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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는 바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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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는 바위가 아닙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41>살아있습니다, 지키겠습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 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구럼비는 바위가 아닙니다

사진을 한 장 봤습니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한 사람이 널따란 바위 위에 엎드려 절을 하는 뒷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의 옆에는 털이 북슬북슬한 개 한 마리가 바위에 턱을 올려놓고 무심히 엎드려 있습니다. 피식 웃음은 나지만 그마저도 자연의 '조화'입니다. 절하는 사람의 머리는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시선과 넓은 바위, 저 멀리 바다가 함께 만나는 곳에는 노란 깃발이 하나 펄럭입니다.

ⓒ노순택

"해군기지 결사반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당신, 구럼비 바위. 애틋한 사진 한 장에, 당신이 또 생각났습니다. 꼭 1년 전 이맘때였죠. 겨울이 지나고 언뜻 찾아오는 봄기운을 반갑게 누리던 때, 2012년 3월 7일은 당신의 몸이 처음 '발파'된 날입니다. 다시 입에 담기도 끔찍합니다. '발파'라니요. 당신의 몸에 구멍을 내고 폭약을 넣어 터트린다니요. '설마' 하던 일을 실제로 밀어붙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저는 잠깐 눈앞이 노래졌습니다.

기자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그 끔찍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제주 도의회와 도지사도 발파를 말렸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신에게서 저만큼 떨어져 찍은 영상에서, 얼굴 없이 목소리만 들리는 사람들은 연거푸 "안 돼" 하고 목 놓아 외쳤습니다. 당신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끝내 그 영상을 다 보지도 못한 채 인터넷 창을 닫아야 했습니다.

주민들 반대와 국민들의 걱정, 도의회와 도지사의 만류에도 억지스럽게 저질러진 저 '야만'을 차마 계속 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는 생각과 노여움이 막 끓어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어떡하나' 싶은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느낀 건 저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물론, 반대했던 사람들도 "이제 싸움은 끝났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1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사이 국회에서 예산을 깎아 공사를 멈출 기회도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70일의 검증기간'이라는 애매한 합의사항의 뜻을 '공사 중단'이라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지금까지 옥신각신 다투기만 했습니다. 그사이 당신의 어디가 어떻게 더 부서졌는지 짐작조차 못 하겠습니다. 당신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기 위해 중장비들이 밤새 오가고 있다 합니다. 당신의 검고 반짝이던 살갗 위에서 사람이 웃고 파도가 박수 치던 모습은 이제 지나간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당신은 부서져 버렸는데,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고 절망하던 사람들한테, "구럼비는 죽지 않았다"고,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당신을 향해 기도합니다. 하루 종일 바다 앞에서 절을 올리며 당신을 그리고,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당신을 보러 갑니다. 지치지 말고 싸우자고 한판 신 나는 마당을 벌여 놓기도 하고, 강정 마을을 평화의 '책마을'로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책과 사람을 모으고 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좀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구럼비'란 원래 당신의 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바위 하나를 구럼비라 부른 것이 아닙니다. 긴 세월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강정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생명의 바다를 소중히 남기려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지구 위에 평화의 영토를 한 뼘이라도 더 늘리려는 세계인들의 고마운 성원을 우리는 구럼비라 불렀습니다.

당신은 부서져 버렸지만 '구럼비'는 죽지 않은 이유입니다. '발파 1년'을 맞아 집회를 열고 끈질긴 싸움을 각오하는 강정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럼비는 살아 있습니다. 그들 소식이 담긴 기사를 읽고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기사를 퍼 나르는 사람들 속에도, 2월 말 서울에서 열린 강정 마을 후원주점에 5만 원짜리 티켓 몇 장 흔쾌히 사주는 사람들 속에도, 봄방학 동안 강정 마을을 찾아가 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평화'를 배우고 오는 학생들 속에도 구럼비는 단단하게 살아 있습니다.

당신을 지키려 시작한 싸움이 올해 4월이면 자그마치 만 6년이 됩니다. 그동안 전국에, 아니 전 세계에 참으로 많은 구럼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동안 당신에게 자행된 파괴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고 절망을 맛보다가도, 그 많은 '구럼비'들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제주 강정 마을의 바다에도, 그리고 제 마음속에도 있는 구럼비 바위에게 약속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끝까지.


최규화

르포작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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