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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따지다 재뿌렸다…우린 책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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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급' 따지다 재뿌렸다…우린 책임 없나? [분석] 남북관계 전환점, 자존심 대결로 무참히 무산
남북이 이른바 수석대표의 '급'을 놓고 벌인 공방전으로 당국회담은 끝내 무산됐다. 실무회담은 북한이 강지영 국장을 단장(수석대표)으로 정하고, 강 국장의 카운터파트로 통일부 류길재 장관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대표단 파견을 보류하면서 결렬됐다. 정부는 북한 책임론을 강조하지만 따져보면 이른바 '급'을 가지고 먼저 줄다리기를 한 쪽은 남한이었다.

남북 간 공방전은 지난 9~10일 실무접촉에서 남한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1일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측과 실무접촉을 할 때 통일부 장관의 대화 상대방은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통전부장이 단장으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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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10일 17시간의 마라톤 실무접촉을 벌였음에도 수석대표와 의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남북은 결국 당국회담 무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진은 지난 10일 남북 실무접촉 대표단이 종결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통일부
                            이 당국자는 "실무접촉에서 북한은 통전부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그래서 (우리는) 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우리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할 수 있는 당국자로 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로 미루어볼 때 정부가 실무접촉 당시 이미 김양건 부장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남한에서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 보다 낮은 급의 인사를 내보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한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김양건 부장은 북한 내에서 장관보다 급이 높은 인사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날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김양건은 통전부장이기도 하지만 당의 대남 담당비서"라며 류 장관보다 급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애초에 급이 맞지 않는 인사를 회담에 나오라고 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외교적으로 봤을 때도 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특정한 인사를 지명하면서 회담에 나오라고 지정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평가다. 통일부 당국자는 "복잡한 남북 간 현안 문제를 권한있게 협의하기 위해서는 장관급이 나서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건데 이 정도의 급에 걸맞은 상대방은 통전부장일 것 같다고 예를 들어서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예를 들어서 말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실무접촉 중에 특정 인사를 언급한 것을 두고 상대방이 단순히 '여러 사례 중 하나'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청와대는 실무접촉이 끝난 10일 오후 "(회담 대표의) 격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상호간 신뢰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 않겠나"라며 김양건 통전부장이 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북한을 압박했다. 청와대의 주장처럼 이른바 '급'이 맞는 인사끼리 회담을 해야 한다면 남한의 장관보다 급이 높은 김양건 부장을 회담장에 내보내라는 요구는 상호 신뢰할 수 없는 조건을 남한이 스스로 만든 자가당착이 된다.

                            결국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은 남북한의 이른바 '급' 공방전은 남한의 '김남식 통일부 차관 수석대표 결정'과 북한의 '대표단 파견 보류'라는 사태로 마무리됐다. 겉으로는 북한이 회담을 보류했기 때문에 결렬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김양건 통전부장이 나오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급'을 따지며 수석대표를 차관으로 바꾼 남한 정부 역시 형식논리에 갇혀 회담을 무산시켰다는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지영 국장,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인가

                            북한이 당국회담의 단장으로 내세운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조평통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서기국장의 권한과 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지영 국장보다 한 단계 아래 급의 인사인 김만길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이 2005년 당시 이봉조 통일부 차관과 남북 당국 사이의 차관급 실무회담에 나선 적이 있어 강지영 국장을 이른바 '급'으로만 판단했을 때 장관급 회담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낮은 인사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물론 강지영 국장은 남북 당국 간 회담에 참가한 경력이 일천하다. 2013년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강지영 국장은 2004년 12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2005년 8월에는 8.15 민족대축전 북측 준비위원회 종교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외에 그가 남한과의 대화나 기타 당국 간 회담에 참여한 경험은 전혀 없다.

                            따라서 강 국장의 경력으로 봤을 때 남한의 통일부 장관과 회담 상대방으로 만나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강지영 국장을 단장(수석대표)로 정한 것이 북한이 6.15 공동선언, 7.4 공동선언 등의 행사를 공동으로 치르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북한의 대화 제의로부터 시작해 남북관계의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 장관급 회담은 '급' 논란을 거치며 당국 회담으로 격하됐고, 급기야 상호 자존심 대결로 치달은 끝에 회담 자체가 무산되는 사태로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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