는 콘셉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길 때쯤이면 '영웅'이라는 호칭이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우리네 이웃 그러나 평범함 속에서도 보기 드문 비범함을 달성한 사회적 혁신가에게 부여될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될 것이다. "사회"를 강조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국가의 권위와 자원 배분에 의존하는 거대한 관료제, 공인된 전문직, 공룡처럼 커진 공공 섹터…. 이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권력과 위세를 획득하고 행사한다. 그런가 하면 시장의 강력한 조직력과 은밀한 설득력에 의존하는 거대 기업, 비즈니스 단체들, 자본가…. 이들 역시 오늘날 아주 쉽게 (흔히 국가보다 더 쉽게) 권력과 위세를 휘두르곤 한다.

이 두 영역에 비해 사회 영역은 위축되어 있거나, 국가/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거나, 아니면 시민사회라는 논쟁적 개념 뒤에서 정치적 역할을 요구받기 일쑤다. 그러니 국가/시장에 비해 발육이 떨어지고 제대로 된 지원 체계도 별로 없는 '사회' 영역에서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과도 같다.

이때 탄생한 용은 물론 전혀 다른 성격의 영웅이다. 그 용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그 용이 어떻게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는지, 그 사회적 기업이 어떤 혁신적 변화를 달성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하여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개천 출신으로 사회적 용이 된 14인의 치열한 삶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사회적 영웅의 탄생>(박명준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사회적 영웅의 탄생>(박명준 지음, 이매진 펴냄)은 독일의 사회적 기업가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외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단순한 선진국 선망, 피상적 이해를 넘어 공감의 능력을 저변에 깔고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외국 사례를 파악하는 일은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데다 해석학적 분석 수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계속 관찰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카로운 관찰자, 현지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 다른 두 사회를 균형 있게 볼 줄 아는 간문화적 전문가-관찰자가 필요해 진다. 이 책의 저자 박명준은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안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한국의 독자들은 독일의 사회적 기업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박명준은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두 가지 편향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하나는 지나치게 국가가 주도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공인'하는 제도 자체가 그런 점을 방증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기업이 지나치게 고용과 경제 중심적인 틀로 이해되고 있는 점이다. 현재의 사회적 기업 인증 제도 자체가 고용과 경제적 효과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래서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리의 현재 사회적 기업 제도 하에선 사회적 하청 노동자가 나올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회적 영웅이 탄생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든다. 국가에 얽매인 '사회', 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사회라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독일의 방방곡곡을 발로 뛰어 찾아내고 만난 사회적 기업가들, 즉 독일의 사회적 기업 모델은 우리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우선 이 모델은 국가에 의해 하향식으로 지명되는 식의 해법을 추구하지 않는다. 평범한-또는 평범한 수준도 못 되는-일반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상향식으로 문제 해결을 강구하는 바탕 위에서 사회적 기업이 잉태되고 성장한다. 즉 무대는 사회이지만 문제 해결의 해법을 시장적 수단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이다.

또 독일의 사회적 기업가는 고용 창출이 일차적 목표가 아니라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사회적 문제의 '혁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반기업적은 아닌" 인간형이 사회적 기업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모순적인 표현 같지만 한 장, 한 장을 읽다보면 왜 이들의 혁신 노력이 전혀 새로운 문제 해결 모델, 즉 기업적 수단을 차용하되 기존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로 귀결될 수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독일의 사회적 기업이 다루는 영역은 간단히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종다양하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정치적 활동을 한다면 한국에서는 당연히 정치 개혁 시민운동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 역시 사회적 기업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국회의원 관찰'이라는 단체의 활동이 좋은 예이다. 흔히 NGO는 공익적 주창 활동, NPO는 서비스형 제공 활동을 한다고 생각되곤 하지만 '국회의원 관찰'은 정치 활동형 사회적 기업이라는 아주 독특한 모델을 제시한다. 그리고 독일형 사회적 기업은 조직의 외형적 확대에 중점을 두지 않고 여기에 참여하는 개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창의성의 발휘를 강조하며, 사회 심리적 실천 방법론의 개발에 큰 관심을 둔다.

나는 이 점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력화(empowerment)를 지향하는 독일형 사회적 기업의 가장 큰 특징점이라고 본다. 사회의 근본적인 얼개 마련과 축적적 지식에 기반을 둔 혁신의 누진에 능한 이 나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론 독일형 사회적 기업이 좋은가 하는 질문과 그것을 우리가 쉽게 따라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다고 해서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사회 영역의 든든한 병풍 역할을 하면서도 민간의 자율과 독립성을 철저히 존중해 주는 분립 자율성의 전통,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 형성된 사회적 기업의 혁신 모델이 한국에서도 쉽게 실천될 수 있으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국가와 시장의 정상화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견디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추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이 책의 효과적 독법에 있어 핵심 사항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독일형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지성적 방법론, 그리고 사회 변동의 내인(內因)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전문 연구자가 집필했지만 대상 독자층을 폭넓게 겨냥한 하이저널리즘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학술적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면서도 탐사 보도의 흥미진진한 필체로 표현된,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사회학회 회장을 지낸 마이클 부라보이는 사회학적 연구가 학술사회학, 정책사회학, 비판사회학, 그리고 공공사회학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사회적 영웅의 탄생>은 공공사회학과 정책사회학을 블렌딩하면서도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려고 애쓴 책이다. 교훈적인 사례 연구들과 독특한 집필 형식이 조화된, 참고할 점이 많은 현장 보고서라 보면 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서 한국판 사회적 영웅이 많이 나온다면 그들의 탄생을 도운 산파의 역할로서 본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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