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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와서 뭔 짓을 해도 제주는 푸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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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와서 뭔 짓을 해도 제주는 푸릅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37> 상처를 받으면서도 우리를 위로하는 곳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 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상처를 받으면서도 우리를 위로하는 곳

먼저 인사를 드릴게요.
저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소설가 이순원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제주 강정 마을로 보내는 이 편지를 쓰는 곳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의 대관령 아래 시골집에서랍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대관령 아랫마을은 3월 중순인 이제야 겨우 매화가 피려고 동그랗게 꽃망울을 맺고, 산수유도 노랗게 꽃망울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 꽃나무 사이로 멀리 바라보면 흰 눈이 쌓인 대관령이 병풍처럼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제주는 봄이 한창이겠지만, 제가 있는 이곳은 봄이어도 아직 겨울 풍경이랍니다. 4월에도 대관령은 눈이 한 가득입니다.

제가 서울 옆 신도시 일산에 집을 두고 지금 대관령 아래 시골집에 와 있는 것은 '강릉 바우길' 때문이랍니다. 제주에는 그 유명한 올레길이 있지요. 그런 올레길처럼 제 고향 강원도에도 대관령 꼭대기에서부터 경포대와 정동진을 잇는 바우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있답니다.

제가 강정 마을을 처음 가 보게 된 것도 바로 바우길 때문이었습니다. 고향 강원도에 제주 올레와 같은 걷는 길을 내면서 바우길 탐사대 분들과 4박 5일 제주 걷기 여행을 했던 게 2009년의 일이었습니다. 강정 마을이, 그리고 구럼비가 겉으로는 아직은 평화롭게 보이던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제주올레 어느 코스도 다 아름답지만, 특히나 외돌개에서부터 월평마을까지 가는 7코스는 트레킹 관광객들이 아닌 일반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2박 3일 일정의 버스 관광객들도 하루나 반나절을 잡아 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때에도 그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부가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설마 하였고, 그렇게 설마 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일들은 2010년에 다시 제주올레 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에 갔을 때, 그리고 2011년, 2012년 연이어 같은 곳을 방문했을 때 마을이 어떻게 달라지고,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고, 또 지형과 해변의 모습들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그야말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고향에서 고향 분들과 나무와 풀과 강과 이야기하며 자연 속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길'을 탐사하는 일에 매달리느라 우리 시대의 일을 기록하는 작가로서, 그 아픔 바라만 보고 어쩌지 못한 마음 한없이 죄송스럽고 또 안타깝습니다.

며칠 전 제주의 어느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우리가 올레 걷기를 갔을 때 함께 걷고 안내하신 분인데, 그분에게 염치없게 강정 마을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변함없이 푸르지요."

제가 그 말뜻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그분이 한마디 더 말했습니다.

"누가 와서 뭔 짓을 해도 제주는 푸릅니다."

나는 이 한마디의 말이야말로 지금 제주의 모든 상황을 다 말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누가 와서 무슨 짓을 해도 언제나 푸른 제주에게 우리는 또 미안해하며 위안받습니다. 제주는 상처받으면서도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는 곳입니다. 그런 제주를 우리는 사랑합니다.


이순원

소설가.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창작집 <그 여름의 꽃게>(세계사 펴냄), <얼굴>(문학과지성사 펴냄),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청어 펴냄), <수색 그 물빛무늬>(민음사 펴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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