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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청춘 바친 나, 알고 보니 불법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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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청춘 바친 나, 알고 보니 불법 파견" 삼성전자서비스 '불법 파견' 논란…"삼성이 직접 고용해야"
"10점 만점에 10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님."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받은 다음 날이면 예외 없이 두 번의 전화가 걸려온다. 하나는 서비스 만족 정도를 묻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가 거는 '해피콜'. 다른 하나는 방문했던 수리 기사의 친절한 수리 결과 확인 전화.

고객들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다. 수리가 잘되었는지,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등을 왜 한 번의 전화로 물으면 안 되는 걸까. 어째서 번거롭게도 센터와 기사가 각각 고객에게 전화를 하는 걸까. 세계 일류 기업 '삼성'에 걸맞은 특별한 이중 고객 관리일까.

아니다. 주요한 이유는 방문 수리 기사 대부분이 삼성전자서비스 소속 직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 1만 명에 달하는 수리 기사들은 보통 삼성전자서비스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협력업체 회사 직원이다. 기사가 입는 조끼에는 'SAMSUNG(삼성)' 마크가 찍혀 있지만, 이는 포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자신의 회사가 아닌 삼성전자서비스가 행한 해피콜 결과에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한다. 10점 만점에 8점 이하를 받으면 일종의 시말서인 '대책서'를 써야 하기 때문.

최근까지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로 일했던 ㄱ씨는 "대책서는 어쩌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됐는지를 스스로 설명하는 비인간적 자아비판서"라며 "대책서 상황에 따라 각 기사가 받는 인센티브(성과보수)와 그 기사가 속한 업체 및 업체 사장에 대해 삼성이 내리는 등급(평가)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결국, 일은 협력업체 노동자가 하고 평가는 원청인 삼성이 한다는 설명이다.

▲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

삼성에 항의 들어와도, 협력업체 수리 기사 '처벌'

그래서 기사들은 정해진 오전 일과로 '점수 구걸'을 한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해피콜을 하기에 앞서, 기사들이 방문했던 고객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10점 만점'을 유도하는 것. ㄱ씨는 "모든 기사는 오전 조회를 마친 후 구걸 전화를 돌린다"며 "그나마도 해피콜에서 기사가 만점 요청을 했는지를 묻고 고객이 그렇다고 하면 0점이 나오기 때문에, 최대한 에둘러 10점 만점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10점 만점을 받도록 친절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피콜 점수는 기사의 실제 서비스와 무관하게 또는 지나치게 낮게 매겨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기사들은 토로했다.

일례로 ㄱ씨는 얼마 전 방문했던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해피콜 점수를 낮게 준 이유를 물어봤다. 고객 요청대로 무사히 수리를 마쳤는데도, 낮은 점수가 매겨진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고객은 당황해 하며 '기사 서비스에는 만족해 기사 평가 항목에 10점 만점을 줬다. 다만 수리비가 너무 비싸다는 항의를 삼성에 했다'고 전했다.

이 사례에서 고객이 항의한 수리비는 수리 기사가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가 책정한다. 또자재 품질, 자재 가격 등과 같은 여타 주요 항의 내용 역시 대체로 기사들의 서비스와는 무관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수리비, 자재 품질·가격 등에 대한 항의는 해피콜을 거치며 기사의 잘못으로 평가돼 버린다. 원청(삼성전자서비스) 또는 원자재 생산업체(삼성전자)의 문제가 돌연 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에게 전가된다는 말이다.

협력업체 수리 기사의 '완벽한' 서비스, 공로는 삼성에

이뿐이 아니다. 수리 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가 비밀리에 섭외한 고객이 기사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방문 수리 과정을 조목조목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가 행해지는 기간을 '미스터리 쇼핑(비밀 구매)' 기간이라 부르며, 이때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극도로 높아진다고 기사들은 호소했다.

서비스 기사 ㄴ씨에 따르면, 기사들에겐 방문 수리를 나갔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MOT(Moment of Truth의 약자)'가 있다. 쉽게 말해, 수리 기사 행동 강령이다. '들어갈 때(IN) 인사와 복장→ 명함 전달→수리비 안내→수리 과정 설명→수리 결과 설명→영수증 발행→나갈 때(OUT) 인사'와 같은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수리 기사들은 이렇게 정해진 행동 강령의 순서를 뒤바꾸어서도, 절차 하나를 빼먹어서도 안 된다. ㄴ씨는 "만약 미스터리 쇼퍼(비밀 손님)가 촬영한 동영상에서 명함을 정해진 순번에 주지 않고 수리를 마친 후 준 것이 드러나면, 해당 평가 항목은 아예 0점 처리가 된다"며 "미스터리 기간이 오면 속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썩어들어가지만, 겉으로는 활짝 웃는 로봇이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완벽한' 서비스로 이득을 보는 쪽은 물론 삼성이다. 미스터리 쇼핑과 MOT, 해피콜로 인해 기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친절한 AS"라는 고객 평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받게 되는 구조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수리 기사들에게 제시한 MOT. 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사전에 섭외한 고객을 통해 기사들의 수리 과정을 몰래 촬영해, 기사들이 이 행동 강령(MOT)의 순서를 바꾸거나 절차 하나를 생략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제공

"불법 파견"


이에 따라 삼성전자서비스가 필요 인력을 불법 파견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형식적으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GPA 등의 협력업체와 '도급 계약서'를 맺어 해당 서비스를 모두 위임한 것으로 해놓았지만, 실제로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업무 지휘와 명령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협력업체 사장들도 인정하는 바다. 실제로 지난 3월 부산 지역에서 한 지점을 운영하는 협력업체 사장 ㄷ씨는 직원들이 급여와 근로시간 제도 개선을 요구하자, 자신에겐 요구를 받아줄 권한과 예산이 없다고 반복해서 토로했다. 모든 권한은 삼성전자서비스가 가지고 있다는 토로였다.

이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기사에게 모든 '콜'(업무 지시)을 직접 내리고, 고객은 수리 대금을 삼성전자서비스로 바로 입금하므로, 협력 업체는 자체 수입원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협력업체는 처리한 수리 건수에 따라 합산된 수수료를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받고 다시 직원에게 '전달'할 뿐이다.

협력업체 사장이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월급'을 받는 '낙하산 바지사장'이라는 증언도 나온다. 수리 기사 ㄱ씨는 "일하는 기사들은 우리 사장이 본사 출신 '바지사장'이라는 것을 다 안다"며 "본사(삼성전자서비스) 임원들이 퇴직한 후 '낙하산'으로 지점에 와 형식적인 사장 행세만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기사들은 업무 교육을 수원의 삼성 본사 교육장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에게 직접 받으며, 자격 평가도 삼성전자서비스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삼성이 직접 시행한다고 주장했다.

민변 권영국 변호사는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이 처한 상황은 불과 몇 달 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불거졌던 이마트의 불법 파견 사용과 꼭 닮은꼴"이라며 불법 파견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삼성이 비용 축소와 효과적인 노무 관리에 급급해 극심한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 열악한 근로 조건을 하청 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며 "삼성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 ㄴ씨 역시 "삼성이 주는 돈을 받으며 십여 년을 살았다. 내 청춘을 삼성에 다 바쳤는데, 알고 보니 난 삼성 직원이 아닌 불법 파견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측은 16일 "현재로선 할 말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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