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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먹구름, 정치는 흙탕물…믿을 건 너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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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먹구름, 정치는 흙탕물…믿을 건 너뿐이야!

[2011 가을의 선택] 인터넷 서점 MD가 말하는 '진짜' 소설

"오늘은 또 무엇을 잃어야 하는 걸까?" 오늘도 나의 소중한 한 부분을 떼어주고자 집을 나서는 보통 사람의 얼굴에서 행복한 표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들고서 좋은 뉴스, 좋은 소식을 갈구하지만 기대는 번번이 무너진다. 이렇게 밝지 않은 출근길 풍경에 색깔을 입히는 이들이 있다.

한쪽 구석에서 아까부터 슬며시 미소를 짓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러고 보니, 저쪽 구석에 앉은 여자는 아까부터 연신 눈물을 훔친다. 미소 짓는 남자나 눈물 훔치는 여자나 표정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한 소설가의 말처럼 삶 자체가 "풍화이며 견딤"일진데, 고달픈 세상살이의 무게를 잠시 잊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 남자/여자.

열에 아홉은 그들의 손에 스마트폰 대신 소설책이 들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소설의 힘! 소설은 이렇게 당장의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을 증류하여 진실을 뽑아낸" 소설은 저당 잡힌 현실이 강요하는 무지의 장막을 찢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다른 삶으로의 도약을 자극한다.

한국 소설, 외국 소설 막론하고 소설에 힘이 빠졌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꽤 되었다. 그러나 과연 소설의 힘이 약해진 것일까? "운명의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다"고 말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떠올려보면, 혹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정도로 우리의 삶이 치열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2011년 가을 '프레시안 books'가 다시 소설 읽기를 권한다. 열두 명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자기만의 소설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독자와 소설을 매개하면서 밥벌이를 하는 인터넷 서점의 MD(merchandise) 다섯 명에게 소설 안내를 부탁했다.

김수진 인터넷교보문고 MD, 김미선 예스24 MD, 김효선 알라딘 MD, 최원호 알라딘 MD, 홍성원 인터파크 MD의 얘기를 종합해 가상 대담으로 꾸몄다. 눈치 빠른 독자는 짐작하겠지만, 가상 대담에 등장하는 서원, 아름, 곤은 올해 나온 한국 소설의 등장인물이다. 누군지는 직접 소설을 읽으면서 맞춰보길.


ⓒ프레시안(손문상)

"두근두근" "7년의 밤"

프레시안 :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분류가 가능해요. 일단 책을 읽는 사람과 꽂아 두는 혹은 쌓아 두는 사람이 있지요. (웃음) 그리고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는 소설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이렇게도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을 읽는 사람이 단연 많지요.

이번에 '프레시안 books'가 가을 특집으로 '소설'을 내세운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소설은 좋아하는 이들인데, 정작 '프레시안 books'가 소설을 푸대접해온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설 읽기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인터넷 서점의 MD들은 어떤 소설을 추천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우선 올해 나온 소설 중에서 어떤 책이 추천이 되었는지 살펴볼까요? 일단 국내 소설부터 살펴볼게요.

서원 : 아무래도 올해 나온 소설 중에서 가장 최고는 정유정의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 아닐까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는 듯한 장르 소설의 요소를 넣어서 재미도 있을뿐더러, 한국 소설이 주로 다뤄온 '모정'이 아닌 '부정'에 주목한 것도 이채롭고, 범죄와 처벌의 관계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니까요.

아름 : 동감이에요. 사실 정유정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비룡소 펴냄),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펴냄)을 펴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주목할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7년의 밤>을 펼쳐들자마자 책 속에 '퐁당' 몰입하고 말았습니다. 방금 지적한 대로, 이 책은 장르 소설이라고 딱지 붙여 평가절하하기에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꽤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입니다. 여기에 더해 스릴이 넘치는 장르 소설의 재미도 충만해 '와! 정말 재밌다' 하고 저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들게 됩니다.

프레시안 : 최근 몇 년간 공지영, 신경숙, 황석영 등과 같은 몇몇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만 부각하면서 정작 독자들이 다양한 좋은 소설을 접하는 즐거움을 놓친 측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정유정의 <7년의 밤>의 성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 주목할 만한 작가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7년의 밤>에 이어서 하반기에 주목을 받는 소설이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펴냄)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읽었나요? 평론가 사이에서는 이 책의 장편 소설의 성취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었어요. 반면에 독자, 특히 20~30대 여성은 이 책에 열광하는 모습이어서 흥미롭습니다.

곤 : 저는 독자 편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서 그 여운 때문에 며칠간은 다른 소설을 읽지 못했을 정도에요. 특히 문장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김애란은 이른바 '젊은 작가'를 대표하는 소설가답게, 시간이 갈수록 독자와 교감하는 능력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평론가들이 김애란의 어떤 점에 독자들이 끌리는지에 더욱더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도…

윤영수의 <귀가도>(문학동네) : "'귀가도' 연작을 포함해서 총 여섯 편의 소설에 깔린 슬픔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김효선 알라딘 MD)

김이설의 <환영>(자음과모음 펴냄) : "현대 사회의 참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괜히 멜랑콜리하지 않고 또 눈에 띄려는 기교도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최원호 알라딘 MD)

나는 소설이다!

▲ <설계자들>(김언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프레시안 : 방금 <7년의 밤>, <두근두근 내 인생>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사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소설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어요.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에다 비슷한 소재 거기다 엉성한 스토리 등이 늘 독자의 원성을 샀어요. 거기다 일부 문예지가 앞장선 주례사 비평도 이런 불만을 더욱더 부추겼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한국 소설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7년의 밤>이 장르 소설의 문법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서 독자를 흡입할 만한 스토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면, <두근두근 내 인생>은 독자가 공감할 만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으니까요. 또 누가 있을까요?

아름 : 김언수가 있어요. 2006년에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었던 <캐비닛>(문학동네 펴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기발한 발상이 돋보였어요. 다음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3년 만에 <설계자들>(문학동네 펴냄)이 나왔어요. 또 한 번 "이 작가, 정말 기발하네!" 하고 감탄했습니다.

좀 더 자주 작품을 내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다작을 하지 않으니…. 김언수의 다른 소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원 : <신의 궤도>(문학동네 펴냄)를 펴낸 과학 소설(SF)을 주로 쓰는 배명훈도 빠뜨리면 안 되지요. 독자로부터 호응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가장 독특한 이야기 세계를 보여주는 배명훈은 앞으로 정말로 기대가 되는 작가입니다. 최근에 펴낸 <신의 궤도> 역시 갖출 것을 갖춘 대단한 이야기라 즐겁게 읽었어요.

배명훈과 비슷하게 스토리에 강한 작가로 조완선도 주목할 만합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휴먼앤북스 펴냄), <천년을 훔치다>(엘릭시르 펴냄) 등을 보면, 그의 역사 추리 소설은 앞으로 해당 장르의 고정 팬뿐만 아니라 더 많은 독자로부터 호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곤 : <백의 그림자>(민음사 펴냄)의 황정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자음과모음)의 최제훈, <무중력 증후군>(한겨레출판사 펴냄)의 윤고은, <풀이 눕는다>(문학동네 펴냄)의 김사과 등도 자기만의 색깔을 갖춘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문학동네)의 황현진도요.

개인적으로 편혜영이 독자로부터 더 많이 사랑을 받지 못하는지 불만이에요. 언젠가 '빵' 하고 터지기만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절대 외모 때문이 아니에요. (웃음)

서원 :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를 고백하는 순서인 듯하니, 저도 작가를 한 명 더 추가할게요. 이장욱은 어떤가요? 독특한 이야기, 치밀한 구성, 주제 의식 모두 돋보이는 작가입니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 <고백의 제왕>(창비 펴냄) 역시 소설의 질에 비해서 주목을 덜 받아서 속상해요.

베르베르, 권지예, 김영하의 소설은…

▲ <고백의 제왕>(이장욱 지음, 창비 펴냄). ⓒ창비
프레시안 :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작가, 시쳇말로 '빵' 터지기를 기대하는 작가를 얘기했어요. 대체로 의견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미처 이런 작가의 소설을 읽지 못한 독자는 얼른 챙겨서 읽어야겠어요. 그런데 혹시 주목을 받는데, 실망스러웠던 작가는 없나요? 실제보다 높이 평가 받는 작가는….

아름 : 이거 익명으로 나가는 것 맞나요? 저는 왠지 '프레시안 books'가 신뢰가 안 가서. (웃음) 안전하게 외국의 소설가를 얘기할게요. 딱 한 명만 꼽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아닐까요? 데뷔 작품 <개미> 이후로 지속적으로 필력이 떨어지는, 언젠가부터 거의 일말의 장점도 찾아볼 수 없는 작가입니다. 한국 SF 독자의 수준의 바로미터라고나 할까요.

곤 : 읽다가 좀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가는 있지만 취향 탓이 아닐까요. 하긴 저는 권지예의 소설이 그다지 재미는 없더군요.

서원 : 저도 짧게 이름만 얘기할게요. 김영하!

"백설공주" "블론드" 그리고 "멋진 추락"!

프레시안 :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펴냄) 이후에 외국 소설은 그다지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외국 소설이 많이 나오는데, 정작 한국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올해 나온 소설 중에서 주목한 외국 소설이 있나요?

서원 : 하진의 <멋진 추락>(왕은철 옮김, 시공사 펴냄)이 먼저 생각나는군요. 완성도 높은 단편이 계속 이어지는 멋진 작품입니다.

아름 : 넬레 노이하우스는 어떤가요? 유럽 장르 소설 중에서 가장 성공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김진아 옮김, 북로드 펴냄)은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부터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던 책이라서 더욱더 애정이 깊어요. 사실 가끔 이럴 때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무조건 이 책을 편애하는 건 아니에요.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특유의 감정이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해 오히려 더 극적이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이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입니다.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반전으로 추리 소설의 재미도 놓지 않았으니 누구든 일단 잡으면 후회가 없을 책입니다. 꼭 추천합니다.

곤 : 미국의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로 꼽히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이 최근 몇 년 새 계속 번역이 돼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 나온 <블론드>(강성희 송기철 옮김, 올 펴냄)도 최고입니다. 문장의 배후에서 귀기가 전류처럼 흐르는 1000쪽짜리 소설에 한 번 빠져보시길.

이 소설도…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한성례 옮김, 느낌이있는책 펴냄) : "마니아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될 작품. 가장 빨리 읽(을 수 있)었던 소설." (홍성원 인터파크 MD)

살만 류슈디의 <한밤의 아이들>(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펴냄)(김미선 예스24 MD)

"하늘을 나는 타이어" "뒤마"

▲ <하늘을 나는 타이어>(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미디어2.0 펴냄). ⓒ미디어2.0
프레시안 :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에서 확인했듯이 한국에서는 외국 소설 쏠림 현상도 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외국 작가의 훌륭한 소설이 계속 소개되는데도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의 범작보다도 대접을 못 받는 경우도 있어요. 좋은 작가의 좋은 소설을 널리 소개하고 싶은 여러분은 상당히 답답할 것 같아요. 이 자리에서 속마음을 시원하게 얘기하면….

곤 : 답답할 때가 있어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오쿠다 히데오 등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 작가의 예를 들어볼게요. 사실 이들의 대표 소설은 국내에 거의 다 소개가 되었어요. 그런데도 인기를 업고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과거의 범작까지 높은 인세를 받으며 국내에 뒤늦게 소개되고 있어요. 다른 좋은 작가, 좋은 소설이 얼마나 많은데….

서원 : 주목하는 미국 작가 중 한 명이 앤드루 포터에요. 국내에는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김이선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하나만 나와 있는데요. 평범해 보이는 드라마 안에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을 차분하게 담아뒀습니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아 보이는,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라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추천하고 있어요.

일본 작가 중에는 이케이도 준이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일본의 보통 사람을 자세히 그리는 솜씨가 좋습니다. 더구나 천부적인 스토리텔러라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씁니다.

프레시안 :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저도 한몫 거들고 싶군요. <하늘을 나는 타이어>(민경욱 옮김, 미디어2.0 펴냄),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민경욱 옮김, 미디어2.0 펴냄) 둘 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오랫동안 잔상이 남는 소설이었어요. 개인적으로 한국 기자들이 이케이도의 소설을 읽으면 배울 게 많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서원 : 이케이도의 숨은 팬이 여기도 있었네요. (웃음) 기왕에 지역별로 추천을 했으니 북유럽 작가도 한 명 언급할게요. 북유럽 경찰 소설의 맥을 잇는 아이슬란드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들렌두르 시리즈'도 슬픔과 희망의 밸런스가 잘 맞는 좋은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딜 가나 추천하고 다니는데, 한국에서는 왜 북유럽 추리 소설이 조명을 못 받는지….

아름 : 아르투로 페레스-레베르테도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없어요.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불리는 인기 작가인데요.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 중에서 <뒤마 클럽>(정창 옮김, 시공사 펴냄)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사실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역사 팩션 중에 이만한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프레시안 : 좋아하는 작가가 등장하니 한마디씩 거들게 되는군요. 레베르테를 그렇고 그런 역사 팩션 작가로만 생각하는 독자는 2010년에 나온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김수진 옮김, 시공사 펴냄)를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서 한창 권하고 다녔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도 멋질 것 같아요.

아름 : 그런데 왜 레베르테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을까요? 짧은 소견을 말하자면, 레베르테의 방대한 지식이 책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서 독자에게 부담을 지우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스페인 어를 한다면 꼭 레베르테에게 "조금만 쉽게 써주세요" 하고 전하고 싶습니다. (웃음)

소설이여, 영원하라!

▲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아르투로 페레스-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프레시안 :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소설의 활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소설을 독자에게 읽혀야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곤 : 한국 소설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어요. 앞에서도 여러 작가를 놓고 얘기했습니다만, 요즘 젊은 작가 역시 선배 작가 못지않게 치열하게 창작을 합니다. 그 성과도 만만치 않고요. 오히려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을 얼마나 찾아서 읽는지 의문이 들어요.

서원 : 1990년대에 공지영의 <고등어>(오픈하우스 펴냄)와 같은 이른바 '후일담 소설'이 쏟아져 나온 이후로 한국 소설은 늘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그나마 요즘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장르 소설의 특징을 적절히 흡수한 작가들(박민규, 배명훈, 정유정, 최제훈, 구병모 등)이 계속 성장하고 있어요.

이 작가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서 독자와 교감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학의 다양성이 꽃 필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없는 사소설은 당분간 계속 양산될 거예요. 하지만 그게 문예 미학 혹은 시대정신이 아니라는 걸 출판사들이 곧 깨달을 거예요.

아름 : 사실 소설보다 소설 바깥의 세계가 더 재미있잖아요. 소설이 주는 재미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상이 주는 재미보다 크지 않으니…. (웃음)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이 더 분발해야 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보다 '잘 쓰고 싶은' 욕망이 보이는 한국 소설이 많아요.

더구나 몇 년 새 베스트셀러 작가의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 새로운 것, 신선한 것에 목말라 하는 젊은 독자를 소설로부터 밀어내고 있고요.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구태의연한 작가의 빤한 소설에 집착하겠어요. 앞으로 새로운 작가의 다른 느낌의 소설이 좀 더 소개되고, 그 책이 새롭게 베스트셀러가 되면 독자도 다시 소설을 찾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다들 한국 소설의 미래를 낙관하는군요. 마지막으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한마디씩 하자면….

서원 : 책을 좋아하면서도 소설 읽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있어요. 또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도 좋아하는 작가, 장르만 찾아서 읽곤 합니다. 가끔은 새로운 소설 읽기에 도전해 보세요.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간 소설을 골라서요.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같습니다. 한 발만 더 나와 보면 정말 멋진 것이 많아요.

아름 : 소설은 하루라도 거르면 안 되는 '밥'이라기보다는 밥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는 '반찬' 같은 존재에요. 다양한 반찬과 함께 먹으면 밥이 정말 꿀맛이잖아요. 소설이 그렇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읽어야 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실용서, 자기 계발서, 신문, 잡지 등.

이렇게 거르면 배가 고픈 책들 틈에서 반찬처럼 놓여 있는 게 바로 소설입니다. 소설은 반찬처럼 일상을 좀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이에요. 이 가을에 일상을 좀 더 맛있게 만들어줄, 다른 어떤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설의 세계에 빠지는 기쁨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곤 : 여전히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소설을 읽는 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역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또 그런 분들 때문에 밥벌이를 하는 생활인으로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소설이여, 영원하라!

MD가 추천하는
이 가을에 함께 읽고 싶은 나만의 소설

은희경의 <새의 선물>

"스무 살 생일에 친구에게 성년식 생일 선물로 받은 소설. '소설이 이런 재미가 있구나!' 하는 감동을 안겨준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은희경의 독실한 팬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깔끔하게 떨어지는 글맛이라니…' 하면서 탄성을 질렀었다. 이 가을에 꼭 읽어보길. (김수진 인터넷교보문고 MD)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김난주 옮김, 북폴리오 펴냄)(김미선 예스24 MD)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문학동네)

"이 가을 김소진의 소설을 함께 읽고 싶다. <자전거 도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열림원 펴냄)가 특히 좋다." (김효선 알라딘 MD)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신현철 옮김, 열린책들 펴냄)

"얼핏 낯선 형식 때문에 마냥 어려운 현대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 시가 가득 들어 있다. 미로는 맞는데 정말 아름다운 미로다." (최원호 알라딘 MD)

김영하의 <퀴즈쇼>(문학동네 펴냄)

"국내, 국외 소설 한 권만 고르라면 단연 <퀴즈쇼>" (홍성원 인터파크 MD)

2011 가을에 이런 시리즈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뿔 펴냄)

"곧 영화라도 개봉 예정인 이 시리즈. 처음 나왔을 때 그 음울함 때문에 선뜻 시작을 못했는데 이제는 다시 한 번 도전할 예정이다." (김수진 인터넷교보문고 MD)

조정래의 <태백산맥>(해냄 펴냄)(김미선 예스24 MD)

'문학과지성 시인선' (문학과지성사 펴냄)

"어떤 시집을 선택해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으리." (김효선 알라진 MD)

'필립 K. 딕 걸작선' (폴라북스 펴냄)

"필립 킨드레드 딕을 SF의 아이콘이 아니라 낭만파 환상 문학의 후계자로 보면, 더 재밌다." (최원호 알라딘 MD)

'민음 모던클래식' (민음사 펴냄)

"민음사에서 펴내는 '민음 모던클래식"을 작정하고 읽고 있고, 또 아주 좋아한다.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고, 먼 훗날 '모던'을 떼고 '클래식'으로 남을 작품이라는 생각에 한 권씩 추가될 때마다 설렌다. 게다가 책의 디자인 등 내용 외적인 부분의 만족도도 아주 큰 시리즈. 추천한다." (홍성원 인터파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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