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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괴담,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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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괴담,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강정 마을 이야기
주민 수가 1900명 남짓, 제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지요.

한라산을 중심으로 섬 곳곳에서 바다로 내달리는 크고 작은 하천들 대부분이 건천(乾川)인데 반해 산남 지역에서는(한라산 남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큰 자부심이었던 곳.

강정(江汀)이라는 맑은 이름, 중덕 바다와 넓적바위 구럼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마을 사람들은 늘 자랑스러워했지만 제주 섬에서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좋은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적어도 4년 전 그때까지는.

2007년 봄, 설촌(設村) 400년 만에 마을 공동체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사안이 발생합니다.

제주도의 남원읍 위미, 대정읍 화순 등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추진되던 해군 기지 건설 사업이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는 듯 보였던 그 즈음, 해군 기지를 "강정에 유치하기로 마을 주민들이 결의했다"라는 놀라운 뉴스가 보도됩니다. 4월 26일 87명이 참석한 마을 임시 총회가 열렸고, 투표나 거수도 아닌 박수로 소수의 반대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해군 기지 유치 결정(안)이 통과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결정은 마을 주민 다수의 의견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열린 마을 총회는 마을 자치 규약인 향약을 명백히 위반한 '그들만의 모임'이었습니다.

첫째, 총회는 개시일로부터 7일전에 공고되어야 했으나 공고된 지 3일 만에 열렸고 둘째, 총회를 소집하면서 공고된 안건은 해군 기지에 관한 건이었으나 정작 본회의에 들어가서는 해군 기지 유치의 건으로 바뀌었으며 셋째, 마을의 공동 재산 매각이나 대여 또는 그에 준하는 중요한 사안일 경우 성원이 최소 200명이 되어야 했는데도 단 87명만으로 해군 기지 유치와도 같은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였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강정 마을 초입에 들어서 현재 영업 중인 풍림콘도와 관련한 건축 동의안은 마을 회의가 10여 차례 열린 후에야 통과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분분한 가운데, 주민 간 갈등과 대립은 증폭됩니다. 오랫동안 화평하고 소박하게 꾸려왔던 삶의 근간이 황폐해지고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한 집안 삼촌, 조카가 등을 돌려, 섬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풍습인 문중 벌초조차 함께 하지 않는 기막힌 상황이 전개됩니다. 강정천 맑은 물에서 멱을 감으며 몸과 뼈를 함께 키웠던 오랜 우정들이 공사 현장에서 사선위의 표적지처럼 서로 대치합니다.

물질을 마치고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며 나누던 '불턱'의 온기 사그라지고,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끝없이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강정 문제에 제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강정 마을을 찾았던 뭍의 동료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자 힐난이었습니다. 이 기회에 짧게 답하려 합니다.

제주섬 사람들에겐 오래전 국가 권력의 횡포에 처절하게 짓밟혔던 이후, 오늘날까지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트라우마'가 존재합니다. 그 트라우마는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집단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는 자기검열로, 그에 순응하는 처세의 방식으로 변모되어 부모로부터 자식들에게 전해져왔습니다.

"절대 앞에 나서지 마라"라는 훈계는 적어도 이 섬의 가가호호에서 오랫동안 힘을 잃지 않은 명제이기도 했습니다. 강정 문제에 침묵하는 이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정도로 충분하겠는지요.

지난 봄부터 강정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구럼비 해안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응원 현수막이 마을 입구에서 중덕 바닷가까지 가득 덮였습니다. 요즘 들어 "외부 세력이 문제다"라고 핏대를 세우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옵니다만 그들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이 땅의 아름다움을 함께 사랑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우리 국민들입니다.

2011년 여름 현재, 강정은 '생명'과 '평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김하는 순례의 공간으로, 국가 안보를 내세운 국책 사업이라 할지라도 그 방향이 옳지 않을 때 그에 대항하는 '국민 저항권'이 발현되는 한마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시대가 투사를 만든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고, 그물을 걷어 올리고, 한 여름 땡볕 속에서 감귤나무를 돌보며 땀방울을 쏟던 평범한 마을 주민들을 투쟁가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국가입니다.

강정 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군 기지 건설 사업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버거울 만큼 그 출발부터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거대한 굴삭기와 덤프트럭, 바지선을 맨몸으로 막아서는 주민들의 저항은, 목숨을 건 단식은 그래서 '정정당당한' 가치를 얻고 '정의롭다'는 공감대를 획득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잘못 시작된 일, 이제라도 멈춰야 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공사 강행 이후, 중덕 바다와 구럼비 바위의 일부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흔이 강정 마을을 진정한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제물로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는 커다란 상징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기꺼이 감내할 만한 희생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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