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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것은 '영혼의 다이옥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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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것은 '영혼의 다이옥신'이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해군 기지가 앗아갈 것
제주도 서귀포 강정 마을에 해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놓고 현지 주민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갈등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주민의 반대에도 정부는 해군 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놓고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프레시안>에 약 8회에 걸쳐서 글을 연재한다.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플롯이 뻔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면 총 잘 쏘고 주먹질 잘하는 남자 주인공이 겪는 사건의 중심에 항상 아름다운 여인이 있고, 그 둘은 영화가 끝날 즈음에 마지막으로 키스를 나눈다. 그러니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악당과의 긴박한 전쟁 중에 사랑이 싹텄다는 얘기가 된다.

관계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건의 공유와 다름 아니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에 속하지만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한 가지 우리를 호도하는 게 있다. 인간 사이의 사랑은 생사의 기로에서나 지독한 노동의 한 가운데서는 싹트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는 애써 회피한다. 어차피 영화는 두 시간 남짓 동안 관객의 일차적인 감각을 노려야 하기 때문일 게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다시피 사랑은 전쟁이나 노동과는 다른 정서적 환경 속에서 시작된다. 거꾸로 전쟁이나 노동은 사랑을, 생명의 본원적 에너지인 에로스를 억압한다.

유전자를 중심에 놓고 생명체의 비밀을 알고 싶은 과학자들은 사랑을 '번식하라'는 유전 코드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 같지만 살아있는 생명체가 이미 설정된 프로그램의 논리적 결과물이라는 주장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지 유전자 정보만으로 또는 의식적인 의지로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서는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생명체가 갖는 주위 환경과의 작용 속에서, 더 심층적으로는 그 환경과 맺었던 시간에 의해 형성되는 거니까. 이 바탕 위에서 사랑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주위 환경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쟁은 사랑을 불구화한다

며칠 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미군 기지에 고엽제 50톤을 1978년에 불법 매립했다는 당사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고엽제가 후두암, 폐암, 정신질환, 기형아 출산 등 심각한 결과를 야기하는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는 독한 제초제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에 밝혀진 사실이다. 오래 전 크게 흥행한 영화 <괴물>도 용산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불법 방류한 다이옥신으로 '괴물'이 탄생했다는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군의 불법성 혹은 미국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한 애국적 울분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쟁은 사랑을 '제초'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역으로 사랑은 전쟁을 '제초'하지 않고는 시작되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은 전쟁이 파괴하려 하는 강이나 바위, 꽃, 나무, 구름, 언덕, 우리의 발밑에 끝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에 의해 고양된 정서를 통해서만 가능한 법이다.

제주도 강정 마을에 해군 기지를 짓겠다는 국가권력의 떼거지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사랑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감정이 점점 더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다. 한 편에서는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도록 하자며 소중한 전파를 통해 홍보 방송을 하고 한 편에서는 제주도가 생겨난 지질학적 시간을 품고 있는 바위를 깨 해군 기지를 짓겠다는 군인 정신을 보면서, 이 있을 수 없는 기만과 허위 앞에 아직 우리가 절망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자연을 깨고 부수는 연속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서 또 절망하는 것인가. 하나의 바위를 부수는 것은 그 바위와 관계 맺고 살았던 무수한 생명체의 터전을 황폐화시키는 일이며 그것에서 사람의 삶이 벗어나 있지 않다는 원리를 전쟁을 수행하는 일에 몰두하는 국가권력이 알 턱이 없다.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그것은 미 해군의 전초기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정욱식)도 있는데 만일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훗날 제주도는 얼마나 많은 다이옥신으로 오염될 것인가. 아니 다이옥신보다 더 진화된 오물로 뒤덮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점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예측은 내게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삼류 시인으로서 확언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있다. 강정 마을에 해군 기지가 들어 선 후에는 사랑은 꿈도 꾸지 마라는 것! 사랑은 추상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의 영혼과 정서와 행복을 실제적으로 좌지우지한다. 타자와의 사랑이 있고 없고에 따라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과학의 축적도 없지 않다.

ⓒ뉴시스

사랑을 하려거든 파괴를 멈추게 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존재와 공유하는 몸은 생명의 움직임, 생명의 고통, 생명의 행복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전이 수단이다. 타인의 움직임을 보면서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이다. 말없는 존재들에게 언어적 지능의 증거를 요구하고, 하찮다는 이유로 그 존재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들만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며, 자신은 다른 존재라는 환상에 빠져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느낀다>(안드레아스 베버 지음, 박종대 옮김, 프로네시스 펴냄), 112쪽)

사랑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의 문제이다. 구럼비 바위가 거기에 있으면 우리는 사랑을 위한 물적 조건을 갖게 되지만 해군 기지가 구럼비 바위를 대신해 있게 되면 전쟁을 위한 제반 조건을 갖추게 될 뿐이다. 사랑은 몸에서 시작돼서 영혼을 뒤흔들고 다른 몸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구럼비 바위는 바로 지구의 몸이다.

사랑을 위한 감정을 촉발시키는 가장 큰 외부 환경은 영화관도 커피숍도 러브호텔도 아니다. 우리 주위에 오래도록 있어 왔던 나무 한 그루나 작은 강에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기대야 우리는 사랑을 배울 수 있고 사랑을 배워야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존귀해진다.

만일 우리가 사랑 대신 전쟁을 허여한다면 삶은 또 얼마나 더럽혀질 것인가. 사랑이나 평화가 국가나 무기에 의해 보호·유지된다는 발상은 화병에 꽂힌 꽃이 들판에 핀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으며 횟집 어항에서 한가로운 물고기를 부러워하는 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과 평화는 오로지 사랑과 평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또 지속된다. 그러니까 젊은 벗들, 사랑을 하고 싶거든 지금 강정 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지켜라. 훗날 자신의 영혼에 다이옥신이 몰래 방류되는 것을 원치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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