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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이 슈퍼맨의 연인? 그린 랜턴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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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원더우먼이 슈퍼맨의 연인? 그린 랜턴의 정체는? [마니아 서재] 슈퍼히어로 코믹스② 저스티스 리그의 영웅들
지난 '슈퍼히어로 코믹스 ① 슈퍼맨 대 배트맨'에서 이 둘이 속한 슈퍼히어로 집단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저스티스 리그')'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했다. (☞관련 기사 : 슈퍼맨이 배트맨을 절대 이기지 못하는 이유)

문화방송(MBC)에서 1979년, 1982년, 1986년에 방영된 바 있는 애니메이션 <슈퍼특공대>가 '저스티스 리그'를 아동용으로 재편성한 <슈퍼 프렌즈(Super Friends)>라는 것도. 이번에는 이 '저스티스 리그'를 주로 다룬 작품들과 함께 슈퍼맨, 배트맨 외의 인기 슈퍼히어로들을 소개한다.

이들이 그다지 낯설지 않아 꼭 소개받을 필요 없는 독자들이 있을 줄 안다. 적지 않은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코믹스에 대한 개개인의 관심도에 따라 대부분의 히어로가 익숙한 독자도 있겠지만 이 글은 아직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생소한 입문자, 소위 '뉴비(newbie)'의 눈높이에 맞추려 한다. 이 글이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에게 익숙해지는 계단이 되기를 바란다.

원더우먼, 하늘을 난다

애니메이션 <슈퍼특공대>의 주제가는 "슈퍼맨, 용감한 힘의 왕자. 배트맨 로빈, 정의의 용사. 원더우먼 하늘을 날다. 아쿠아맨, 수중의 왕자"로 이어진다. 이중 슈퍼맨과 배트맨은 '슈퍼히어로 코믹스 ①. 슈퍼맨 대 배트맨'에서 정리한 바 있다. 그러니 주제가 순서대로 원더우먼을 소개한다.

원더우먼은 저스티스 리그 중 슈퍼맨과 배트맨 다음으로 잘 알려진 슈퍼히어로일 것이다. "날으는 날으는 원더우먼"으로 시작하는 주제가(진미령이 불렀다)로 알려진 동양방송(TBC)의 외화 <날으는 원더우먼>(Wonder Woman, 1976~1979, ABC·CBS)에서 당시 린다 카터가 연기한 원더우먼이 빙글빙글 돌면서 변신하는 장면(Spin Transformation)은 슈퍼맨이 와이셔츠를 풀어헤치며 가슴의 에스(S) 자를 드러내는 것만큼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튜브에서 원더우먼 스핀으로 검색하면 변신만 모아놓은 영상을 찾을 수 있다. (☞))

커다란 판형이 인상적인 (폴 디니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도 슈퍼맨과 배트맨에 이어 세 번째로 소개되는 원더우먼은 그리스 신화 속 여성으로만 이뤄진 부족 아마존 출신이다. 은 원더우먼의 탄생을 간략히 잘 설명하고 있다.

남자들의 야만스러운 세상과의 투쟁에 지친 아마존은 아프로디테 여신의 가호를 받아 외부로부터 격리된 평화로운 장소인 파라다이스 섬으로 이주해 도시 국가 테미스키라를 건설한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가 흙으로 빚은 여자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으로 만드는데, 그 여자아이 다이애나 공주가 바로 원더우먼이다.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잘 기억할 것.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은 서로를 본명으로 즐겨 부른다. 원더우먼도 본명인 다이애나로 자주 불린다.) 그리고 신에 의해 창조된 다이애나 공주는 DC 코믹스 세계에서 그리스 신화의 많은 부분을 차용한 인간 이상의 존재인 반신(半神, demi god)으로 분류된다.

원더우먼이란 외부 세계로 갈 평화 사절을 선발하기 위한 경기에서 우승한 자에게 부여된 일종의 호칭이다. 다이애나 공주는 정체를 숨기고 경기에 참여하여 우승한다. 그리고 소중한 딸을 외부 세계로 내보내기 꺼려하는 어머니 히폴리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더우먼이 되어 인간 세계로 나간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이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들어 묶이게 되면 물리적 힘이든 초능력이든 봉쇄되고 진실만 말하게 하는 '진실의 올가미(Lasso of Truth)'와 아테네 여신의 방패 아이기스와 같은 재질로 총알도 막아내는 팔찌로 무장하고 악당들을 제압하는 이야기들이다.

▲ 원더 우먼. ⓒwww.sweetpaul.com

아마도 유년 시절 <슈퍼특공대>를 인상적으로 보았을 것이라 추정되는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펴냄) 109~110쪽에도 원더우먼의 탄생이 간략히 기술되어 있다.

얘기는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 얼마나 거짓말을 싫어했던 인물인가, 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마스턴은 그녀의 신화를 만들어내지. 신화의 무대는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였어. 전쟁 영웅인 스티브 트레버 대령이 버뮤다 삼각 지대에서 격추를 당하게 돼. 그런데 근처에 신비로운 여전사(女戰士)들의 섬 파라다이스가 있었던 거야. 트레버를 구한 것은 다이애나였고, 공주는 여차저차해서 대령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오지."

윌리엄 몰턴 마스턴(1893~1947년)은 실제로 원더우먼 캐릭터를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만화 업계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 탐지기의 원형이 되는 혈압 측정 장치(polygraph)를 개발한 심리학자이자 이 측정 장치를 통해 여성이 남성보다 정직하다는 주장을 펼친 페미니스트 이론가이기도 했다.

원더우먼은 이런 마스턴의 배경에서 탄생한다. 1940년에 그는 <패밀리 서클>이라는 미국 여성 잡지에서 "코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만화의 교육적인 측면에 대해 역설했고, 이 인터뷰 기사를 눈 여겨 본 만화책 출판업자 맥스 게인즈는 마스턴을 교육 자문위원으로 섭외한다.

1940년대 당시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은 슈퍼맨, 배트맨, 그린 랜턴 같은 남성들 일색이었다. 마스턴은 이미 혈압 측정 장치를 반영하여 진실을 감별하는 능력과 함께 주먹질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악당을 굴복시키는 슈퍼히어로를 구상한다. (이 장치와 원더우먼의 진실의 올가미와의 상관관계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마스턴의 구상을 들은 아내 엘리자베스는 그 슈퍼히어로를 여성으로 하자고 건의한다. 마스턴이 이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맥스 게인에게 제안하여 1941년에 원더우먼이 탄생한다. 원더우먼의 모델이 되는 여성은 마스턴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마스턴의 애인인 올리브 번이었다. 올리브 번은 엘리자베스와의 합의 하에 마스턴과 연인 관계를 지속한 비독점적 다자연애(polyamory) 관계였다.

<지구영웅전설>에서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 얼마나 거짓말을 싫어했던 인물인가'라는 언급은 거짓말 탐지기를 만들어낸 인물이 거짓말을 무력화시키는 여성 초인을 만들어 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기 원더우먼은 악당이 총을 쏘거나 공격하면 팔찌로 막아낸 뒤 진실의 올가미로 결박하여 무력화 시키고 진실을 털어놓게 하여 악당을 교화하는 캐릭터였다. 이는 마스턴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당대의 페미니즘의 시각을 반영한 사건 해결 방식이었다. 이런 원더우먼 캐릭터는 외화 <날으는 원더우먼>의 린다 카터가 연기한 원더우먼과 일맥상통한다.

ⓒDC 코믹스
허나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저스티스>(전3권,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더그 브레이스웨이트 그림, 정지욱 옮김, 시공사 펴냄)와 <킹덤 컴>(마크 웨이드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김 영 옮김, 시공사 펴냄)의 원더우먼은 주먹질과 발길질 등 육박전도 불사하는 거친 여전사의 모습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원더우먼의 힘은 실버에이지(1956~1970년)와 브론즈 에이지(1970~1985년)를 거치면서 점점 세졌지만 1985년에 DC 코믹스가 50주년을 맞아 기존의 설정을 재정리한 이벤트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Crisis on Infinite Earths)' 이후에는 DC 코믹스의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슈퍼히어로 대열에 진입하여 슈퍼맨이나 캡틴 마블처럼 힘이 세기로 유명한 남성 슈퍼히어로들과 대등하게 싸우는 수준에 이르렀다. 팔찌는 총알 뿐 아니라 슈퍼맨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선(heat vision)보다 더 강력한 광선도 막아낼 수 있게 되었다. 작품에 따라서는 투명 비행기를 타지 않고 직접 날아다니기도 한다. 대기권 바깥까지.

<저스티스>에서 원더우먼은 1943년부터 싸워 온 여악당 치타(프리실라 리치)의 마법으로부터 마법 공격을 받아 점점 살이 썩어들어가는 위기에 빠진다. 기존 DC 코믹스의 세계와는 또 다른 평행 세계를 다룬 <킹덤 컴>에서 원더우먼은 슈퍼맨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킹덤 컴>의 세계에서는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이 사망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구 소련의 초인 독재자가 되는 내용의 <슈퍼맨 레드선>(마크 밀러 지음, 최원서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는 파라다이스 섬이 소련의 우방으로 등장하며 원더우먼은 슈퍼맨과 함께 하늘을 나는 연인으로 등장한다.

아쿠아맨, 수중의 왕자

▲ 아쿠아맨. ⓒDC 코믹스
아쿠아맨도 원더우먼과 마찬가지로 1941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설정은 아틀란티스의 왕자 오린으로 태어났으나, 아틀란티스에서는 저주의 상징인 금발로 태어나 육지에 버려진 뒤, 등대지기 아서 커리에게 발견되어 그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고 인간들 사이에서 자라다가, 다시 아틀란티스인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아틀란티스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저스티스> 1권의 부록으로 제공되는 캐릭터 프로필에서는 인간 아버지 톰 커리와 아틀란티스인 어머니 아틀라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아서 커리이다.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이 아틀란티스 출신이며 아서에게 아틀란티스 왕위 계승권이 있음을 알려준다.

원래 설정을 따르든 <저스티스>의 설정을 따르든 간에 아쿠아맨은 아틀란티스의 지배자이다. 그리고 인간 이름은 아서 커리. 그래서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은 그를 아서로 부른다. 수중에서 깊이와 수압에 관계없이 숨을 쉴 수 있는 능력과 바다 생물 모두와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능력 그리고 보통 사람 이상의 힘을 갖춘 아쿠아맨에게는 다른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과 차별화된 힘이 있다. 바로 자신의 신민인 바다 생물들을 동원하는 능력이다. 말이 아틀란티스지 전 세계의 바다가 모두 아쿠아맨의 영토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결국 미국 시민인 반면 아쿠아맨은 해저 왕국의 주권자로서 유엔에서 발언을 하거나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기도 한다.

<저스티스>에서는 그의 텔레파시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악당에게 납치되어 뇌 해부를 당하고 아들까지 납치당하는 고난을 겪는다. 처참한 신체 훼손에도 뛰어난 복원력을 보이는 양서류의 특질을 갖고 있어 곧 회복된 그는 아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무래도 바다 기반의 히어로이기 때문에 활약 범위가 제한되는 경향이 있어 바다가 나오지 않는 작품에서는 크게 조명 받지는 못한다.

그린 랜턴

▲ <그린 랜턴 : 시크릿 오리진>(제프 존스 지음, 이반 레이스 오클레어 알버트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한국에도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2011년)의 개봉으로 알려진 슈퍼히어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DC 코믹스의 히어로 실사 영화는 배트맨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 외에는 상업적으로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슈퍼맨 리턴즈>(2006년)처럼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 역시 DC 코믹스 실사 영화 프로젝트의 기를 꺾는 흥행 성적과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린 랜턴은 DC 코믹스에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못지않은 역사와 전통의 슈퍼히어로다. 사실 그린 랜턴은 한 명이 아니다. 영화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의 설정처럼 우주는 총 3600개 섹터로 구분되어 있고 그 섹터들은 행성 오아(Oa)에 모인 다양한 종족들로 구성된 우주의 수호자(Guardians of the Universe) 그린 랜턴 군단(Green Lantern Corps)에 의해 수호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반지를 전달 받은 주인공 할 조던은 섹터 2814인 지구의 수호를 배정받게 된다. 할 조던은 계보 상으로 따지면 1959년에 첫 등장한 2대 그린 랜턴이다. (1대 그린 랜턴은 1940년대 등장한 앨런 스콧이다.)

할 조던을 포함한 그린 랜턴들의 능력은 녹색의 빛을 내는 파워 링을 통해 얻게 된 능력이다. 반지는 반지를 낀 사람에게 중력의 제한 없이 비행하는 능력과 우주에서의 생존 능력을 준다. 또 반지는 초소형 컴퓨터처럼 주인의 명령에 반응하여 특정 데이터를 분석 산출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반지의 능력은 상상을 실체화하는 능력이다. 이 부분은 영화에도 잘 구현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반지를 낀 상태에서 망치를 생각해내면 반지의 빛이 망치 형태를 갖추고 기관총을 생각하면 기관총이 된다. 무기뿐 아니라 상상하는 모든 형태와 크기를 구현해낼 수 있다. 온 몸을 감싸는 방어막도 가능하고 건물도 만들 수 있다. 다만 24시간 마다 소형 배터리로 그 에너지를 충전시켜줘야 하며 정신 집중이 흐트러지면 그 실체도 허물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반지의 색깔은 감정을 반영한다. 녹색은 의지력(willpower), 보라색은 사랑의 힘, 붉은색은 분노의 힘,푸른색은 희망의 힘, 인디고 색은 연민의 힘 등이다. 가장 유명한 그린 랜턴인 2대 그린 랜턴 할 조던은 영화에서처럼 불명예 제대한 공군 파일럿으로 천성적으로 겁이 없고 한없이 낙천적인 성격 덕에 반지의 선택을 받아 최초의 지구인 그린 랜턴 군단의 일원이 되어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슈퍼히어로 그린 랜턴이 되었다.

상상을 실체화하는 반지의 능력은 알고 봐도 놀라울 때가 있다. 신세대 슈퍼히어로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은퇴한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 중 그린 랜턴은 반지의 힘만으로 우주 공간에 에메랄드빛의 도시를 건설하고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저스티스>에서 할 조던은 선배 그린 랜턴이었으나 타락하여 악당으로 변절한 시네스트로에 의해 우주 저 멀리의 외딴 곳으로 보내진다. 현재 위치를 묻는 질문에 반지는 "우주에서도 지도로 작성된 적이 없는 영역"이라는 절망적인 대답만 내놓는다. 반지 덕분에 우선 생존이 가능하지만 반지의 에너지를 충전할 길이 없으니 죽음은 시간 문제. 반지는 에너지가 다 떨어질 때까지 일곱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할 조던은 "나를 전자 임펄스의 연속체로 바꿔 네 안에 저장한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반지는 "무기한"이라는 답변과 함께 "그러나 누군가 반지를 낀 순간 당신은 영원히 사리지고 말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할 조던은 우선 반지 속으로 피신한다. 반지 속 세계는 놀랍게도 할 조던이 살던 지구와 같은 환경이다. 할 조던의 전 의식과 상상이 모두 반영된 결과다. 나중에는 할 조던 본인도 이곳이 자신의 의식으로 구성된 가상 세계인지 실제인지 혼동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슈퍼맨 레드선>에서는 소련의 슈퍼맨을 해치우기 위한 미국 대통령 렉스 루터의 결전 병기로 할 조던과 그린 랜턴 부대가 등장한다. 렉스 루터를 결단내기 위해 미국 백악관으로 날아오는 할 조던의 그린 랜턴 부대는 초반에는 배트맨을 상상으로 실체화시킨 금고에 가두는 등 잠시 선전한다. 하지만 슈퍼맨은 단 한마디로 그린 랜턴 부대를 박살낸다. "생각의 속도보다 10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적을 상대로, 사고에 기반을 둔 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별로 영리하지 못했군, 조던 대령." 이미 슈퍼맨의 손에는 녹색 반지가 들려있으니 상황은 끝난 셈.

영화 개봉과 함께 번역 출간된 <그린 랜턴 : 시크릿 오리진>(제프 존스 지음, 이반 레이스·오클에어 알버트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 <그린 랜턴 : 리버스>(제프 존스 지음, 에단 밴 스키버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 <그린 랜턴 : 시네스트로 군단의 역습>(제프 존스·데이브 기본즈 지음, 패트릭 글리슨·에단 밴 스키버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는 할 조던과 그린 랜턴 군단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다. <저스티스>에서도 지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다른 섹터(행성)의 그린 랜턴들이 몰려와 지구를 돕는다.

플래시

전신을 뒤엎은 붉은색 타이즈를 입고 번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플래시. 1991년, 문화방송(MBC)에서 토요일 저녁 6시에 방영한 외화 <형사 플래시>(The Flash, 1990~1991,CBS)를 통해 이 날쌘돌이 슈퍼히어로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제목이 형사이기는 하지만 본명인 배리 앨런의 직업은 경찰 과학 수사대 화학연구원이다. 실험실에서 화학 실험 중 들이친 번개와 함께 화학약품을 뒤집어 쓰고는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능력이 없으나 그 빠른 속력이 보통 빠른 것이 아니다. 단 몇 초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속력을 지녔다. 그 속도 때문에 물 위를 달려가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폴 디니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 플래시는 외계의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운석을 들고 바다 위를 달려서 대서양을 건넌다. <저스티스>에서는 악당이 초소형 나노로봇을 집어넣은 스프를 먹고 통제를 잃어 질주를 멈출 수 없는 플래시가 계속 지구를 돌다가 자신을 앞서가는 장면도 나온다. 슈퍼 스피드를 기본 능력 중 하나로 갖고 있는 슈퍼맨도 전력을 다해야 겨우 플래시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다. 자신의 분자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 진동시켜 벽을 통과할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차원과 다른 시간도 가는 것이 가능하다. <킹덤 컴>에서는 그의 속도가 시간의 흐름을 압도하여 모든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마샨 맨헌터

마샨(Martian)은 말 그대로 화성인이라는 의미다. DC 코믹스의 세계에서 화성은 한때 지구처럼 생명체가 번성하던 곳이었으나 화성을 뒤덮은 화제로 인해 모든 화성인이 전멸하고 홀로 남은 화성인이다. 사울 에델이라는 과학자의 원격 이동 실험을 통해 지구로 온 마샨 맨헌터의 본래 이름은 존 존즈(J'onn J'onzz)로 지구식(영어식)으로는 존 존즈(John Jones)로 불린다. 본명 부르기 좋아하는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이렇게 부른다.

원래 정형화된 형태를 굳이 갖추지 않는 화성인이지만 지구인을 따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마샨 맨헌터는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 비행 능력을 비롯해 어떤 동물이나 사물로도 변할 수 있는 변신술과 투명 능력, 염동력뿐 아니라 강력한 텔레파시를 기반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내기 및 정신 공격이나 정신 조작 등의 능력들을 갖춘, 슈퍼맨 부럽지 않은 능력자다. 이런 다채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외계인인 그가 심성이 착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고향을 황폐화시키고 동족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린 불이다. <저스티스>에서는 바다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당이 텔레파시를 통해 불길에 휩싸이는 동족들의 환영을 보내오자 "나는 지금 물속에 둘러싸여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다 결국 패닉 상태에 빠지는 마샨 맨헌터가 나온다.

는 마샨 맨헌터의 착한 심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대사 외의 모든 해설이 마샨 맨헌터의 내면의 독백이어서 외계인의 시각으로 인류의 위기와 그것을 해결하려는 슈퍼히어로들을 평가하는 것이 흥미롭다.

"인간의 적개심이 이 같은 위협을 낳는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화성의 황무지 출신이지만 지구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 적이 없다. 이곳은 내게 낙원이며 보배로운 땅이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내 힘으로 모든 지구인의 마음에 나의 눈을 연결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 주고 싶다고."

멸망한 행성의 마지막 생존자인 마샨 맨헌터의 절절한 심정은 슈퍼맨의 그것 이상이다. 물론 슈퍼맨도 후에 홀로그램 등으로 학습하기는 하지만 마샨 맨헌터는 화성의 멸망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캡틴 마블

고아 소년 빌리 뱃슨은 "샤잠(Shazam)!"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치면 붉은 옷을 입은 거구의 캡틴 마블로 변신한다. 마법 주문 '샤잠'은 솔로몬(Solomon)의 지혜, 헤라클레스(Heracles)의 힘, 아틀라스(Atlas)의 체력, 제우스(Zeus)의 권위, 아킬레스(Achiles)의 용기, 머큐리(Mercury)의 스피드를 갖추었다는 의미로 이들의 머리글자를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슈퍼맨처럼 날아다닐 수 있고 힘도 슈퍼맨에게 밀리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슈퍼맨은 마법에 기반을 둔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나 악당들에게 취약한데 캡틴 마블은 탄생부터 능력까지 마법의 결정체라 할만하다. 어느 한 쪽이 악당에게 세뇌당하거나 의견차이 때문에 슈퍼맨과 캡틴 마블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날 때 슈퍼맨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 더 캡틴 마블과의 싸움을 힘겨워한다.

세뇌당하기 쉬운 쪽은 역시 겉모습은 성인이지만 본질은 소년인 캡틴 마블. <킹덤 컴>에서는 슈퍼맨의 숙적이자 저스티스 리그를 공격하는 악당들의 수장 격인 렉스 루터에 의해 세뇌당하여 슈퍼맨과 싸우게 된다. <저스티스>에서는 슈퍼맨의 복제품 악당 비자로와 크립토나이트를 가슴에 품은 사이보그 악당 메탈로 등의 기습을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슈퍼맨을 구원하면서 등장하지만 매사에 어른 히어로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소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밖의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

우주에서 온 운석을 연구하다가 그 운석으로 만든 렌즈의 광선으로 사물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레이 파머 박사는 그 광선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체를 원하는 크기만큼 축소시키는 능력의 슈퍼히어로 아톰으로 거듭난다. '아톰'이라는 이름처럼 원자 규모로 작아질 수 있는 파머 박사는 외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바이러스의 생체 구조 정보를 채취하고 심지어는 전화선을 통해 전기 신호 형태로 이동할 수 있다.

부잣집 망나니 올리버 퀸은 무인도에 표류한 뒤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하다 신궁에 가까운 활솜씨를 지니게 된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그린 애로우가 된 올리버는 다른 초능력 따위는 없는 그냥 활 잘 쏘는 인간이다. 하지만 화살촉 끝에 여러 아이템들을 부착해 초인 영웅들 사이에서 결정적 한 방을 해낸다.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전2권, 김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에서는 크립토나이트 화살로 슈퍼맨을 저격하여 배트맨을 돕기도 했다. 여자친구인 블랙 카나리는 무협지의 사자후와 같은 큰 목소리로 적을 제압하는 능력을 지녔다.

호크맨과 호크걸은 사나가르 행성에서 온 외계인 부부다. 도망친 범죄자를 잡으러 지구에 와서 체포했지만 지구에 계속 남아 범죄를 방지하려 한다. 플라스틱 맨과 일롱게이트 맨은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신체적 능력으로 저스티스 리그에 기여한다.

이 밖에 순간 이동 및 다채로운 마법을 사용하는 여 마법사 자나타. 우주 모험가 아담 스트레인지. 회오리 바람의 힘을 지닌 안드로이드인 레드 토네이도. 공간 뿐 아니라 차원, 사후 세계까지 넘나드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팬텀 스트레인지 등이 저스티스 리그의 백업 멤버로 대기하고 있다.

ⓒDC 코믹스

저스티스 리그의 활약을 다룬 작품들


(폴 디니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이규원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은 40쪽 안팎의 짧은 분량을 통해 저스티스 리그의 구성원들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원래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는 플래시, 아쿠아맨, 원더우먼, 그린 랜턴, 마샨 맨헌터 이렇게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으나 여기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합류한 뒤 이후 호크맨(과 호크걸), 아톰, 캡틴 마블, 플라스틱 맨, 아담 스트레인지, 자타나, 엘리먼트 맨 메타모르포, 일롱게이티드 맨, 팬텀 스트레인저, 레드 토네이도 등이 합류하여 완성되었음을 알려준다. 글자들이 많아 읽기 만만하지 않은 슈퍼히어로 코믹스 중에서 눈에 띄게 적은 글자 수로 저스티스 리그 구성원들의 개념과 특징을 간략히 설명하여 짧은 시간에 이들에 대한 개념을 잡는데 적당하다. 일종의 슈퍼히어로 로그인 셈.

역시 다른 코믹스에 비해 적은 글자 수로 간단한 에피소드 하나를 선보인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핵심 멤버들이 잠깐씩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전 지구적인 재앙이 발생한다. 바로 치료 방법을 알 수 없는 외계 바이러스의 발생. 여기에서는 저스티스 리그와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드러난다. 미증유의 재앙 때문에 저스티스 리그는 미국 국방성 즉 펜타곤에 초청을 받는다. "리그는 국방성과 공조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이들이 리그에게 이곳 정보 네트워크의 심장부를 허락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배트맨은 국방성에 몰래 잠입한다. 마샨 맨헌터가 "놀랍군.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요새에 들키지 않고 잠입하다니"라고 텔레파시로 묻자 "건물은 거기서 거기야. 자물쇠나 경비원이 좀 많을 뿐이지"라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배트맨은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면서 왜 몰래 국방성에 잠입했을까? 배트맨은 마샨 맨헌터에게 "혹시 이 방에서 뭔가를 은폐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줄 수 있겠나?"라고 묻자 마샨 맨헌터는 "또 그 의심증인가?"라고 되묻는다. 배트맨은 "명심하게. 정부는 우리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라고 반응한다. 지구인의 정부를 그럭저럭 신뢰하는 외계인과 끈질기게 의심하는 지구인이라니 주객이 전도된 듯하지만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납득 못할 바도 아니다.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동분서주하지만 외계에서 온 전염병의 원인은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언론은 일제히 저스티스 리그를 비난한다.

"무법자, 무정부주의자, 인조인간 등으로 구성된 이 단체가 하는 일을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저스티스 리그는 하나의 재앙 하나를 막으려다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소녀 마법사 하나, 고무인간 둘 그리고 화살통을 든 꼴통. 이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사육제도 아니고 말이죠!"

아톰이 축소 능력으로 감염된 플래시의 몸에 들어가 바이러스 정보를 확보하자 배트맨은 곧 뛰어난 분석 능력으로 바이러스 대비책을 마련한다. 플래시의 미칠 듯한 스피드로 만든 회오리바람과 그린 랜턴이 반지의 힘으로 만든 거대한 깔때기를 통해 우선 바이러스에 감염된 대기를 대기권 바깥으로 보내 소멸시킨다. 이런 와중에 세계 곳곳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폭동이 일어나고 이 폭동을 원더우먼, 그린 애로우, 배트맨, 호크맨과 호크걸, 플라스틱맨, 자타나 등의 나머지 멤버들이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제한다.

이런 슈퍼히어로들의 사회 통제에 인류가 슈퍼 영웅들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되자 영웅들은 뉴욕의 유엔 건물에 출두하여 자신들의 행동이 불가피했음을 설명하고 사과한다. 화성인인 마샨 맨헌트는 '자신의 동족들은 모두 멸망했지만 인류는 자신의 새로운 가족이자 동료인 저스티스 리그의 헌신을 받아들여 주기만 하면 결코 화성인과 같은 운명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연설로 유엔과 지구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는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히어로들과 그런 슈퍼히어로들을 불신하는 보통 인류 사이의 긴장감을 이 정도의 선에서 훈훈하게 봉합한다. 하지만 초인 영웅들과 보통 인류 사이의 갈등은 슈퍼히어로들 사이의 갈등과 함께 DC 코믹스를 이끌어 가는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여러 작품에서 심각하게 다뤄진다.


▲ <저스티스>(전 3권,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더그 브레이스웨이트 그림, 정지욱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저스티스>는 악당, 빌런(villian)들이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플래시의 숙적인 캡틴 콜드가 뭐든지 얼리는 능력으로 사막에 거대한 얼음산을 만들어 그 물로 오아시스를 만든다. 가뭄이 이어지는 지역에 배트맨의 악당 포이즌 아이비가 나타나 나무를 열매 맺도록 한다. 이런 악당들의 선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쿠아맨은 심해에서 숙적 블랙 만타에게 사로잡혀 렉스 루터 손에 넘겨지고 리들러는 웨인 컴퍼니의 슈퍼컴퓨터로 배트맨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저스티스 리그 소속 슈퍼히어로들의 본명과 직업, 사는 곳 등이 포함된 핵심 정보를 훔쳐낸다. (슈퍼맨 VS 배트맨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배트맨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정보가 노출되는 것이다.) 그린 랜턴은 시네스트로에게 슈퍼맨은 비자로와 메탈로, 솔로몬 그런디, 패러사이트에게 기습당한다. 슈퍼맨을 구하러 가던 플래시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어 지구를 계속 빙빙 돌고 캡틴 마블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에서 빠져나온 슈퍼맨은 안전하다고 생각한 배트맨의 은신처 배트케이브에서 배트맨에게 공격받아 당황한다.

외계에서 온 기계인간 브레이니악과 연합하여 불치병과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유토피아 같은 인공 도시로 데려가는 렉스 루터는 한편으로는 대중들을 상대로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히어로들을 가열차게 비난한다. 슈퍼히어로들은 자신들의 힘을 세상을 유지하는데 사용할 뿐 더 나은 세상으로 개선시키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들의 환심을 사면서 렉스 루터와 브레이니악 연합은 히어로들에게 자이갠타(원더우먼), 토이맨(슈퍼맨), 스케어크로우(배트맨), 클레이페이스(배트맨), 시네스트로(그린 랜턴) 등을 보내 공격한다. 저스티스 리그 내부도 브레이니악이 만든 나노머신에 의해 세뇌된 이들 때문에 내분이 벌어진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는 결국 서로의 지혜를 모아 자신들의 약점을 공격해 들어오는 악당들의 작전을 파악하고 반격에 나선다. 이 과정이 마치 체스 게임처럼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제압하는 형국이라 꽤 재미있다.

문제는 맨 처음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와 악당들을 접하는 입문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끼리는 본명을 부르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본명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히어로와 악당 간에도 서로 본명과 캐릭터 이름을 번갈아 부르기도 한다. 가령 배트맨은 리들러를 가끔 본명인 에드워드 니그마 혹은 니그마로 부른다. 또 인물들의 등장이 거침없어 널리 알려진 슈퍼히어로나 악당이 아닌 이상 누가 누군지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그나마 다행히도 <저스티스>는 각권 마지막에 "브루스 웨인의 배트 컴퓨터 개인 파일에서…"라는 부록 형태로 각 슈퍼히어로들과 악당들의 간략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록이 제목처럼 브루스 웨인이 직접 정리한 것 같은 콘셉트라는 것. 즉 이 내용에는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악당들에 대한 객관적 정보뿐 아니라 배트맨의 인상 비평과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있다. <저스티스>의 내용을 보다 알고 싶으면 부지런히 책 마지막의 부록을 들춰보며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도 정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 슈퍼히어로 코믹스 전문 블로그 부머의 슈퍼히어로(//blog.naver.com/boomer27)나 영문 위키(//en.wikipedia.org) 혹은 엔하 위키(//angelhalowiki.com)에서 해당 슈퍼히어로와 악당을 검색해 보기를 바란다.

<킹덤 컴>은 <저스티스>보다 조금 더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킹덤 컴> 속의 세계는 기존의 저스티스 리그의 세계와는 조금 다른 평행 세계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청년이나 많아야 30대 초중반 정도로 등장하던 히어로들이 중장년의 은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0년 전, 악당들을 최대한 죽이지 않고 체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과 범죄 막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악당들의 생명은 그 다음 문제로 치부하는 신세대 슈퍼히어로들 사이의 갈등은 결국 신세대 슈퍼히어로 마곡이 조커를 재판 없이 살해한 것을 계기로 폭발한다. 비록 조커가 자신의 연인 로이스 레인을 비롯해 메트로폴리스 신문사 사람들을 살해했지만 재판정으로 조커를 넘기려 했던 슈퍼맨은 사람들의 여론이 마곡의 편에 서자 분노와 실망감에 슈퍼히어로를 그만두고 혼자만의 세상에 틀어박힌다. 다른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도 마찬가지. 배트맨은 고담 시티에서 로봇을 통해 범죄를 통제하고 그린 랜턴은 대기권 밖에 반지의 힘으로 구축한 요새에 틀어박힌다.

저스티스 리그의 고참 히어로들이 세상을 등진 가운데 과격한 신세대 슈퍼히어로들은 악당을 잡는다는 명분하에 민간인들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의 관찰자 역할을 수행하는 목사 노먼 맥케이는 슈퍼히어로들 간의 싸움이 지구 멸망을 불러오는 전쟁인 아마겟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신세대 히어로들의 방종을 참다못한 슈퍼맨이 복귀하여 저스티스 리그를 다시 결성하면서 통제되지 않는 히어로들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인다. 한편, 렉스 루터는 슈퍼히어로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역시 인간인 배트맨 브루스 웨인과 연합한다.

슈퍼히어로들 간의 분쟁이 점점 격해지자 이에 위협을 느낀 인류는 슈퍼히어로들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한다. 인류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웠던 슈퍼맨도 핵 공격에 백골로 변한 동료들의 모습에 분노하여 국제 회의장으로 쳐들어가 각국의 국가 지도자들을 모두 살해하려 한다. 결말과 관계없이 에서 언급한 인류와 슈퍼히어로 간의 갈등이 최악의 형태로 폭발한 셈이다.

<킹덤 컴>도 저스티스 리그뿐 아니라 작품 속 오리지널 슈퍼히어로까지 정말 수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한 명 한 명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굳이 모든 히어로들을 다 파악할 필요 없이 앞에서 언급한 저스티스 리그의 핵심 멤버. 더 압축하자면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과 캡틴 마블, 렉스 루터의 관계만 파악해도 이해 가능하다. 중간 중간에 설정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캐릭터들의 이야기이니 단숨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되도록 많은 작품을 읽고 많은 정보를 접하여 이들 슈퍼히어로들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다보면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히어로들이 엮어내는 관계의 우주가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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